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쨍쨍 ! 모래알은 반짝 !
막 동요가 퍼질것 같은 날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 어귀의 공터에는 스무가구가 채 못되는 집에서 흘러나온 꼬마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옹알대고 있습니다.
해가 꾸역꾸역 하늘 꼭대기까지 올랐을 때 입니다.
여느때처럼 네명의 아이들이 둥그랗고 유난히 평평한 돌 주위로 모여 앉았습니다. 아이들은 그 돌을 마당처럼 크고 넓다하여 마당돌이라 불렀습니다.
술래잡기, 소꿉놀이, 모래쌓기, 땅따먹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 영희도 은정이도 철수도 민수도 제각기 하고 싶은 놀이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제처럼 그제처럼 또 소꿉놀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난히도 크고 검은 눈을 가진 예쁜 영희는 오늘도 당연히 엄마 역활을 하고 뚱뚱하고 째보인 데다가 곤보가 있는 은정이는 두말없이 딸이 되었습니다. 이젠 아빠를 결정해야 합니다.물론 나머지는 아들이 됩니다. 영희는 습관처럼 철수를 보았습니다. 언제나 소꿉놀이를 할때면 키도 크고 힘이 센 철수가 항상 아빠였기 때문입니다.
당연스레 철수가 말했습니다.
\" 흠~ 그럼 아빠는 나야 ! \"
정해진 순서처럼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민수는 깡통이나 상자조각들을 주우러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오늘은 멀뚱멀뚱 키가 한 뼘이나 더 큰 철수를 바라보고 마냥 서 있습니다.
\" 왜 그래 -?\"
혹 밥을 잘못 먹었냐고 물을 양으로 민수를 쳐다보다 철수가 한마디 합니다.
\" 시...시...ㄹ...어\"
\" 뭐라구? \"
\" 싫어 안 할꺼야 \"
얼굴이 유난히도 하얀 깡 마른 민수의 떨리는 몸 사이로 작은 말들이 '툭' '툭' 동그라졌습니다.
\" 내...내가...아..빠 할래 \"
영희를 쳐다본 후 얼굴이 빨개진 민수는 신발로 땅을 '툭' '툭' 찼습니다. 어쩌면 철수가 무서워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
갑자기 변한 민수의 태도에 당황한 철수는 그러면서도 씨익 웃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 왜 그래? 아빠는 커야돼. 힘도 세야 되구 \"
\" 아니야\"
민수가 고개를 푹 떨군 채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진짜야. 볼래? \"
철수는 아빠가 왜 크고 힘이 세야 되는지 열심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 도둑도 잡아야 돼지... 무거운 것도 들어야 하고..또..또... \"
\"음- 그래! (크게) 아주아주 큰 개도 무서워하면 안돼 \"
하나가 더 생각난듯 말을 하더니 ' 봐~ 그러니까 내가 아빠야 ' 하듯이 양쪽 어깨를 좌우로 쫙 펴보이고는 기세등등하게 민수를 내려다 봤습니다.그리고는 제법 말을 잘했다고 생각했는지 흐믓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민수는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잠시 후, 무서운 호랑이를 쳐다보듯 고개를 숙인 채 가만이 눈을 치켜뜨면서 민수가 말했습니다.
\" 우리 아빤 안 커. 그래두 힘 쌔 \"
\" 뭐 ? \"
\" 그리구 도둑은 없어..\"
\" 있어..\"
철수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민수는 무섭고 겁이 났지만 영희가 처다보자 용기를 냈습니다.
\" 깡통은 아무도 안 가져가\"
\"... ...\"
\" 그리구 들풀들은 하나도 안 무거워 \"
민수의 목소리는 어느새 커져 있었고 철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마침내는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 아빠는 나야 \"
\" 아니야 \"
\" 나야 \"
\" 아니야 \"
\" 내가 너 이겨. 너 나 이길수 있어? \"
\" 그래 \"
민수는 흥분한 나머지 대뜸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금방 후회했지만 이젠 어쩔도리가 없었습니다. 눈을 옆으로 흘기며 노려보는 철수를 향해 민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주었습니다. \"팍\" 에잇 소리와 함께 철수가 민수를 때렸습니다. 민수는 콧잔등이 시큰하고 입술위로 뜨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빨간 코피가 흘러내린 것입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민수는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고작 철수의 가슴 아래에서 작은 소리를 내며 사라졌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민수가 올려다 본 철수는 너무 컸습니다. 또 다시 철수의 주먹이 날라왔습니다. 아픔에 못이긴 민수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그러자 아까부터 울고 있던 은정이와 합세해 영희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민수는 가만이 있을 수 없다고 행각했습니다. 그러나 앉아서 본 철수는 거인같이 커 보여 덤빌 엄두가 나지 안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영희가 \" 민수야...\"하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하지말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민수에겐 동화속에서 나오는 공주님이 도와달라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민수는 자가 앞에 딱 버티고 선 철수의 긴다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닷없이 끌어 안고는 당황하는 철수의 발을 세게 물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철수였지만 다리를 붙잡고 울어버렸습니다. 민수는 기뻣습니다. 영희에게 큰일을 해 준건만 같았습니다. 민수는 일어나 옷을 두번 손으로 털더니 영희에게 다가갔습니다.
\" 나물 뜨..드..러 가...가자-\"
영희가 울먹이며 말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민수는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코가 아프고 쓰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민수는 영희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더 하늘이 파랗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