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빛 하늘이 보이고, 햇님이 바다를 따스하게 감싸주시던 날에 소라는
태어났습니다.
아기소라는 맑은 웃음과 천진스러움으로 바다 속 친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애꾸눈 가오리 아저씨는 소라를 등에 태워 먼바다를 여행시켜 주셨고,
문어 할아버지는 소라가 아프지 않도록 보살펴 주셨습니다.
철면피 상어녀석도 소라 앞에서만은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불가사리들도 모두 소라를 귀여워했습니다.
특히 나와 소라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소라는 나를 언니라 부르며 늘 따라다녔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제일 먼저 나에게 달려 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소라는 자라면서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워졌습니다.
껍데기의 줄무늬는 오색으로 물들었고, 그로 인해 뽀얀 살빛이 더욱 돋보였습니다.
귀여운 아기소라는 이제 아름다운 소라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쯤 그녀석이 나타났습니다.
파도. 강한 힘으로 바다 속을 휩쓸고 다니는 파도가 나타난 것입니다.
가오리 아저씨도 집으로 돌아가시고, 상어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문어 할아버지는 동굴에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소라를 데리고 동료들과 함께 바위 밑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모두들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위에 매달려야했습니다.
그리고 소라는 처음으로 파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파도가 지나간 뒤, 소라가 파도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파도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소라가 너무도 조르는 바람에 나는 대답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도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다를 휩쓸고 지나가는 녀석이야.
인간들도 그 절대적인 힘에는 굴복하고 만단다.
평상시에는 온순해서 수면 위에서만 지내는데, 친구인 폭풍우녀석만 만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져.
그래서 모두들 파도를 좋아하지 않아.
많은 친구들이 그 녀석에게 휩쓸려 갔거든.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어.
그러니 너도 다시 파도를 만나게 되면 쓸려가지 않도록 조심해야해.
알았지?\"
며칠 뒤, 파도가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성게와 가재가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잠깐 만이요!\"
나는 소라의 갑작스런 외침에 깜짝 놀랐습니다.
파도가 소라를 향해 뒤돌아보았습니다.
\"저기, 저......\"
소라가 그렇게 말을 더듬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 보았습니다.
파도가 돌아가려 하자 소라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나와 친구가 되지 않겠어요?\"
파도도 나도 소라의 이 엉뚱한 말에 잠시 멍해졌습니다.
그 덕에 성게와 가재는 무사히 피할 수 있었지만......
파도는 한 동안 그렇게 소라를 바라보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사라졌습니다.
파도가 완전히 사라진 후 나는 소라를 꾸짖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짓이야?
그러다가 파도가 화라도 내면 어떡하려고?\"
\"하지만...... 언니, 그는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해.
봐! 아무 일도 없었잖아.\"
\"넌...... 아무튼,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파도는 그리 좋은 녀석이 아니
라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마!\"
\"알았어, 언니!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 다음 다시 파도가 몰려왔을 때, 소라는 또다시 예상치 못했던
일을 저질렀습니다.
모두가 파도를 피해 도망가는 사이, 파도를 향해 뛰어든 것입니다.
소라는 그렇게 우리들을 뒤로한 채 파도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나는 서둘러 가오리 아저씨를 찾았습니다.
발이 느린 나 혼자서는 도저히 파도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겨우 찾아낸 가오리 아저씨는 파도와 함께 날아온 돌에 몸을 찢겨 제대로 헤엄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급해진 내가 혼자서라도 파도를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두
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깊은 바다로 들어갔던 상어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상어야, 부탁이야. 소라를 찾아 줘! 소라가 파도에 휩쓸려 갔어. 난 발
이 느려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어는 수면을 향해 빠르게 올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