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몇달전부터 날 찾던 그녀였기에 미안한 마음에 일찍 가고싶었는데.
나를 놓아주지 않는 현실때문에 또 다시 그애를 서운하게 만들것만 같아
지하철역으로 피곤한 몸을 던지며 달려간다...
....
..
몇년전 잠시..짧은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후..
늘 곁에 있는 친구들만 생각하며 살아왔고.. 이름만 친구일 뿐인 나였기에....
뒤늦게 그애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때도
바쁜 일상을 핑계로 나는 가지 못했었다.
어디서 사는지..누구와 결혼을 했는지..
그저 지나는 친구들 말속에서 그애의 안부를 잠시 듣긴 했지만..
그리 귀담아 듣지 않아서인지... 여기에 산다는 그애의 전화를 받았을때도..
솔직히 반갑긴 했지만..그저 그런 마음이었다.
어린시절 옆 짝궁을 같이 했던 그애는 늘 뒤에 숨은 아이였다.
성격은 밝았지만..무엇때문이었는지 내 기억속의 그녀는 항상 숨어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녀의 전화로 하여금 날 기억속에서 깨어나게 했다.
내가 많이 보고싶었노라고..유독 나만이 그녀의 기억속에서 깊게 자리하고 있노라고..
감동스럽기까지한 그녀의 말에..
조만간 꼭 놀러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습관대로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만 했던 것이다..
-나는 늘 이런식이다..몇월 몇일 몇시에 보자고 한 약속은 잘 지키면서..
언제 한번 보자꾸나..이런 약속은..일년을 넘길때도 있으니..
나의 이런 무던함이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주는건지도 모를일이다..-
그녀와의 약속 역시..
이렇게 지나치려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저번에도 다른친구와 같이 가려고했으나..
보고싶은 영화의 유혹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얀 거짓말을 하는 내 마음 역시 몹시도 편치 못했기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약속을 정했다.
이렇게 어렵게 정한 약속이니만큼..
무거운 하루가 날 잡아 끌었어도..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역시 늦게 도착해버린 약속장소엔..
어린시절 그 꼬맹이가 어엿한 여성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날 보며 방긋 웃는 맑은 눈동자를 한..이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내 작은 친구..
나보다 더 작은 내친구..
백일된 아이의 엄마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외모에..
앳띤 그녀의 해맑은 미소..
더욱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날 알게 된 사실 한가지..
친구는 내 전화번호를 읽어버렸단다.
결혼을 하고 그러는 통에 다른 선배언니들이나 결혼 한 친구들이 그랬듯이^^;;
결혼을 하면 옛친구들이 들어있는 수첩은 잘 읽어버리나보다...
왜 그럴까??^^
여하튼..그녀 역시 그랬단다..
핸드폰 번호는 생각도 안나고..나와 연락은 하고 싶고..
수소문해볼 친구들 전화번호도 없었기에 답답했다고 했다.
아물아물..가물가물 거리는 번호 몇개로 미안한 일이지만...
이곳 저곳 몇통의 실패전화를 했고..
열 몇번째가 우리집이었다는거다..
세상에나...--;; 나 같았음 포기했을텐데..
그말이 날 더 숙연해지게 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친구라고..
정말 난 그애의 생일이 몇일인지.. 생일날 손수건 한장 선물해 본적 없었고..
남편은 뭐하는 사람인지.. 지금 친정집은 어디에 있는지..
그런.. 의례 친구라면 알아야할 사항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는데..
나는 그런.. 이름뿐인 친구인데..
....
..
그애는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단다.
어린시절 내 기억속에 숨어있던 그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공부를 시작했단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침일찍 학원으로 나설
그애를 생각하니..
대견함에..대단함에...자연스레 고개만 끄덕여졌다..
그리고 뒤따라 이어지는 내 생각의 꼬리들..
출발선도 다르고 달려왔던 길도 달랐지만..
저만큼 달려가고 있는 그녀가 보이는듯했다.
내 인생이 그녀와의 경쟁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달려가려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하게 보였다..
다부지게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 그녀의 말속에서...어린날 한 꼬맹이의 꿈을 볼수 있었고..
뒤에 숨은 아이의 발돋움이 보였다.
어쩌면 그녀의 꿈은 이루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세상이..현실이..그녀를 굴하게 만들어도..그녀 특유의 유유자적함으로
그녀의 꿈은 물론 마음의 꿈도 꼭 이룰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