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 그대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아오? 그건.. 말이오...당신의 한숨소리를 듣고 알았지... 그 옛날 무도회에서 듣던 그 한숨소리를 듣고서 말이오..단번에 그대라는 걸 알았지 뭐요...그대의 특이하고도 깊은..한숨소리..듣는 사람의 심장을 들어낼 것 같은.. 무게가 실려있는 그대의 한숨소리....어찌 내가 잊을 리 있겠소?"
왕자님의 모습은 아주 행복해 보였대요...
잠꼬대를 늘어놓는 왕자님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소녀의 눈시울이 어느덧 촉촉히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역시 난, 그대에게 내 존재를 드러낼 수가 없었소... 그대는 또 도망을 갈 거지? 그럴 거지? 다시는 그대를 보내지 않을 거란 말이야...그대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행복한 것을..그대를 놓치지 않을 거요...그러니, 다시는 나를 떠나지 마오. 내가 그대를 모른 척 한다고 슬퍼할 거요? 하지만...그대는 알잖소? 그대를 놓치기 싫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말이오..그대가 나를 떠나는걸 두고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말이오..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그대라면 얼마나 좋을까...그럼, 그대 앞에 당당히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 텐데....."
소녀는 터질 것만 같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를 흘렸습니다..
소녀는 대책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대도 닦아낼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여인이여.. 항시 그대는 슬픔을 지니고 있는 거요? 왜 한숨소리와 여린 흐느낌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요? 내게 오시오..여인이여... 당신을 감추는 안개의 장막은 거두고 내게 모습을 드러내란 말이오...그대도 알다시피, 난 그대의 존재를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지 않소. 그대가 먼저 내게 다가와 준다면, 내 그대의 한숨과 흐느낌을 잊게 해주리다..난 그대의 슬픔을 잊게 할 수 있는데..왜 그대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단 말이오..내게로 오시오..그대 오기를 기다리는 내게로 오시오....난 어쩔 수 없이 그대의 존재를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걸 그대는 잘 알고 있지 않소.... 늘..그대의 존재를 먼저 느끼는 나란 말이오..내게로 오시오... 난..지금도 그대의 존재를 느끼고 있소.. 그대의 한숨소리가 바로 내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구려...그대의 여린 흐느낌이 바로 내 곁에서 들리는 듯 하구려..내게로..오시오...."
왕자님은 가볍게 코까지 골았습니다.
왕자님은 신비의 여인을 향한 숱한 얘기들을 달이 기울도록 꺼내놓으면서, 그렇게 달콤한 수면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곁에서 지켜보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의 존재는 하늘에 떠있는 달만이..알아주었지요...흐드러지게 떠 있는.. 별들만이 알아주었지요..
소녀는.. 왕자님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좋은데....왜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