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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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신은 자기 집 앞에 오더니 주차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채신은 주차를 하는데 몇 분을 소비했다. 바보같은 채신은 운전을 잘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운전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답답해서 대신 운전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운전을 못하는 관계로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운전따윈 배우지 않을 것이다. 운전을 익힌다는 건 말 그대로 살인 기술을 익히는 거 하고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세상 사람들이 전쟁은 무고한 인명을 죽이고 다치게 한다며 반대하면서 역시 무고한 인명을 죽고 다치게 하는 자동차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로 전쟁으로 죽고 다친 사람보다는 자동차로 죽고 다친 사람이 훨씬 더 많은데도 말이다.
채신은 겨우 주차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엉망인 주차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채신의 집은 우리 어머니가 새 아버지하고 같이 살고 있는 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훌륭한 집이었다.
우린 집안으로 들어갔다. 채신의 어머님은 중년이었는데도 한 번도 고생을 해 본적이 없는 새색시처럼 고왔다. 채신의 아버지가 모 기업의 중역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돈 못 버는 아버지 때문에 평생 지하철역 청소나 하며 산 어머니가 가엾게 느껴졌다. 사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돈을 못 버는 남자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짐작한대로 채신이 부모님은 채신의 배우자로 나를 못 마땅해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멍청한 채신보다는 훨씬 생각있는 인간이라고 자부하지만 그런 것은 딸의 사위를 고를 때 부모님이 고려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나는 채신보다 돈 못 버는, 별볼일 없는 여자 고등학교 선생이며, 집안도 가난하고, 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역시 아버지처럼 착하기만 한 다른 남자랑 재혼한 어머니가 있는 집의 아들로 뭐 하나 채신보다 나을 것이 없었으니 채신이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할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아마 채신의 나이가 서른이 넘지 않았다면 그들은 채신을 결코 나랑 결혼시키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채신의 나이가 이미 서른 셋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이가 많다는 것은 언제나 여자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못마땅한 얼굴로 나와 채신이를 번갈아 보던 채신이 부모님은 마지못해 나와 채신이의 결혼을 승낙해 주었다.
채신은 부모님의 승낙이 떨어지자 무척 기뻐했다. 바보같은 채신은 서른 셋의 나이에라도 결혼하게 된 것이 무지 감격스러운 모양이었다. 채신이 부모님은 나를 탐탁치 않아 했지만 그래도 채신과의 결혼을 승낙했기 때문에 나한테 그럭저럭 사위 대접을 해 주었다.
우린 주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멍청한 오빠일 거야.”
밥을 먹던 채신이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거실로 나가는 채신을 보았다.
아무리 오빠가 멍청하더라도 동생은 오빠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게 가족인 것이다. 나는 채신이 부모님이 채신이한테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주기를 내심 바랬다. 그러나 채신이 부모님 또한 채신처럼 채신이 오빠를 멍청이라고 인정하고 있는지 채신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채신이 멍청한 것은 부모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지 멋대로 아이를 낳고 아이가 무슨 자기 소유물이라도 되는 양 아이를 망쳐 버린다. 우리 어머니는 나 하고 동생한테 이 다음에 커서 약사가 되라고 했다. 솔직히 난 약사가 싫지 않았다. 약국에 쳐 박혀 있는 게 좀 심심하고 따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약사라면 괜찮은 직업에 속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난 어머니가 왜 나와 동생한테 그렇게 약사가 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괜찮은 직업은 약사말고도 얼마든지 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그건 어머니의 꿈이 약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와 동생은 약대를 갈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삼류대학 수학과에나 들어갔고 동생은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 그렇게 자식을 통해서나마 이루려고 했던 어머니의 꿈은 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자식이란 언제나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치기 마련이다.
채신이가 오빠와 같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순간 나는 채신이 오빠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남자가 남자를 보고 반하다니? 머릿속에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계속 외쳤다. 그러나 심장은 머리와는 따로 놀았다. 채신이 오빠의 눈은 자수정을 박아 놓은 듯이 빛나고 있었고 그래서 나의 심장은 제 멋대로 계속 뛰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채신이 오빠는 부모님한테 인사를 하고는 밥통에서 밥을 떠 가지고 와서는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내 심장은 더욱 더 빠르게 뛰었다. 채신이 오빠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정말 웃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의 집에 온 것인데 그 여자의 오빠한테 첫 눈에 반해 버리다니? 머리에서는 계속 너 지금 제 정신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머리는 언제나 심장을 이기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다. 인간은 결코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다.
