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며
잊고 지냈던 소중한 시간들을.. 흩뿌리고 갑니다.
새가 울고, 햇빛이 반짝이면
이 세상에는 없는 듯 아름다운 골짜기...
흐르는 물소리만 아침을 두드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차가운 물에 흙 손을 담그고, 그 밑을 살며시 들여다 봅니다.
거울처럼 빛나는 물 속에서..
눈이 맑은 어린 소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애는 얌전히 미소지어보고, 다시 눈물을 떨굽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소녀가 우는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그 아름다운 곳이.. 정말로 아름답게 보일텐데요...
그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여 쓸쓸한 눈가에는 한이 가득 맺힙니다.
소녀의 눈물과 흐르는 물이 합류하여
작은 돌조각에 할퀴이고, 큰 바위에 밀쳐지며
덧없이.. 어디론가 흘러가고만 있습니다.
소녀는 홀로 앉아 눈물만 흘리고,
어색한 시간은.. 눈치를 살피듯, 빠르게 흘러.. 흘러갑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골짜기에 그늘이 드리울 때면
바람이 붑니다..
오후가 되니, 한결 마음이 푸근해져옴을 느끼며,
이젠 어린 소녀의 눈물도 그치었습니다.
울다 지쳐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소녀는 멍한 눈을 들어 위를 쳐다봅니다.
커다란 나무들에 잔뜩 가려져,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방금 전에 꾸었던
그 꿈을 조용히 되살려봅니다..
소녀는 꿈에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소녀의 눈물이 흘러 간 곳과.. 소녀의 그리움이 닿을 곳을요...
큰 바다가 보입니다.
끝없이 넓고 푸르러요...
골짜기에선 볼 수 없었던 푸르른 물...
골짜기에는 하늘도 없었는데...
그 곳에는 하늘이 있어서 그리도 푸른 가 봅니다.
바다는 하늘의 마름이 비친 것이라고..
소녀는 그리 생각하거든요...
이번에는 높은 곳에 올라, 그 바다를.. 하늘을 봅니다.
그래도 그 끝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소녀의 눈에 신기하게 비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물이.. 뭍에서 멀어져 갈수록.. 점 점 더 푸른 빛이 짙어지더래요...
물이 멀수록.. 바다가 깊을수록... 그리움이 더 해 갈수록....
소녀 눈 속의 푸르름은 끝없이 짙어져갑니다...
오늘, 바람의 냄새가...
'그리움'이란 말을.. 귓전에 속삭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움.. 그리움이란 건 아마...
사랑보다 애틋하고, 소망보다 간절하고..
영원보다 짧음으로 빛나는.. 그 무엇인 것 같아요...
제가 느낀 "그리움"은 말이에요,
맘 속에 있던 예쁜 기억들을..
이슬로 된 작은 병에 꼭꼭 채워 담아 바람에 띄워 보냈다가,
언젠가 그 바람을 다시 만나서, 병속의 추억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 때의 향기가 묻어나고, 그 때의 기억이 마름에 살포시 젖어들면서 느끼는..
그런 감정...이랄까요...
바람이 지나가고, 달빛이 그 신비스러움으로 골짜기를 밝혀주며..
물 소리조차 잠잠해 진 지금..
제 귀에는 많은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오후까지도 청승맞게 울어대던 풀벌레들이 잠꼬대하는 소리,
항상 생생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꽃들이 고개를 숙인 채 꾸벅꾸벅 졸고있는 모습,
깊은 잠에 못들어 자꾸만 깨다가 내는, 작은 새의 딸꾹질 하는 소리..
자장가를 부르듯 조용하게 흘르는 낮은 물소리..
그리고, 이 모든 골짜기의 밤을 황홀히 감싸주는 달빛의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까지...
그런 소리들조차 소녀의 귀에는 들려옵니다.
하루가 지나가고,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웠나봐요, 소녀는...
그런데,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아, 그렇게 울었었던 겝니다..
무엇을 그리워 했었던 건지, 그 누구를 그리도 애닳게 찾았던 건지...
너무나 오랫동안... 홀로 이 깊은 산 중에서 살아왔던 소녀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냥 뜻 모를 그리움만 가슴 속을 파고들어...
눈물로나마 달래었을 것입니다..
바람이 가르쳐 주었어요...
그 곳이 바다라고, 그 위가 하늘이라고...
그리고, 네 마음이..
바다보다 푸르른 골짜기의 하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