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픽션 (3)
- 그들의 마지막 픽션. -
이제 시간은 마지막 수업이 있는 월요일입니다.
그들이 합께 듣는 수업도 오늘로 종강이라는 말이겠지요.
마지막 수업의 상황을 살펴 보기전에 우선 확인 할 것들이 몇가지 있네요.
2주전 토요일, 그러니까 그녀가 편의점에서 그를 발견했던 날.
사실 그도 그녀를 알아 봤습니다. 하지만 너무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전날 늦게까지 술을
먹고 오후에야 겨우 일어났기 때문에 그녀에게 얼굴을 보일수가 없었죠.
그래서 장보기가 끝났으면서도 과일 코너 앞에서 그녀가 나갈때 까지 계속해서 머뭇 거렸던 겁니다.
그 역시 그녀가 자신의 원룸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적잖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 전화 통화는 그런 그녀를 위해서 했던 배려였습니다.
어쩌면 그날 그가 그녀에게 용기있게 인사를 했다면,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었겠지만 그는
지난번에도 말한것 처럼 소심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집고 넘어가야 할것은, 그녀의 관심이지요.
관심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에대한 애정이 되었건 미움이 되었건 하는
종류와 무관하게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간다는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는 애써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관심을 더욱 크게만 하는 지름길
입니다. 오히려 순순히 긍정한다면 해결되었을 감정들에 해체를 시도하자 모호해 졌다라고나
할까요.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와 스트루브의 아내간의 그 불편한 화음조차 관심의 일종이였고
그녀는 결국 거기에 굴복하고 말죠. 감정이란 해체하려 하면 더욱 모호해지고 그것은 더욱
매력적으로 변해 버리니까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지금 시간이 5시45분 이제 곧 그와 그녀가 강의실에 들어 오겠지요.
그는 오늘 쪽지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구요.
사람의 생명이 죽음의 존재로 인해 더욱 활활 타오르듯이, 그녀와의 마지막 수업이 그의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고 해야겠지요.
자리에 앉은 그는 지금 고민중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죠.
- 내가 그애를 좋아하나.. 아니.. 그냥 어쩌다 생긴 호기심 때문에 그런걸지도 몰라.
아니면 복학하고 한학기 동안 외롭게 지내서 그래서 그런지도 몰라..
그래도 이런것도 인연이고, 혹시 운명같은건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지금 그가 하는것은, 스스로의 마음에 삽질을 하는 것이지요.
열심히 열심히 깊이 파헤칠수록 점점 어두워지고 알 수 없어지는 그런.
아, 저기 그녀가 들어오네요. 그는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 하지만 경직된 그의 몸동작은
'나는 당신에게 매우 신경 쓰고 있습니다'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것 밖엔 되지 않습니다.
그녀 역시 어색하게 자리에 앉은 다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들어보죠
- 저 사람 뭐지. 아... 정말...
오늘로 수업은 끝이니까. 마지막 수업인데 끝나고 갑작이 휴대폰 번호라도 물어오면 어쩌지.
그러면 남자친구가 있다고 할까? 아니면.. 그냥 싫다고 할까?
그냥... 그냥... 핸드폰 번호는 줄까?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일지도 모르니까. 학교에 아는 사람도 업고..
근데, 내가 왜이렇게 신경 쓰는거지? 나 정말 외로운가봐.. 미쳤어. -
그녀도 역시 계속해서 삽질 중이네요.
그와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옆에 이것 저것 이유를 가져다 세워 보지만 답을 알 수는 없지요.
왜냐면 그런것들은 어떠한 이유를 가져다 둬도 사실 비슷하게 들어 맞거든요.
그와 그녀가 대학 입학때부터 알고 지내게된 같은 과 친구 였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그건 장담하기 힘들겠지요.
어쨌든 그와 그녀 속의 픽션은 이제 최고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강의가 끝이나고 교수님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학생들은 자신의 가방을 챙깁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이고,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녀가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가방의 짐을 챙기는 동안에, 그는 몇번이나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좀 나가면 그때,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부드럽진 않죠.
조교들과 몇몇 학생들이 수업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강의실은 소란 스러웠습니다.
그가 고민을 하는 사이, 그녀는 결국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그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후회.. 아쉬움.
실망한 얼굴로 자신의 가방을 챙겨 강의실 밖 복도를 나섭니다.
그리고는 학교 후문으로 가기위해 강의실 아래층 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순간, 휴대폰을 자리에 두고온 그녀는 강의실로 가기위해 그와 정반대에서 그를 향해 걸어
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어서 그녀와 한참 가까워 질때까지 그녀를 보지 못하다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고개를 들고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아는채 하고 맙니다.
"어" 짧은 감탄사.
그녀도 역시
"아..."라는 짧은 감탄사를 날리고 말지요.
서로가 관심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면, 이런일은 생기지 않았겠죠. 그 종류와는 무관하게
그것이 존재 한다는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는 긴장한 나머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멍청한 단어 베스트10 단어중 하나를 택일 합니다.
"아.. xx수업 들으시죠."
그녀가 애써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아.. 그 수업 들으세요?"
..........
..........
그와 그녀의 픽션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젠 그와 그녀의 리얼이 되겠지요.
누군가는 감정이라는 것에 굳이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생태학적 관점에서, 철학적 관점, 신학적 관점... 기타 등등
하지만, 사실 그런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란 것을 어떻게 완벽하게 말로 글로 표현하고, 심지어 그들을 분류하고 그 감정들간의
결합, 분해, 회귀.. 심지어 그것의 메커니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저
있는 것, 존재 하는것이지요. 단지 그것 뿐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중하기도 한것이지요.
알 수 없다는것의 매력은 신이 인간에게 부러워 하는 유일한 특혜이니까요.
- 모두의 픽션을 바라며....
-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