나는 너무나도 심장이 뛰어서 채신이 오빠를 제대로 쳐다보진 못하고 흘끗 흘끗 쳐다보고 있었는데 채신이 오빠가 핸드폰을 받았다. 채신이 오빠는 통화를 끝내더니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급한 환자가 있어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채신이 오빠는 서둘러서 집을 나갔다.
“니 오빠 의사야?”
“응 성형외과 의사야.”
“그럼 돈 많이 벌겠네. 우리 나라 성형 천국이잖아?”
“성형외과 의사라고 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네. 쟤는 멍청한 성형수술만 하거든.”
“예?”
“화상 입은 환자나 사고로 심하게 얼굴이나 몸을 다친 사람만 성형해. 다시 말해 힘만 들고 돈은 되지 않는 성형수술만 하는 거지. 게다가 그 돈마저 제대로 받지 않는 때가 다반사라니까.”
나는 정말 감동 받았다. 세상엔 정말 괜찮은 남자도 있는 법이다.
“정말 자식을 잘못 키웠어. 돈 많이 벌라고 의대를 보내 뒷바라지 해 줬더니 저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러니 서른 일곱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지. 사람은 말이야. 뭐니뭐니해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돈을.”
채신이 아버님이 동조했다.
나는 어떻게 이런 부모밑에서 저렇게 훌륭한 아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일이란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밥을 다 먹은 후 나는 채신이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채신은 대문 앞까지 나를 마중나왔다.
“니 오빠는 여자 친구 없어?”
“있을 리가 없잖아? 돈 못 버는 의사를 누가 좋아하겠어?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야?”
이런 바보같은 여자랑 결혼해야 하다니?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냐. 그냥. 난 그만 갈게.”
나는 채신한테 작별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채신이 오빠를 또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엔 정말 괜찮은 남자도 있는 법이다.
현준이 누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현준이의 방으로 가 보았다. 컴퓨터 모니터만을 멍하니 보며 앉아있던 현준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너 마침 잘 왔다. 안 그래도 지금 멋진 소설을 구상했어.”
“그러셔? 이번엔 어떤 훌륭한 소설을 생각했는데?”
나는 현준이 또 헛소리를 할 거라는 것을 확신해서 비아냥 거리며 물었다.
“제목은 사이버 머니고.”
“사이버 머니?”
나는 현준이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어떤 내용인데?”
“내용을 얘기하려면 오늘 하루를 다 얘기해도 모자라니까 대충 어떤 메시지를 담고있는 소설인지 시로 표현할게. 잘 들어.”
나는 나도 모르게 또 현준이의 말에 끌렸다.
현준은 시를 읊기 시작했다.
“머니는 머니고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다. 머니는 머니가 아니고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니다. 머니는 머니가 아님이 아니요.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님이 아니다.”
나는 방금 전에 현준이의 말에 혹했던 내 자신한테 화가났고 현준이란 녀석한테는 더 화가 났다.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안 끝났어. 더 들어 봐. 머니는 사이버 머니고, 사이버 머니는 머니다.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니고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니다.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님이 아니요, 사이버 머니는 머니가 아님이 아니다. 머니는 뭐고 사이버 머니는 또 뭔가? 어때 진짜 감동적인 메시지지 않냐?”
“뭐야 그게?”
나는 짜증이 가득 난 얼굴로 현준이를 보았다.
“이런 쉬운 것도 이해를 못 하다니? 넌 정말 대학을 헛 나왔어.”
대학을 헛 나온 건 내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서 헛소리나 하고 있는 현준이다. 현준이한테 ‘대학을 헛 나온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이 백수야.’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꿈쩍도 않을 현준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현준이를 생각했다.
