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온 다음날
선화동 우리 집 앞
진흙길을 괴발디딤으로 걷다가
신발 앞 배꽃처럼 하얀 두 줄이
얼룩져 버려
애먼 엄마한테 생떼를 쓰다가
참기름에 비벼온 밥도 안 먹고
잠이 들었던 그 눈물을
첫 월급을 타서 맞춰 신었던
분홍신 제화점의 가죽구두도
결혼하던 날
초록저고리 다홍치마에 신었던
예쁜 꽃신도
여태
닦아주지 못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대형매장의 신발코너 앞에서
국민학교 일학년 생일선물로 받은
맹꽁이운동화에서 나던
화학스런 새물내를 뒤져본다
끝도 보이지 않는
상품의 진열 구석구석
잘리어 나간
행복의 맛봉오리 세포를 찾아
엄섬히 서 있다.
괴발디딤; 고양이가 발을 디디듯이 가만히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 짓.
애먼 ;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엉뚱하게 느껴지는.
새물내 ; 새것에서 나는 냄새
엄섬히 ; 엄성하게의 옛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