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해가 지는지 남청색으로 어두워져가는 하늘빛을 보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렇게 초저녁에 약에 취한 사람처럼 잠이 들었다가 무엇에 놀라서인지 화들짝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소리-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4남매를 기르시느라 고생하셨던 기억에 눈물부터 난다.
이제는 히끗히끗 흰머리도 많이 나시고 깊이 패인 주름만 가득하신 아버지...
하지만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 멋있는 나의 우상-
아버지 전화를 받을때면 일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곤 했지만...
막 잠에서 깨어나서인지 목소리가 잠겨 나오질 않았다.
"아아!! 음음!!"
목을 가다듬고 기운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하지만 대번에 잠을 자고 일어난것을 눈치라도 채신 듯...
목소리가 왜그러냐며 어디 아픈 곳 없는지 내 안부부터 묻는다.
"젊은놈이 아프긴 어디가 아프겠어요. 아버지 아픈곳이 없는지 전 그게 더 걱정인대..."
내일모레 칠순잔치를 하셔야 할 분인데.. 이제는 서른살이 되어버린 아들이라도
본인에겐 언제나 어리기만 한 막내아들인지라 물가에 내놓은 것 마냥 걱정만 하신다.
"저녁은 먹었어?"
초저녁 잠이 들며 식사를 거르고 먹질 못했지만 밥을 먹고 났더니 식곤증때문인지..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다며 둘러댔다.
"언제쯤이면 니가 밥을 챙겨먹고 사는지 무얼 먹는지 걱정안하고 살 수 있겠냐?
아빠가 뭘 원하는지 알지? 알면 신경 좀 써라."
"이제는 너희들 다 키워서 시집 장가 보냈고 너 하나 남았는데 너만 빨리 결혼하면
아버진 바랄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는데..."
요즘들어 더더욱 전화만 하시면 며느리감 찾아오라는 말씀만 하신다.
다른건 모르겠지만 반려자를 만난다는게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아버지의 바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때면 도대체 무얼 어떻게 노력해야 한다는것인지...
난감할 뿐이다.
하긴 지인들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소개시켜준다고 해도 한사코 손을 저어가며 거절하는
나이기에... 어쩌면 아버지 말씀처럼 노력이 부족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사랑만큼은...
준비하지 못하고 감정에만 이끌려 시작해서 지우기 힘든 상처를 알아버린 지금...
세상 무엇보다도 신중해야 하고 어려운 일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으면...
정말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의 기대와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사랑, 결혼...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숙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