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아도
또 들여다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자꾸자꾸 들여다보았으므로
마침내 눈망울이 되어버린
물방울
(서종택·시인, 1948-)
+ 이슬
목신이 부는
구름의 피리
오르페우스가 울었다.
풀잎에 새겨지는
두 줄의
시
이슬 한 방울
(황금찬·시인, 1918-)
+ 이슬방울
이슬
방울
속의
말간
세계
우산을
쓰고
들어가
봤으면
(최하림·시인, 1939-2010)
+ 이슬
풀잎에서 늦잠이 들었구나
말갛게 씻고 씻은
마음의 모 닳아버린
작고 둥근 세상 하나
(송연우·시인, 경남 진해 출생)
+ 이슬 먹는 풀잎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린 작은 방울
투명한 거울처럼 담아내는 그 속에
햇볕에 그을린 무지갯빛도 영롱하다
바람에 떨어질 듯 살랑거리는 방울
풀잎은 천성이 여유 있어 더디게 먹는다
(임남규·시인, 1964-)
+ 고요하다
하나님은
지난 밤
이슬방울 하나를
남기셨다
토란잎에
고인 하늘
바람이 불자
우주가 잠시 접혔다
다시 펴진다
고요하다
(유재영·시인, 1948-)
+ 맑은 이슬
꽃은 이슬을 빨아먹고
햇빛을 어루만지며 사는 것
사랑은 그리움을 빨아먹고
젖꼭지를 만지며 사는 것
계절이 없는 사막에서도
계절에 민감한 사랑
꽃이 없는 빙판에서도
네게 줄 꽃을 찾아가는 고행
꽃은 살아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
사랑은 갈수록 꽃으로 변해가는 것
(이생진·시인, 1929-)
+ 이슬
생전의 슬픔이 저렇게
이슬로 맺힌다던가
원한도 미움도 그리움도
저렇게 이슬로 내린다던가
발길에 채이는 이슬을
이슬털이 씻김굿 삼고
젖은 바지 걷으며 바라보는
눈부시는 풀밭의 아침
우리네 슬픔이 저렇게
반짝일 수 있다면
미움이 그리움이 저렇게
눈부시게 아름답다면
부대끼며 남은 것들이
못 견디게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맘놓이리
(정양·시인, 1942-)
+ 새벽 이슬
새벽 이슬과 새들이 와서
만들어 놓은 고요
댓돌 위에
우물터에
그리고 돌계단 위에
서리서리 또아리뱀들처럼
앉혀놓은 고요
그 누가 깨트릴 수 있으랴.
풍경소리도 깨트리지 못하여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낙엽들만이
한 잎 한 잎
고요를 보탤 뿐이다
나 또한
고요를 보태는
한 잎일 뿐이다.
(나태주·시인, 1945-)
+ 새벽 이슬
밤 지새워
남 몰래 흘린 눈물을 모아
그대 잠든 새벽
풀잎 벼랑 끝에 맺혔나니
기어이
저 푸른 하늘을 보고서야
땅으로 떨어져
스며들리라
(서문인·시인, 1962-)
+ 이슬
이슬 같은 맑은 사랑이고 싶다
티끌 하나 없는
아침 햇살에 고요히 눈뜨는
이슬처럼
흠집 하나 없는
투명한 만남이고 싶다
이런 사랑이라면
그 모두를 걸고 싶다
나의 전부를
바칠 수 있는 사랑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옥림·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온 세계는
황금으로 굳고 무쇠로 녹슨 땅,
봄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않고
새소리도 날아왔다
씨앗을 뿌릴 곳 없어
날아가 버린다.
온 세계는
엉겅퀴로 마른 땅,
땀을 뿌려도 받지 않고
꽃봉오리도
머리를 들다
머리를 들다
타는 혀끝으로 잠기고 만다!
우리의 흙 한 줌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가슴에서 파 낼까?
우리의 이슬 한 방울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눈빛
누구의 혀끝에서 구할까?
우리들의 꽃 한 송이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얼굴
누구의 입가에서 구할까?
(김현승·시인, 1913-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