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괜한 비다.
마음 속을 헤집는 심란은 맑은 날의 쨍쨍한 햇볕 이상이다.
오히려 더한 쪼임이다.
아플 가슴이 어디있다고, 상처받은 공간이 어디있다고, 이렇게
심란하고, 우울한가? 겨우 이 비에서야 나는 아직도 아파할 상처
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니, 괜한 비다.
이런 비오는 날, 부러지게 자기를 챙기는 사람들, 생활의 계산
에 철저한 사람들이 나는 존경스럽다. 강철같은 사람들....
저들이 감성이 없거나, 감정을 애써 죽이는 사람들이라고 폄하
할 마음은 없다. 아마도 그들은 잠깐 하늘을 보고, 창밖을 비껴
흐르는 비를 보면서, 잠깐의 휴식으로 비를 품는 가슴을 달랬을
것이다. 그리고 절제의 미덕으로 스스로 제 길을 더듬어 갈 길
을 가고 있을 게다.
그것이 제대로 안되는 나같은 놈은 그런 그들의 절제의 덕이 마
냥 부럽다.
비오늘 날 오후, 나는 아무래도 생활의 셈이 부족한 자신을 반
쯤 원망하고, 반쯤 달래면서, 하루를 저물 것 같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