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다면
그건 내가 없고 난 뒤라면 좋겠어.
그렇게 그들은 망했습니다
라는 엔딩 크레딧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그저
극장에서 나서는
평화로움만
내 삶에
있기를.
나는
누군가 망하는 꼴마저
바로 내 눈앞에서는 없었으면 좋겠는,
그래서 그저 그것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흔적마저 찾기 어려울
슈뢰딩거의 쓰레기통에 넣고
나 같이
정의에 무뎌진
겁쟁이 눈에는 보이지 않아라
주문을 외는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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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무터
무거운 영화도 싫고
슬픈 이야기도 힘들고
괴로운 뉴스를 보면
애써 채널을 돌리는 나는
아마도 20대
정의롭지 못한 것에 분개하던,
괴로운 일에 눈감지 않던
아픈 사랑에 기어코 온 마음을 던지던
그 겁없던 내가
싫어하던 그런 사람.
앞으로 걸어갈 길이
어떻게 다 걸을까
아득하기만 해서
발은 무거워
진즉에 거추장스러운 정의를 훌훌,
연민도 훌훌, 그렇게 불편과 아픔과 공감과 희생을
어느덧 벌거숭이 왕.
雪(ゆ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