지금 이거요, 우는 거 아닙니다.
눈물이 아니라 수정씨에 대한 마음을 흘리는 겁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101번 째 프로포즈'중 남자주인공 달재의 대사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남자와 완벽하지만 사랑에 상처 입은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동시간 대 타방송사의 드라마가 워낙 시청률이 높은 관계로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소수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드라마였음은 분명했다.
이 드라마가 사랑을 받을 결정적 이유는 아마도 달재라는 인물의 순수성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진실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실한 사랑을 하게도 되기도 하며, 잠시 스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 받기를 원하며 또한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일까?
많은 대중매체에서 사랑을 키워드로 한 것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끝임 없이 소비가 되며, 반복되어 보여진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에 목말라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점점 이 세상에 사랑 그 순수한 것으로만 이루어진 것을 더는 찾기 힘들어져서 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부가적으로 많은 요건 혹은 상황들이 필요하게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그 단순한 진리보다는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혹은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하는 의문과 보장을 받기를 원한다.
그 사람이 잘생기고, 키가 크며, 돈이 많고, 똑똑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누구나 완벽에 가까운 이성을 만나기를 원한다.
나 역시-물론 철저히 내 기준에서의 완벽한 상대-그러하다.
그렇다고 그런 그들을 속물이라 욕할 순 없다.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자연스런 현상이며 그에 따른 아둔한 과시욕이 생기는 것을 어찌하랴.
하지만 일정한 틀에 맞혀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매우 올바르지 못한 현상인 것 같다.
소이 '된장녀'라 불리는 그녀들을 예로 본다면 상대의 외제차에 마음을 뺏겨버리는 모습을 한 케이블 방송에서 보고 매우 놀란 경험이 있다.
(그 차가 그 남자의 것이 아니었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가?! 세상의 모든 남자가 드라마 속 재벌 2세처럼 아둔할 거란 편견을 버려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렇다고 give&take라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화초 가꾸기와도 같다.
매일 물도 주고, 영양제도 뿌려주고, 따스한 햇살도 비춰주며 애정 어린 손길로 잎사귀를 닦아주기도 해야한다.
지금 고개를 돌려 그를(그녀) 바라보아라.
혹, 그대의 무관심으로 시들어져버린 잎사귀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얼른 예전과의 같은 아니 갑절은 부지런한 손길로 화초를 돌봐야 할 것이다.
사랑은 기성품의 그것처럼 모두 같은 형태와 내용물일 수 없음을 기억하자.
나의 사랑이 싸구려가 되는 것도, 명품이 되는 것도 모두 나의 손에, 나의 가슴에 달린 것임을 깨닫자.
세상의 모든 이가 사랑으로 충만한 가슴을 가질 때 비로소 얄궂은 사랑타령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에 목말라 하지 말자.
사랑에 심취한 그대가 되라.
사랑은 사랑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