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독후감
제목 : 미망
작가 : 박완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방학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문득 국어 숙제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동네 책방에 갔더니 책방 아주머니가 단기간에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나에게 이 책을 권해주셨다. 나는 지난 번에 삼국지를 제대로 읽는데 거의 두 달이 걸렸던 것이 생각나서 선뜻 그 책을 받아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책을 펴고 주인공을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처음 읽
어 보는 책인데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낯익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위에 흔
한 이름도 아니어서 나는 내 기억을 잠시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선 생각난 것이 TV에서 들
어 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건 몇 년 전에 TV에서 했던 책과 같은 이름의 '미망'이
라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었던 것이다. 나는 그 드라마를 계속 보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
로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었다. 드라마 내용과 조금 달랐는데도 일단 내용은 약간 알기 때
문에 그런지 그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개성의 대상인인 송상을 배경으로 소설은 전개되었다. 아주 가난한 중인의 자식이었던 전
처만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 거상이 된다. 청국과 밀매등을 하면서 모은 그의 재산은 어마어
마했다. 그러나 그는 돈을 헤프게 쓰지 않고 항상 절약하면서 사는 인물인 것 같았다. 점점
읽으면서 전처만이란 인물은 자연히 내 관심의 대상이 되어갔다. 전처만이란 인물을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는 손녀 태임이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였고 자신
의 식솔이나 거느린 사람들에게는 어질은 윗사람이었지만 양반의 아들인 종상이나 다른 양
반들에게는 분노와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고 멸시했다. 그런 커다란 행동의 차이가 과연 과
거에 단지 양반에게 당했었던 것만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만 보고 싶지 않다.
실권을 잡고 있으면서도 외세에 대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옳은 방향으로 개화하지 못하는
깨우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을까?
사건은 태임이의 어머니인 머릿방아씨에게로 옮겨 간다. 신혼 초에 남편을 잃고 수십년을
독수공방하며 살아온 여인... 그리고 정절을 지키지 못해 태남이를 낳고 자살한 여인... 개성
상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몰락한 양반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속에서 그녀가 등장하는 이유
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습에 대한 도전의 표시이다. 여자에게만 정절을 요구하고 그것을 지
키지 못하면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사회와 남녀차별이 바탕인 사회. '남아선호사상'으로 표
현될 수 있는 이 인습에 대한 언급은 단지 장남에게서 가문을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한 여
인의 파란 만장한 삶이 그리도 무참히 짓밟힐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해 준다. 그리고
그런 인습이 폐지되야 한다는 것을 태임이에 대한 전처만의 태도와 태임이의 교육에서 살짝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나라가 망하고 태임이와 종상이에게로 시선이 옮겨진다. 우리의 상업을 지키기 위
해 애쓰는 개성 상인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태임에게 이유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게 되
는 양반이자 고급 관리인 박승재가 나온다. 정말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고 더 나으면 나았
지 태임이나 종상이보다 못할 바 없는 그가 왜 그리 그들 앞에서 조아리고 질투를 했을까?
질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그에게는 거의 병 같았다. 한 평생 그를 그렇게 질투와
분노 속에 묶어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의 양심에 대한 반성이자 양심의
질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결코 박승재가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는 것이
옳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는 못하면서도 그래도 마지막 남은 그의 양심
이 그의 일생을 잡고 늘어졌을 것 같다.
여성들의 변화하는 모습도 시대의 변화와 함꼐 어우러져 있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모순
도 많고 놀라운 점도 많다. 강압적이고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혜정이가 있는
한편 한 때는 일본 사감 배척 운동까지 했지만 결국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과 사랑을 선택하
는 여란이도 있다. 너무너무 많은 여성들이 등장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의
문, 첩이 아들만 데리고 나타나면 조강지처를 버릴 수도 있다는 틀에 박힌 공식이 과연 옳
은가 아니면 옳지 않은가?
그 후 해방이 되고 6·25가 발발하면서 이 소설은 개성의 인삼을 강화에 보존한다는 내용
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 역사를 양반의 시각이나 그들의 모습이 아닌 우리 평민들의 역사로
서 본 것 같았다. 너무나 복잡한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 정말 우리 민족이 어떠한 고통을 겪
었고 특히 상민들이 우리 상업의 가느다란 명맥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 지도 알
것 같다.
일제가 남의 나라를 뻬앗았기 때문에 무작정 나쁘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이 아닐지라도
한 집안의 변천사에 대해 알게 되자 그 떄의 현실과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여성이다. 머릿방아씨의 삶에서 여란이와 혜정이의 삶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단지 집안에 아들을 안겨주는 존재로
밖에 여겨겨지지 않던 여자의 지위. 이에 비하면 아직도 차별대우가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
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된다. 여성의 지위 향상에 노력하고 끊임없이 남성만의 지위에 도
전했던 용감한 여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망국의 한 속에서도 상품을 개발하려고 애쓰는 개성 상인들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삶을
바친 조상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이 현 위치에 설 수 있었고
세상에 대한민국 한 민족이라는 이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