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의 술자리
남들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있는 호프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들이도 현준이도 와 있지 않았다.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내가 앉은 자리로 왔다.
“좀 있다 시킬게요. 사람이 오기로 했거든요.”
종업원은 자리를 떠났다.
조금 있자 남들이가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남들이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남들이는 내가 앉은 자리로 와서는 맞은편에 앉았다.
“소설가 지망생은?”
“아직 안 왔어.”
30분을 기다렸는데도 현준은 나타나질 않았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도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우리 먼저 마시지.”
남들이가 말했다.
“그래.”
남들이는 우선 소주 한 병과 부대찌개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곧 소주를 가져와서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남들이가 마개를 땄다. 그리고는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축하해.”
“뭘?”
내가 병을 건네받아 남들이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채신씨랑 결혼한다며?”
“결혼이 축하할 만한 일이야?”
나는 결혼이 축하할 만한 일이라는 것에 도무지 동의를 할 수가 없다. 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본 부부들은 나의 부모님처럼 하나같이 왜 같이 사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불행하게 살았다. 예외라면 내 앞에 앉아있는 남들이뿐이었다. 남들이는 부인과 정말로 금슬이 좋다. 내가 보았던 부부들이 남들같지 않은 사람들이었는지 남들이가 그부분만은 남들과는 다른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부분만은 솔직히 남들이가 부러웠다.
“당연하지. 남들이 하는 건데.”
어김없이 또 남들이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바람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종업원이 부대찌개를 가지고 와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우린 안주가 나와 술을 한 잔 할려고 했는데 그 때 현준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준은 우리가 앉은 자리로 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잔을 하나 더 갖다 달라고 했다. 조금 후 종업원이 잔을 가지고 왔다.
“뭐 하다 이제 오는 거야?”
“은혜랑 모텔 갔었어.”
현준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
“은혜랑?”
나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뭘 그렇게 놀라? 우린 서로의 동의하에 했을 뿐이야.”
“은혜가 누구야?”
남들이가 물었다. 남들이는 현준이가 우리반 학생인 은혜를 사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정찬이네반 학생.”
“그럼 고등학생이잖아? 너 지금 고등학생하고 그 짓을 했단 말이야?”
남들이는 기가막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 고등학생은 여자 아니냐? 그리고 방금전에도 말했듯이 우린 분명 동의하에 한 거라고.”
“넌 니네반 학생이 이 인간이랑 놀아나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놔 둔 거야?”
남들이는 이번엔 나한테로 화살을 돌렸다.
“청소년도 사생활은 있는 거니까.”
“너희 두 인간은 정말로 이해가 안 돼. 어떻게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그렇게 태연하게 할 수가 있어?”
현준이가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뭐라고 적었다.
“뭐하는 거야?”
내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무 것도 아냐. 우리 술이나 마시자고.”
우리 셋은 잔을 부딪힌 후 술을 마셨다.
“달타냥이 다음주에 돌아온대.”
남들이가 말했다. 달타냥이 중국으로 떠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 있었다.
“달타령이?”
현준이 말했다. 현준은 달타냥이 노래방에서 달타령을 기막히게 부르는 것을 보고 그 때부터 달타냥을 달타령이라고 불렀다. 남들이는 현준이 달타냥을 달타령이라고 부를때마다 ‘달타령이 아니라 달타냥이야.’ 라고 했고, 달타냥은 ‘난 괜찮아, 달타냥이나 달타령이나 한끝 차인데, 뭐.’ 하고 가볍게 웃어넘겼다.
달타냥은 내가 살아오면서 본 여자중에 최고의 여자다. 나의 약혼녀인 채신이나 바보처럼 항상 웃는 내 동생하고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했고, 누구보다 현명했다. 채신이나 내 동생처럼 달타냥을 정의 내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무리해서 정의를 내린다면 달타냥은 연애를 원하는 남자한테는 언제나 폭탄이었지만 결혼을 원하는 남자한테는 언제나 최고의 신부감인 여자였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라고 늘 소리 높여 외치는 현준이 마저도 ‘만약에 내가 그 미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 신부는 바로 달타령일 거야.’ 라고 말할 정도였고 나하고 남들이도 달타냥과의 결혼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달타냥은 결혼이 왜 미친 짓인지를 알만큼 현명한 여자였고 그래서 달타냥의 마음속에 결혼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 삼총사는 달타냥하고 그냥 계속 친구로 지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찬이 너××××× 배워라.”