지구에는 별나고 별난 사람들이 많다. TV에서는 매주 그 별난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 그래서 나는 그 동안 별난 현준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신들이 현준이를 이해하는데 이해가 될는지도 모르니 현준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해 주겠다. 현준이 할아버지는 국어학자셨다고 한다. 그는 7남매가 있었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학생이던 현준이 아버지만을 남기고 이북으로 넘어가셨다. 졸지에 혼자 남게 된 현준이 아버지는 해 보지 않은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왔다. 그 동안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고 한다. 그렇게 험난하게 살아온 현준이 아버지는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을 터득했고 운수업으로 자수성가했다. 현준이 아버지는 1남 1녀를 두고 있었는데 소아마비인 딸 한테는 애정 한 번 주지 않았고 현준이한테는 지나친 애정을 주며 현준이를 강하게 키우려고 했다. 현준이 아버지는 남자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못하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현준이한테 무엇이든 가르치려 들었고 가르칠 때도 심하게 가르쳤다. 얼마나 심하게 가르쳤냐 하면 현준이 아버지는 현준이한테 수영을 가르칠 때 현준이를 깊은 물 속에 내 던졌다. 스스로 헤엄을 쳐서 나오라는 것이었다. 현준은 살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고 현준이 아버지는 현준이가 물 속으로 빠지려고 할 때 현준이를 구해 주었다. 그러나 조금 후 현준이 아버지는 다시 현준이를 물 속으로 내 던졌다. 현준은 살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고 현준이 아버지는 현준이가 또 물 속으로 빠지려고 할 때 현준이를 구해 주었다. 결국 현준은 그렇게 반복된 학습을 통해 수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준은 그 일로 물을 무서워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현준은 수영을 할 줄은 아는데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현준이가 나한테 들려준 말이다. 그 한심한 인간이 나한테 들려준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솔직히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 인간의 말은 도무지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이 이야기에서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은 현준이 아버지가 운수업을 한다는 것과 현준이한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누나가 있다는 것 뿐이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나는 현준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 앞에는 현준이 누나가 와 있었다. 현준이 누나는 손에 보자기로 싼 물건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현준이 누나가 인사를 했다. 현준이 누나는 나 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데도 매번 나한테 존댓말을 했다.
“저한테 말 놓으라고 했잖아요. 제가 다섯 살이나 아랜데. 현준이 데리고 나올게요.”
나는 현준이의 방으로 갔다.
“누가 온 거야? 사이버 머니 말고 또 하나 멋진 작품을 구상했는데. 산통 다 깼다니까.”
나는 기가 막힌 얼굴로 현준이를 보다가 내뱉었다.
“그 산통 다 깬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냐? 바로 니 누나다.”
현준은 내 말을 듣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번개처럼 나갔다. 현준은 항상 이 세상에서 자기 누나같은 바보는 없을 거라면서 자기 누나를 제일 존경했다.
“누나, 그건 뭐야?”
현준은 현준이 누나가 들고 있는 보따리를 보고 물었다.
“김치 좀 싸 왔어. 정찬씨 하고 같이 먹어.”
현준이 누나는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현준이 한테로 오더니 김치를 싼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하여튼 누나같은 바보도 없다니까. 동생 친구한테 정찬씨가 뭐야? 그냥 정찬이라고 불러.”
“그래요. 정찬이라고 부르세요. 저한테 계속 그렇게 존댓말 쓰면 오히려 제가 부담되요.”
“부담갖지 마세요. 전 이게 편해서 그러는 거니까요.”
“야, 너 이것 좀 냉장고에 갖다 넣어라.”
현준은 보따리를 풀더니 지가 마치 집주인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왜 내가 갖다 넣어야 되는데.”
“난 누나가 왔잖아? 누나랑 얘기해야 한다고. 그리고 너 우리 누나 아니면 니가 그렇게 맛난 김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그 정도는 당연히 니가 해야 되는 거 아냐?”
솔직히 그 말은 현준이의 말이 맞았다. 난 태어나서 여지껏 현준이 누나가 담근 김치처럼 맛있는 김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김치가 담긴 네모난 통을 들고 주방에 있는 냉장고에 갖다 넣었다. 거실로 나오니 현준과 현준이 누나는 소파에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누나 내가 정말 멋진 글 하나를 구상했거든. 한 번 들어볼래?”
“응.”
