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름 산바다 지리산엘 다녀왔어요
날씨가 흐려지고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접한후에도 몇번에 걸처 계획을 미룬탓이어서 또다시 출발을 늧추기가 싫은 마음에 일정을 강행하기로 하고 서울에서의 반복된 삶을 뒤로한채 남부터미널에서 화개장터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고나니 마음이 그렇케 홀가분해질수가 없었다
여행이란 항상 이런 마음을 가져다 주니 좋지않을수가 없는가 보다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들에대한 설레임과 기대감,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억지스런 생업에서의 탈출,그리고 일상사에서의 상념과 번민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내자신을 느낄수가 있어서 좋다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나 전주를 거쳐 성춘향의 고향 남원을 뒤로하니 지리산의 실루엣이 그모습을 조금씩 드러내 보여주기 시작한다
흐린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더 더욱 신비감에 젖어 산 등성 너머 너머에 그 장엄한 기세를 내보이는 지리산 줄기는 언제보아도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경외감을 느끼게 하여 준다
지리산! 아! 말만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산!
민족의 영산이자 겨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산이지만 나에게는 포근한 어머님의 품과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는 아버지의 가슴과도 같은 느낌을 동시에 되살려 주며 두려움과 설레임을 같이 안고 시작하는 산행이다
구례에서잠시쉬고 출발한 버스는 오른편을 끼고도는 섬진강줄기를 따라 화개로 향한다
섬진강을 이렇케 밝은 시간에 대면하기는 또 처음인지라 그아름다음에 감탄을 지나쳐 버릴수가 없다 지기 시작한 석양과 어우려져 지리산 서남쪽 줄기따라 굽이 굽이 따라 흐르는 환상적인 섬진강의 모습은 두고 두고 잊지못할 것 같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 섬진강만을 보러 다시 와야지" 하는 마음을 다지고 있자니 벌서 화개 정류장에 도착한다
조영남의 노랫말에서만 듣던 화개의 모습은 마침 장날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철시한 상태 인지는 몰라도 실소를 금치못할 정도로 실망감을 안겨주어 섬진강에서 받은 아련한 감동을 잠시나마 반감시켜 주고야 만다
서둘러 쌍계사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몸을 실고나니 승객들은 오직 늦은 하교길의 학생들 뿐이였고 캄캄한 밤에 지쳐 집으로 향하는 모습들은 내가 사는 도시의 아이들과도 별반 다를바가 없게 느껴진다
왜들이럴까...? 어디서나 우린 이런 모습을 벗어날 수 없다니....
이런 모습들이 다 지금의 우리의 탓인데....... 왜 그멍에를 아이들에게 다 지우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목적지엘 도착한다
내리자 마자 식당에 들러서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당 주인에게 내가 등반하고자 하는 남부능선 코스에 대해 이것 저것 여쭈어보니 주인할머니는 내가 혼자 산행을 한다는 말에 극구 말리기부터 한다.
그길은 너무위험하다고... 요즘에 그길로 다니는 등반객들을 못 보았다고 하는등...
더구나 비바람에 태풍까지 올라온다니...
그말을 들으면서 웬지 불안감을 떨쳐 버릴수가 없어 그 자리에서 등반코스를 수정하기로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 의신마을에서 대성골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기로 하였다
대성골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큰 비극인 6.25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안고있는 곳이다
지리산 협곡중 가장 깊은계곡으로 알고있고 빨치산이 몰살당하며 최후를 맞이한곳으로도 유명한 골짜기로 지리산의 아픈 역사를 대표하는곳이기도 하다
남부능선코스보다는 경관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산행코스가 될수도 있다는 마음에서 이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의신마을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길가의 가게앞에 놓인 반상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캄캄한 산중마을에서 홀로 누워 깊은 하늘을 보니 분위기가 너무 적막하다못해 외로움이 엄습해오는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 마을에서 할머니 한분이 내려오셔서 말동무가되어주시니 기다림이 한층 쉬워진다 동네는 분명 경상도인데도 할머니 말씨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는게 너무 흥미로웠고 같이 막차를 기다리며 이얘기 저얘기를 할 수가 있었는데 내가 평소에 할머니들하고의 대화를 즐기는터라 정감이 넘치는 따뜻한 대화를 한시간여를 나눌수 있었으며 할머니는 나보고 " 다시는 절대 혼자서 산길을 나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집에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라"시며....
