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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야.....
나 S야....오랜만이지?
드디어 연락이 되는구나......
내가 얼마나 미안했다구..그날 애를 봐줬는데...6시부터 12시까지 6시간을 봤어...
원래 2-3시간 이어야 했는데.그날 따라 그렇게 되었구....
너무 피곤하구....짜증두 나구 그 집에서 울뻔 했어....
그리구 집에 왔는데 동생이 네게 전화 왔다구 하더라....
난 네가 아침일찍 가니까..잘지도 모른다구 생각했어,,,,,
네가 밤샌다구 했어두.....
그리구 아마 집에 오자마자 다시는 아이 봐주고 그러는 걸 안하리라 결심하면서
침대에 뻗어버린 내 잘못이었던 것 같아..
너희 언니에게 네가 내전화 늦게까지 기다렸다는 말 듣구 얼마나 미안하던지....
나 용서해 줄거지?
요즘 한동안 E-MAIL을 확안 안했어....
그래서 이렇게 늦게 답장을 보내는 거구..기다렸을 텐데..
학교 생활은 어때?
재미있니? 내가 꿈꾸던 그런 대학 생활을 네가 하구 있는지 모르겠다...
재미있을꺼야....그지?
난 요즘 엄청나게 심한 감기에 걸려 생사를 헤매구 있어,,,,
편지 온거 확인만 하구 자야지 하다가 네 편지 보구 네게는 답장을 꼭 해줘야
할 것 같아서.......무지 반가웠어....
미팅두 하구 그러니?
상상이 안가...우리가 꿈꾸던 그런 대학 생활인지....
다음 편지엔 대학 생활 얘기 들려주기..
그 오빠...내가 네게 지겹게 얘기했던.....우리 다시 만나.
이제는 헤어지는 일 없을꺼야...
네가 일부러 누구 소개시켜주지 않아두 되구 잘 된거지 뭐....
서로를 못 잊구 힘들어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넌 조금 아니 많이 지겨웠겠지만....내가 한동안 힘들때 네가 내 푸념을 들어줘서
고마웠어,,,,,,,정말루...
한국가면 내가 한턱 낼께..오빠랑..
그때 같이 나올 여지친구를 빨리 만나게 되길 기도할께..
벌써 있는거 아니야?
처음 편지이니까 이쯤에서 그만 쓰도록 할께.
답장 기다릴께.....
잘지내구....
니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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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S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미국에서 내가 들어준 그녀의 이야기란 대부분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민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답장은,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의 답장은 그 사람과의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왜 내게 전화를 해주지 못했는지를 알았는데도, 그녀가 이렇게 반갑게 이야기 하는데도, 난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아닌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의 티끌과도 같다. 차라리 사라져 버리고 싶다.
나의 대학생활은 그제야 시작되었다. 난 그녀를 잊기로 했고, 난 여느 대학생들 처럼 술을 마시고, 미팅을 하고,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고, 축제에는 깃발을 흔들며 뛰어다녔다. 내게 그녀의 흔적이란 조금도 허락 될 수 없었다. 마치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것 처럼, 나는 존재함만을 증거하려 했다. 그녀가 없더라도, 난 가 치 있 다. 그러고 싶었다.
여름방학에는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먼 곳에서는 그녀에 관한 모든 잡념들을 지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난 아직도 변한 것이 없다. 혹은 그곳에서 또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려고 했다. 이국의 정취에 취해서 내가 잠시 '미쳤던' 것이라고 생각 할 수만 있다면.
영국. 옥스포드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런던의 질서정연함에 질식 할 것 같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무렵, 친구와 나는 옥스포드의 잔디밭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산 오렌지를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내게로 왔다. 미국에서 그녀를 본 날. 그녀가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우리 집에 놀러오라는 제의를 한 날. 나는 저녁에 그녀와 함께 방에 있었다. 넌 아주 서툰 손짓으로 오렌지를 반으로 갈라서 껍질을 벗겨 내게 내밀었다. 아찔한 과일 향. 네 손을 타고 흐르는 과즙 한방울 까지도 모두 담고 싶었다. 네가 내게 베푼 최초의 호의.
영국, 옥스포드로 가는 버스 안, 친구와 나눠 먹던 오렌지 한 조각에 난 그만 주르륵, 울었다. 무너지고 말았다.
옥스포드에 도착해서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점심을 때울 샌드위치를 사는 것도, 관광 지도를 챙기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네게 두번째 편지를 썼다. 물론 네게 '사랑한다'고 하지는 못했다. 다만 나는 널 잊을 수 없다. 젠장.
세월을 담고 있는 건물들로 이루어진 대학들, 그 사이의 잔디밭에 앉았다. 누워서 친구가 산 샌드위치 한쪽을 베어 물었다. 씨익. 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