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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경민 Write:
>> 1993년, 그러니깐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그 당시 관객 80만명 가량을 동원한 흥행작 서편제. 한동안 전국민을 판소리의 도가니로 몰아 넣어서 많은 사람의 입 안 밖으로 오르내려서 철부지였던 나 역시 서편제를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주위환경이 따라주질 않아서 서편제를 볼 수 없었다. 7년이 지난 지금은 그 영화를 빌려보기엔 너무 늦은감이 있어서 빌리기 꺼려했는데, 이번 기회를 빌어서 서편제를 접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김정숙 선생님께 정말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워낙에 독후감에 자신이 없는 나였고, 글도 너무 많아서 언제 다 읽나? 하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한자씩 읽어 내려가며 지금은 서양의 락이나 발라드 등에 밀려버린 판소리에 조금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특히 서편제 특유의 구성지고 한 맺힌 느낌이 가슴에 와 닿았다.
> 이야기는 전라도 보성읍 소릿재 주막에서 오라비가 누이동생을 찾으면서 시작되었고, 비로소 수소문 끝에 장흥읍 주막집에서 누이를 찾은 오라비는 자신을 감추고 밤새 누이의 판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누이는 오라비인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감추고 그렇게 오라비를 떠나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결된다.
> 이 이야기는 한에 대하여 함축적으로 말하기 위해 쓴 글인 것 같다. 서편제의 소리는 아주 깊고 깊은 한의 가락이다. 나도 그럴 것이고, 서편제를 읽고, 본 모든 사람들은 매우 깊은 한의 가락 속에서 한번쯤 자신의 살아가고 있는 한세상의 한살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작가나 등장인물 누구도 직접적으로 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을 쌓고 풀 고를 거듭하며 한세상 살아가는 이치에 대한 사념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의붓아들의 (원)한으로 아버지를 죽이려 하지만 소리의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을 치고, 하나 남은 딸 역시 도망을 칠까봐, 아버지는 딸의 눈을 멀개한다.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딸이지만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대신 용서하며 용서를 통해 깊어진 한은 소리로 승화된다. 이렇듯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딸은 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저마다의 한으로 살아가며, 살아가면서 한을 쌓아간다. 아버지와 소리에 대한 한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리를 찾아 남도를 헤매며 아버지와 누이의 사연을 뒤적이는 아들의 한살이도 한 살이려니와, 무엇보다 앞을 보지 못하는 딸의 한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 한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한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설립되질 않는다. 하지만 다만 한가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무수한 한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은 한을 낳고, 한은 삶을 여러 종류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을 쌓아가고, 그리고 그것들을 풀어 나가면서 삶을 살아 나간다...
> 나는 이 글을 읽어 가면서 또 하나 절실히 느낀 것이 하나있었다. 바로 외국 대중가요에 밀려나 버린 우리의 판소리이다. 극중에서도 판소리를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이 외국악기 등으로 무장된 밴드의 행진을 보고 그들을 따라 가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모습을 바로 7년 전부터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말은 바로 7년 이전부터 벌써 우리의 판소리가 밀려 난 것을 뜻한다. 왜 우리의 판소리가 밀려난 것일까? 나는 그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문화의 사대주의 인 것 같다. 21세기 현재 오늘날의 세계는 그 전반적인 모습이 달라지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 또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세계를 지구촌이라 한다. 지구촌은 단순히 무역이나 경제적 관계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학술, 사상, 교육등 모든 분야에서 가까운 관계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변화중에 생기는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사대주의이다. 이와 반대되는 상황을 국수주의라 하다. 이러한 극단적인 유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가치관의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된다. 우리 것을 지키고 보존하며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편협하고 배타적인 입장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국제적인 의식과 넓은 안목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서구일변도의 맹목적인 문화 종속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적절히 주체성을 가지고 판소리등의 전통음악 아끼고 사랑하면서 우리에게서 찾을수 없는 외국음악의 좋은점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문화 식민지라는 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이제 까지 서편제란 작품 하나를 읽고 여러 가지 많은 생각에 잠겨보고 그것을 글로 옮겨보았다. 나의 생각을 좀 더 잘 글로 옮기고 싶었는데 잘하지 못해서 내 가슴에 한이 될 것같다... 지금 텔레비젼에서 판소리 열창을 한다. 보통이면 바로 채널을 돌렸을껀데 이상하게도 채널이 돌아가지 않았다. 왜 일까??? 서편제란 작품을 읽고 이 정도로 우리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에 대해 새삼 놀라워진다. 앞으로 좀더 좋은 많은 작품을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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