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없이 내미는 손 하나의 의미는
우주의 가치에 버금갈 수도 있다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건
마음을 주는 것
잡은 손 안에서
따스한 기운이 오고 가서
서로의 등불이 된다면
기다림이 지겨우랴, 찬바람 불어
등이 시린들 기다리지 못하랴
오랜 바라봄과 마음 씀으로
가슴을 적시는 따스함이 된다면
세상의 바람이 한결같지 않더라도
어느 시절인들 견디지 못하랴
비바람 폭풍우 속에서도
한 시절 인내하였듯이
우리가 나누는 온기 하나로
가없는 사랑 이을 수 있나니
한 손이 다른 손에게 주는
이 끊임없는 향기
누가 무엇으로 막으랴
(박창기·시인, 1946-)
+ 손은 손을 찾는다
손이 하는 일은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에게 지고
내가 나인 것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네가 아닌 것이
견딜 수 없이 시끄러울 때
그리하여 탈진해서
온종일 누워 있을 때 보라
여기가 삶의 끝인 것 같을 때
내가 나를 떠날 것 같을 때
손을 보라
왼손은 늘 오른손을 찾고
두 손은 다른 손을 찾고 있었다
손은 늘 따로 혼자 있었다
빈손이 가장 무거웠다
겨우 몸을 일으켜
생수 한 모금 마시며 알았다
모든 진정한 고마움에는
독약 같은 미량의 미안함이 묻어 있다
고맙다는 말은 따로 혼자 있지 못 한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해야한다
엊저녁 너는 고마움이었고
오늘 아침 나는 미안함이다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이문재·시인, 1959-)
+ 어머니의 거친 손
언제 불러도 눈물겨운
그리운 이름 날개를 펴고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
힘줄이 붉어지고 힘없는
늙으신 어머니 손
농사꾼처럼 일하신 손
창조와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준 손
성실과 진실로 순수한 손
회초리를 들고 꾸짖으시던 꼿꼿한 손
유난히도 나에겐 따스한 손
새 생명의 시작인 손이 이젠 힘이 없다.
자식 뒷바라지 힘들고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세월의 무게에 지치고 연약해져
거칠고 힘없는 손이 되었다
여윈 손 다소곳이
가슴에 보듬고
내 손이 마냥
부끄러울 뿐이다
(효행시인 이성우·시인)
+ 왼손잡이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 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김광규·시인, 1941-)
+ 오른손이 모르는 것
오른손은 욕망에 순교하였다
숟가락을 쥐고 연필을 쥐고
더 많은 밥과 더 아름다운 거짓을 위해
슬픔이 필요한 반성을 버렸다
칼을 쥐면
수만 년 매 맞아 본 적 없는 산과 강에게도
무너져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고통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오른손과 오른손이 만나
더 큰 모래성을 꿈꾸었을 땐
더 큰 오른손이 발명되었다
핏줄이 끊기고 손금에 균열이 간
오른손은 더 이상
이슬을 잡을 수 없는 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른손은 모른다
세상의 사람이란 사람 모두
이슬보다 다치기 쉬운 눈물을 가지고 있어
언젠가 그 모래성이 눈물을 불러오고 말 것을,
눈물로도 홍수가 난다는 것을,
(이운진·시인, 경남 거창 출생)
+ 버려진 손
공사장 인부가 벗어놓고 갔을
목장갑 한 켤레 상처가 터진 자리
촘촘했던 올이 풀려 그 生은 헐겁다
붉은 손바닥 굳은살처럼 박혀 있던 고무도
햇살에 삭아 떨어지고 있는 오후,
터진 구멍 사이로 뭉툭한 손 있던
자리가 보인다 거기 이제 땀으로 찌든
체취만 누워 앓고 있으리라
그래도 장갑 두 손을 포개고서
각목의 거칠게 인 나무 비늘과
출렁이던 철근의 감촉을 기억한다
제 허리 허물어 집 올리던 사람,
모래처럼 흩어지던 날들을 모아
한 장 벽돌 올리던 그 사람 떠올리며
목장갑은 헐거운 생을 부여잡는다
도로변에 버려진 손 한 켤레 있다
내가 손 놓았던 뜨거운 生이 거기
상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다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한 나는
몸의 장갑을 뒤춤에 감춘다
(길상호·시인, 1973-)
+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대학교수의 손이 왜 이래?
악수를 하는 사람들은
나뭇등걸처럼 갈라진 나의 손등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나는 정답 같은 당당함을 가지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움츠러든다
내가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 이유는
위생적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닮고 싶은 손이 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노동자와 흰 손의 사나이]에 나오는 사나이는
당국의 눈치보다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육 년이나 쇠고랑을 찼고
마침내 교수형을 선택했다
나도 빈 요구르트병 같은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출석 확인을 하듯 일기를 쓰고
연서를 하고
때로는 집회에 나가지만
흰 손의 사나이가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최소한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맹문재·시인, 1963-)
+ 송년시 -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어지러운 눈보라 속을 비틀대며 달려온 것 같다
긴긴 진창길을 도망치듯 빠져 나온 것 같다
얼마나 답답한 한 해였던가
속 터지는, 가슴에서 불이 나는 한 해였던가
일년 내내 그치지 않는 배신의 소식
높은 데서 벌어지는 몰염치하고 뻔뻔스러운 발길질에
드러나는 그들 무능과 부패에
더러운 탐욕과 위선에
분노하고 탄식하고 규탄하기에도 지쳐
이제 그만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싶었으나
우리가 탄 이 거대한 열차가
그들의 난동에 달리기를 멈추면 어쩌나
철교가 무너지고 철길이 끊겨
어느 산허리를 돌다가 산산조각나면 어쩌나
불안하고 초조해서 너무도 초조해서
그런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남북 사이에 낀 짙은 먹구름에
멀리 밖에서는 쉴 새 없는 전쟁과 폭력의 울부짖음
창 너머 먼 하늘의 별을 보며
잠 못 이룬 밤이 또 얼마였던가
이제 지는 해를 향해 서서 가슴을 쓸어내릴 때다
그래도 우리는 무사했으니
혼돈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룩하고
많은 것을 쌓았으니
지는 해를 향해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 끌고 가는 것은
큰 몸짓과 잘난 큰 소리가 아니라는 걸
추운 골목의 쓰레기를 치우는 늙은 미화원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아라
허름한 공장에서 녹슨 기계를 돌리는
어린 노동자의 투박한 손을 보아라
새벽 장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머리 허연 할머니의 언 손을 보아라 비닐 하우스 속에서 채소를 손질하는
중년 부부의 부르튼 손을 보아라
열사의 천막 속에서
병사의 다리에 붕대를 감는 하얀 손을 보아라
해가 지고 있다
내일의 더 밝은 햇살을 위하여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신경림·시인, 1936-)
+ 더덕손
싸락눈 왕소금처럼 뿌려대는 산골 오일장
국밥집 앞에 노파 한 분이 더덕 보따리 풀어놓고 앉아 계시네
해진 면장갑이라도 한 켤레 끼시지, 부르튼 손으로 작은 바구니에 더덕을 수북히 담으시네
몇 뿌리 굴러 떨어지면 다시 올려놓기를 반복하는 더덕이 한 바구니에 만 원.
나도 동배춧잎 같은 지전 내밀고 한 바구니 사 들었네
그런데 한 두 뿌리 더 얻으려다
하마터면 노파의 손가락 집을 뻔했네
(고미숙·시인, 전남 곡성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