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감기는 오랜만에 감기약을 이겼다.
한 푼을 아껴야 하는 때에는 감기만한 불청객이 없다.
계획에 없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감기약이랑 휴지값.
하긴, 겨울이되면서 예상치 못한 비용은 커피냄새, 호빵연기, 붕어빵 같은 주로 먹거리 장르에서
불쑥 불쑥 발생하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콧물만큼 귀찮은 게 없는 것 같다.
너무 귀찮아서 에이, 더러워서 약을 먹어준다.
나는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닌데 전염병에 있어서는 남들 하는만큼은 한다.
성균관 스캔들을 끝으로 드라마 안보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나는 현빈앓이에 결국 동참하고 말았다.
이것도 뭐 일종의 전염병인 것 같다. 하도 떠벌떠벌 퍼트리는 바람에.
드라마 대사가 너무 노골적으로 유치한 것 같다며- 근데 현빈은 좀 멋있네-하며
시작은 꽤 도도했는데, 지금은 본방사수, 재방, 삼방 중이다. 방학해서 다행이다.
요즘 유치하고 달달한 드라마에 팍 꼿힌다.
불륜 드라마 말고, 가족의 사랑을 일깨우려는 드라마도 말고
주인공의 보장된 행복에 동화되어서 눈물나는 갈등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연애물이 좋다.
이번 드라마도 주인공의 행복이 보장되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친구는 드라마의 기와 결 만을 본다.
승과 전은 갈등이 있는데 그걸 보기 싫다는 거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알 것도 같았다.
사는게 참 골치아픈데 드라마 보면서까지 그래야 하냐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참 시종일관 시크한 아이인데 꽤나 주인공에 몰입을 하는 모양이다.
나도 예전에는 드라마가 현실과 닮을 수록 좋아했는데 요즘은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보다는 그냥 꿈같은 이야기가 더 끌리는 것이, 그 친구랑 비슷한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드라마는 항상 현실을 어느정도 품고 있어서 이건 가상이라는 자각을 종종 들게 해 주어야 지나친 몰입을 막는다.
세상이 참 요지경이라 영혼이 뒤바뀌는 정도는 판타지는 있어야 이게 뻥이구나 할 수 있는 것 같다.
막장드라마가 사랑받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까?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어느정도는 그만둔 것 같다.
내가 힘껏 생각해 봐야 해결하는 것은 시간, 이라거나
애써봐야 소용없을 몇가지 일이라던가,
남 좋은 일 해도 알아주는 사람하나 없다,는
단순한 원칙으로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난 고민을 가지고 자꾸 생각하게 하는 일이 반갑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갈등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기 때문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고.
그래도 나는 드라마의 꽃은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기와 결만 보는 것까지는 못하겠다.
보기는 다 보아야 겠고, 골치아픈건 싫고 그래서 아직 내 갈등이 만개하지 못한 연애장르만 죽어라 보는가 보다.
친구는 또 처음과 끝을 알면 다 아는거라고도 했다.
내가 독후감 숙제를 하려고 책의 처음과 끝만 읽었던 것과 같은 이치겠지.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과정이 없이 처음과 끝만으로는 절대로 감동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크한 내 친구는 그냥, 시크하고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게 너무너무 어려워서 감정이 생겨나는 모든 것에서 눈을 돌리는지도.
나 또 소설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