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로 여러 차례 찌른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이버는 고씨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뇌까지 손상을 입혔다.
한편, 사망 시각은 이웃집 아주머니가 고씨를 바련하기 다섯 시간 전인 오전 11시인 것으로 밝혀졌고, 갈색 양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봐서 외출을 하려던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죽은 고씨의 아들이 고씨가 죽기 하루 전에 아버지와 심하게 말다툼을 한 후 집을 나갔다는 이웃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우선 고씨의 아들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고씨가 살던 아파트 주변 뎍시 철저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주변 불량배들이 고씨가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게다가 고씨의 아들이 전 날 고씨와 말다툼을 한 후 집을 나간 사실까지 미리 알고는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조는 신문 기사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은 후, 왼쪽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쪽 이마를 여러 차례 찔러보았다. 찌를 때마다 한 쪽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통증을 느꼈다. 그럴수록 고조는 집게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올 즈음, 고조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고조를 외면하고 있었다. 고조는 다시 몸을 돌려 차창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졌다.
사람들은 모두 고조가 서 있는 곳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방향으로 고조가 움직이면,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곤 했다. 고조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고개도 고조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일정하게 움직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람들은 여러 차례 고조를 외면했다. 설사 그들의 행동이 우연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고조가 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고조로서는 모든 것을 자기 방식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때문에 고조는 결국 자신이 살인자라고 믿게 됐다. 더 이상 고조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지하철을 내릴 수도 없었다. 고조는 반드시 8시까지 법원에 도착해야 했다. 한 시간 일찍 법정에 들어서서 살인자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했다.
고조는 사람들을 노려보면서 옆 칸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고조의 시선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조가 옆 칸으로 들어섰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 역시 고조의 시선을 피해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조는 천천히 앞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위협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이제 더 이상 고조는 갈 곳이 없었다.
마지막 칸에서 걸음을 멈춘 고조는, 잠시 주춤하다 출입문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차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넥타이가 비뚤어졌고, 머리 역시 많이 헝클어진 상태였다. 고조는 지하철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넥타이와 머리 모양을 매만졌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소리나게 아니면 숨죽인 채 울고 싶었지만, 고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차창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살인자들조차 섬뜩해 할 만큼 당당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지하철 출입문이 열렸다. 지하철에서 내린 고조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7시 50분) 8시까지는 충분히 법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한 시간 일찍 법정에 들어섬으로써 재판관과 검사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 때문에 고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또 한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고조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눈을 감고 걷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곧장 법원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눈을 감은 상태로 법원을 수없이 왔다갔다해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걸음을 내딛었다.
앞쪽을 향해 곧장 367걸음 걷는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이 밟힌다. 보도블록 위에서 멈춰 섰다가, 보행음이 들리면 22걸음 걷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이 밟히면, 2걸음 앞에서 몸을 오른쪽으로 90도 튼다. 이제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으면 된다. 354걸음이 될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으면 된다. 그러면 8시 전까지 그는 법원 정문에 도착할 수 있다.
고조는 오늘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어야 했다. 그리고 법원에 갈 준비를 끝마친 다음, 늦어도 7시 10분에는 집을 나섰어야 했다. 그래야 8시까지 법정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조가 오늘 잠에서 깬 시간은 7시 30분쯤이었다. 물론 그 시간에 눈을 뜬 것만으로도 고조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조가 갖고 있는 자명종은 항상 11시에 울릴 수 있도록 바늘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자명종의 울림 바늘은 3개월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위치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고조의 자명종이 언제나 아침 11시에만 울려댔기 때문에, 반드시 아침 11시에 일어나야 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고조는 3개월이 넘도록 자명종이 울리는 시각인 아침 11시에 눈을 떴다. 아침 11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자명종을 그 시각에 맞춰두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3개월 전 그날부터 고조는 자명종의 바늘을 11시에 울릴 수 있도록 고정시켜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전 날 작동시켜놓은 자명종은 다음 날 아침 11시에 어김없이 울려댔고, 그 소리에 맞춰 고조는 눈을 떴다. 이러한 행동이 3개월 동안 지속됐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자명종을 3개월 전 그날부터 11시에 맞춰놓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조가 매일 아침 11시에 일어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3개월 전에는 아침 11시에 일어나야 할 어떤 이유가 분명 있었겠지만, 이제는 3개월 전 그날 자명종을 아침 11시에 맞춰놓았다는 이유 때문에, 고조가 아직도 매일 아침 11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 그때 만약 고조가 자명종을 아침 11시에 울릴 수 있도록 작동시키지 않았다면, 고조에게서 이런 습관적인 행동은 나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고조는 잠을 자기 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습관적으로 자명종의 버튼을 눌러 울림 기능을 작동시켰고, 역시 습관적으로 다음 날 아침 자명종 소리와 동시에 눈을 떴다.
고조에게 있어서 11시라는 것은 더 이상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우연적인 행동, 그 우연적인 행동의 연속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는 속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조에게 있어서 11시는 다만 자명종이 울리는 시각일 뿐이었다. 자명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고조는 습관적으로 눈을 뜰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를 고조는 알지 못했다.
고조가 오늘 아침 7시 30분에 눈을 뜬 것은 분명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자명종은 여전히 11시에 울릴 수 있도록 작동되어 있었다. 고조는 서둘러 법원에 갈 준비를 했다. 그나마 빨리 움직인다면 9시 전까지는 법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담감, 고조는 자신이 어제 생각했던 그 부담감을 떠올렸다. 재판관과 검사가 느낄 부담감을 자칫 자신이 법정에서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한 시간이나 일찍 법정에 들어섬으로써, 재판관과 검사가 그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부담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로써 계획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그들은 9시전에야 겨우 도착한 자신을 보면서, 절대 부담감 따위를 느끼지는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오히려 한 시간 일찍 법정에 도착해서 재판이 진행되기를 차분히 기다리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보며, 그들(살인자들 포함)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눈을 흘깃 것이라 생각했다. 재판에 대해서 자칫 무관심한 듯 보일 수 있는 고조의 행동 때문에, 재판관과 검사는 혀를 끌끌차며 그를 비난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고조는 재판관과 검사의 눈을 피해 더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그들(살인자들 포함)의 눈빛은 분명 고조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