현준이 누나는 티 하나 없는 환한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제목은 사이버 머니인데 잘 들어 봐. 머니는 머니고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다. 머니는 머니가 아니고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니다. 머니는 머니가 아님이 아니요.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님이 아니다. 머니는 사이버 머니고 사이버 머니는 머니다.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니고 사이버 머니는 머니가 아니다. 머니는 사이버 머니가 아님이 아니요. 사이버 머니는 머니가 아님이 아니다. 머니는 뭐고 사이버 머니는 또 뭔가? 어때? 괜찮지 않아?”
“진짜 감동적이야. 넌 정말 이 다음에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으면 지능도 나빠지는 것인지 어쩜 저렇게 말도 되지 않는 글에 저리도 감동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 이거 니 용돈이야.”
현준이 누나는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현준이한테 주었다.
“미안해 누나. 서른이 넘었는데도 늘 누나한테 용돈이나 타 써서.”
“동생이 누나한테 용돈 타 쓰는 게 뭐가 미안하다고 그래? 오히려 내가 용돈을 많이 못 주니 미안하지.”
현준이 누나는 현준이 말 대로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바보다. 솔직히 이건 채신보다도 더 심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저런 바보를 누나로 둔 현준이가 조금 부럽다.
“인형 공장은 다닐만해?”
“응. 사장님 하고 직원들 다 잘 해 줘.”
사실 현준이 누나는 인형 공장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현준이 또한 집 나와서 나와 같이 살 이유가 없었다. 앞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현준이 아버지는 잘 나가는 운수회사의 사장이다. 그러나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현준이 아버지는 소아마비인 현준이 누나를 가문의 수치로 살았다. 결국 현준이 누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을 나왔고 그것 때문에 현준이 또한 집을 나왔다.
“누나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 할 텐데. 누나 혹시 사귀고 있는 사람 있어?”
“아니. 누가 나 같은 사람 좋아하겠어?”
“누나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 누나처럼 이쁜 여자도 흔치 않다고.”
그것 또한 현준이의 말이 맞았다. 현준이 누나는 사실 무척 이뻤다. 언젠가 현준이 하고 현준이 누나랑 나이트 클럽을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현준이 누나는 가기 싫다고 했지만 현준이가 끌고 간 것이었다. 우린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곳에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현준의 누나의 미모에 반해서 요샛말로 현준이 누나한테 작업을 걸어왔다. 우린 그 날 나이트 클럽에서 두 시간 동안만 있었는데 두 시간 동안 현준이 누나한테 작업을 걸어온 남자는 일곱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 일곱명의 남자는 현준이 누나의 걸음걸이를 보더니 하나같이 자기가 사람을 잘못 봤다면서 떠났다. 나와 현준은 그 날 그렇게 멍청한 남자들만 모이는 나이트 클럽에 하도 화가 나서 나이트 클럽을 때려 부수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못 가 소위 나이트 클럽의 어깨들한테 실컷 얻어 터진 후 나이트클럽 밖으로 쫓겨났다. 우린 한달 동안 이나 병원신세를 졌다. 우리를 간호해 준 것은 물론 현준이 누나였다.
“그만 갈게.”
현준이 누나가 말했다.
“벌써? 좀 더 있다 가지?”
“그래요. 좀 더 있다 가세요.”
“아니에요. 김치나 주려고 왔던 건데 너무 오래 있었던 거 같아요. 전 그럼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현준이 누나는 불편한 다리를 심하게 절뚝 거리며 문쪽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넌 말야. 정말 저런 누나가 있다는 걸 복으로 알아야 해.”
“걱정마. 이 다음에 누나한테 세상을 다 가져다 줄 거야.”
“뭘 가져다 준다고, 세상?"
“그래. 세상. 요즘은 돈으로 못하는 게 없잖아? 돈만 있으면 세상도 살 수 있다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니가 세상을 사? 인형 공장에서 일하는 누나한테 용돈이나 타 쓰는 백수가?”
나는 한껏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내가 비록 지급은 백수지만 이 다음에 큰 돈 만지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예를 들어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쓴 글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는 거라고.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 날을 기다리며 난 로또 복권이나 사러 가야겠어.”
현준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 구제불능인 녀석이다. 가끔은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인간도 있다고 제보를 해서 기네스북에 올리고 싶은데 도무지 어떤 부문에 올려야 할지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현준이 누나만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