남들이가 말했다.
“응?”
나는 달타냥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어서 남들이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니야. 아무 것도. 근데 뭐라 그랬어?”
“결혼하기전에 운전 배우라고.”
“왜?”
“왜라니? 남들은 다 운전해.”
현준은 수첩을 꺼내 또 무엇인가를 적었다.
“난 운전 배우고 싶은 생각 없어. 채신이가 운전 할 줄 아는데 내가 뭣땜에 배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내 와이프도 운전 할 줄 알아. 하지만 우린 드라이브할 때 항상 내가 운전한다고.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그러니까 너도 곧 채신씨랑 결혼하면 드라이브도 하게 되고 그럴텐데 그 땐 니가 운전을 해야 하는 거야.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현준은 또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아, 참 그리고 달타냥이 돌아오면 채신씨도 같이 다 우리집에 한 번 오라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대접할테니까.”
“갑자기 웬 초대야?”
이번엔 현준이가 물었다.
“웬 초대라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게 뭐가 이상해? 남들이 다 하는 일인데. 그리고 정찬이가 결혼하게 된 것도 축하해 줘야지. 결혼은 남들이 다 축하해 주는 일이잖아?”
현준은 또 수첩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렸다. 나는 더 이상 궁금중을 참지 못하고 현준이의 수첩을 뺏아서 보았다. 1부터 15까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지금까지 남들이 입에서 남들이란 말이 얼마나 나왔는지 센 거야. 30분동안 15번 나왔어.”
나는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혔다.
“도대체 이런 한심한 짓을 왜 해?”
“한심한 짓이라니? 일본의 인기작가 하루키는 젊었을 때 숫자로 세상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모든 일들을 수치화 하려 했었다고. 나는 지금 저 인간을 숫자로 파악해 보는 중이야.”
“그래서 뭐 좀 알아냈냐?”
“아니. 이제 30분밖에 안 지났잖아?”
“그럼 그 짓을 계속하면 저 인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수첩을 건네주며 비아냥 거렸다.
“솔직히 확신은 안 서.”
“근데 왜 그런 짓을 해?”
“확신이 안 선다는 건 확신이 설 줄도 모른다는 얘기야.”
“넌 정신감정 한 번 받아 봐야 하는 거 아냐? 넌 말야 남들이 도무지 상상을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남들이가 말했다.
“16번째군.”
현준은 수첩에 16이라고 썼다.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거야?”
“물론. 계속 말해 봐.”
“넌 말야 도무지 남들이 상상을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친구가 담임인 반의 학생하고 원조교제를 하지 않나? 쓰잘데 없는 숫자나 적질 않나?”
“원조교제는 아니야. 강제도 아니었고 돈 주고 한 것도 아니니까.”
현준은 수첩에 17이라고 적으며 말했다.
“야,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
보다 못한 내가 더 이상 두 친구의 한심한 작태를 참을 수 없어서 말했다.
“좋지.”
현준과 남들이가 동시에 말했다. 우린 잔을 부딪히고 깨끗이 비웠다. 우린 서로의 잔에 다시 술잔을 채워주고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는데 2시간이 지난 후 우린 술이 취해서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상태가 되어서 남들이는 여전히 툭하면 남들이란 말을 내뱉았고, 현준은 남들이의 입에서 남들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수첩에 숫자를 적었으며, 나는 죽어도 운전은 안 배운다고 소리높여 외쳤다.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한심한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많이 취해 있었는데도 달타냥이 있었으면 이렇게 한심한 술자리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타냥이 있었다면 분명 무언가 건질게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삼총사가 유일하게 뜻이 맞는 부분은 달타냥이 우리보다 박학 다식하고 현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달타냥은 내가 보아온 사람중에 최고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