버스에 동승해 결국에는 그 할머니의 친척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고 덕분에 남도 사람들의 훈훈한 정을 잠시나마 느낄수 있어좋았다
먼동이 희뿌였게 밝아오는 새벽녃 산길을 떠나는 나를 배웅하며 조심하라는 모습은 꼭 친할머니를 떠올리게 하였고 산행출발전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꽤나 고생스런 산행이 되겠구나" 하는 각오를 미리하게 하였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와 비경에 미처 시선을 주지못하며 가슴깊이 산내음을 맡을 여유가 없어지고 산능선을 향해 올라가는 발걸음은 쏟아지는 빗물에 점점 무거워지지 않을수가 없었으며 지리산에서 가장깊은 계곡이라는 대성골의 명성과 아무리 올라가도 인적이라곤 전혀 마주치거나 볼 수 없는 적막감속의 깊은계곡 물소리는 자꾸만 이곳에서 몰살당한 빨치산 원혼들의 울부짖음과도 같아 웬지 나도모르게 자꾸만 발걸음을 서둘러지게 한다
점점 굵어지는 빗속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행동식으로 가져온 쵸코릿과 빵조각으로 허기진 배를 진정시키고나니 다시 조금은 힘이 솟는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산에서 먹는 빵맛과 물맛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이있다 산아래선 쳐다보지도 않을 빵조각은 그야말로 입안에서 살살녹아내려 꿀맛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행동식을 마친후 폭우가 계속됨에 따라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도중하산은 너무 싫어서 강행을 했는데.....비가 그칠줄을 모르고 바람이 심하게불어 너무 힘이 들다보니 내가 왜 이렇케 꼭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 마저 든다 어차피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냥... 가는거지 하는 마음으로...한걸음 한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시간으로 때우면서........
진정 외로움을 즐긴다는 생각을 다시는 못할정도로 마음껏 혼자의 자유를 누려본다
사람이 절로 그리워질때까지.....
목적지인 세석이 아련히 작은 능선 너머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능선 바위턱에 앉아 눈앞에 확 펼쳐지는 전경을 바라보니 발아래 구름이 흐르고 산바다가 밀려온다 구름 구름과 안개비에 모습이 가린 끝봉우리만이 보이는 풍경은 맑은날의 산천지와는 또다른 수평선위의 무인도를 연상시킨다
정말 신비스러우며 날수만 있다면 저 구름바다 산바다에 이몸을 던지고 싶은 벅찬 충동이 가슴을 뒤흔든다
아! 이럴 때 저 천지를 정말 어떤말로 표현해야할까..?
좀더 저 모습에 딱 맞아 떨어지는 표현을 못하는 못내 아쉽기만 한 마음을 숨기며 일어선후 목적지인 세석 까지는 그마음 그대로 간직하며 정말 마음만은 기분좋은 상태로 무사히 도착을 하였다.
세석고원! 5,6월이면 철쭉꽃으로 뒤덮여 있을 세석의 모습은 간데 없고 어둡고 짙은 비안개가 감싸고 있었으며 음습한 분위기의 산장이 나를 맞이 하였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올동안 사람구경을 못해서인지 서너명의 등반객이나마 너무 반갑게 여겨지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기가 느껴지는 몸을 녹이고 젖은옷을 갈아입은후 간편한 인스턴트식으로 다시 한끼니를 해결하고서 도저히 이빗속에 강행이 자신이 없어 바로 하산하려고 산장지기에게 길을 물어보니 내가 예정한 하산길이 계곡물이 불어남에 따라 모두 봉쇄된지라 당일 하산을 포기하고 세석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작정을 하고나니 몸과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
지루하고 긴시간 이럴 때 음악이라도 들을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다가오며 카세트에 테이프라도 한두개 가져올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런 마음을 세찬 빗소리로 대신하고 피곤함에 지친몸은 깊은잠에 빠져들었다
잠을 청할땐 이넓은 산장침상에 분명 나혼자였는데 새벽녃 부스럭 소리에 깨어보니 이 빗속에 나말고도 산사람들이 몇 명은 되어보인다 서둘러 기상하여 햇반과 짜장으로 아침식사를 가벼이 하고 일정을 계속할 준비를 마친후에 장터목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는데 연일 그리고 밤새도록 비가 그치질않고 계속되어 계곡물이 불어나고 등산로가 물길로 변하여 배로더한 체력이 소모된터인지라 남은여정을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간절히 들기 시작한다 장터목까지는 그런데로 길이좋고 악천후의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비구름으로 뒤덮힌산바다를 바라보며 지리산의 장쾌함을 눈아래로 느끼며 갈수있었기에 피로함을 훨씬 덜수있어 좋았다
장터목에서는 그래도 그명성그대로 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정신없는 제법 많은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장터목산장이 있는곳은 옛날 경남 남쪽 하동 사람들과 북쪽 함양사람들이 산능선인 이곳에서 만나 장터를 형성했다는 유래가 있다고 들었다
