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수필의 맛
나는 평생 글을 써오면서도 한 편의 글 한 건의 기사를 쓸 때마다 늘 두려움
에부딪힌다. 나의 글을 읽는 이가 얼마만큼 공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조바심
때문이다.
혹시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에 치우친 것은 아닐까. 표
현이 과격하거나 과장된 것은 아닐까. 논리의 비약에 빠진 것은 아닐까. 만일
어떤 부분에 반론을 제기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가 등의 조바심이 원고를
넘기기 전까지 나를 수줍게 만든다.
그래서 생긴 버릇이 ‘글 숙성하기’이다. 머릿속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단상들
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글로 옮겨놓은 후 컴퓨터에 며칠이고
담가두었다가 수시로 꺼내어 오류들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이 때 억지로 원
래의 글을 고치려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머릿속을 섬광처럼 지나갔던 처음
의 글귀들이 갖고 있는 신선함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3일쯤 글을
묵혀두면 숙성된 글이 된다.
내 경험으로 보아서 쓰기가 제일 어려운 글은 수필(수상)이다. 수필은 마음속
의 후미진 곳까지를 다 보여주어야 꼴을 갖추는 글이기 때문이다. 과장이나 허
식이나 거짓이 끼어들어서는 수필의 맛을 내기 어렵다. 깊은 상념과 풍부한 감
상 순진무구한 마음 본새가 그대로 투영되어야 아름다운 수필이 된다.
흙탕물에서 맑은 물을 떠 올 수 없고 깨끗한 샘이라야 맑은 물을 퍼올 수 있
듯이 마음이 청정한 상태라야 맑고 우아한 수필을 엮을 수 있다. 좋은 글 아름
다운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 밭을 단정하게 가꾸는 것이 필요하다.
요약 ① 가장 어려운 글 ② 단정한 마음 밭에서라야 나오는 글 ③ 글의 숙성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