이곳에서 천왕봉은 한시간여 거리이지만 퍼붓는 빗속에 서둘러 하산을 결심하고서 "어휴..언제 이빗속에 혼자서 하산을 하나" 하며 있는차에 그때 자기 몸보다 더 크게보이는 엄청난 배낭을 매고 오는 한 젊은이의 늠름한 모습에 매료되어 한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젊은이가 나에게 한잔의 커피를 권하면서 혼자 오셨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얘기하다보니 자기도 혼자라며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2박3일째인데 이젠 몸과 마음이 지쳐서 내려가야겠다" 고 하여 순간 반가운 마음에 동행을 요청했더니 쾌히 승낙을 한다
후후훗.....그 젊은이도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등반지도를 꺼내 안전한 하산길을 선택하다가 결국엔 다시 세석으로 돌아가 거림골로 내려가는길이 가장 빠르고 좋을 것 같다고 결정한후 바로 그길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거림골 역시 내가 하루묵은 의신부락 그리고 대성골과함께 빨치산 토벌 때 잿더미가 되어버린 남부군 대몰살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결국 이번산행길은 시작부터 마칠때까지 이곳에서 비운에 숨져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들인 국군 토벌대와 남부군의 한가운데만을 지나온 느낌마저 든다
내가 평소에도 다리가 조금 불편한지라 하산은 더욱 조심하는 편이다 나의 불편한 걸음걸이에 혹시라도 내가 젊은이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전 양해하에 이루어진 동행길 이어서 그런지 젊은이는 보행속도를 나에게 맞추어 주었다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어서 그런지 마음은 훨씬 가벼웠고 나중에 물어보니 그 젊은이도 내가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
후후훗.........둘다 무슨 청승인지......?
하산길 역시 계속되는 폭우에 불어난 계곡 폭포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포가 보여줄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러내어 놓았으며 계곡 물줄기의 엄청난양의 속도와 힘은 내려갈수록 더하여 어떤때는 백색의 거품으로 뒤덮여 천지를 삼킬 듯이 보였고 시퍼렇다 못해 거무튀튀한 색으로도 변하는 계곡물의 괴물스러움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의 극치를 불러 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공포감과 두려움속에서 느껴지는 희열을 혹시 아시는지........?
후훗....정말 짜릿하다 못해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감의 전율이 쾌감과 희열로 느껴지는 이런 마음은 정말 나 자신도 모를일이다
자만인지.....? 여유인지.......? 아님 자포자기 인지.......?
등산로가 온통 물길로 변하다보니 잘 방수된 등산화도 소용이 없어 발걸음은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었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이다 보니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끔은 일었지만 그렇케 큰 어려움없이 오랜시간이 되지않아 민가가 있는 곳 까지 무사히 하산할수 있엇으며 끝 마친 안도감에 둘다 완전히 지친몸이여서 그곳에서 한숨을 돌리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비바람속에서 시작한 산행은 결국은 이렇케 비가 그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게 되었고 산행중 비 때문에 일정을 계획대로 실행치 못한 아쉬움이 못내 컸지만 나름대로 오래 기억에 남을 지리산행이 되었던 것 같다.
지리산! 항상 올때마다 대자연에 절로 머리 숙이게 하는 거대한 산맥군이다
산행 시작때는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컸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폭우속의 강행은 두려움을 더 크게하여 일정을 당겨 하산을 결정하였으나 두려움에서 오는 쾌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알수가 없을 것 이다
하지만 다신 산행전 마을에서 만난 할머님의 말씀처럼 이제 혼자서는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혼자만의 산행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런지.....
어쨋튼 무사히 마치게된 것을 지리산 신령께 감사드리며......
지리산이여!........... 안~~~~~~~~~녕
1999년 9월15일부터 9월17일까지
청종 신 동 식 씀
**** 부족한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귀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