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사람은
땅을 제것인 것처럼 사고 팔지만
하늘을 사들이거나 팔려고 내놓지 않는다
하늘을 손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아직 순수하다
하늘에 깔려있는 별들마저
사람들이 뒷거래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순수하다
(김종해·시인, 1941-)
+ 사람
어디 없는가
모가지째 떨어지는 붉은 동백같이
일생에 단 한 번 하얗게 꽃 피우고 죽어버리는 대나무같이
늘 푸른 마음을 가진......
(박찬·시인, 1948-2007)
+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시인, 1939-)
+ 사람의 일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양희·시인, 1942-)
+ 너는 내 운명
예술가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가 없어서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이란
인류를 사랑하느라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인이란
우주 전체를 사랑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없앤 사람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풀 한 포기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문재·시인, 1959-)
+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사람
봄 나비가 꽃을 보면
좋아서 죽고 못 살듯
흰 구름이 푸른 하늘을 보면
좋아서 죽고 못 살듯
파도가 큰 바위를 만나면
좋아서 죽고 못 살듯
꿈이지만 만나면
좋아서 죽고 못 사는 네가 그립다
(범대순·시인, 1930-)
+ 나무와 사람
나무들은 개들이 와서 똥을 누어도
빙그레 말없이 웃는데
나무들은 개미들이 가지 끝까지 기어올라와도
아낌없이 자기의 온몸을 내맡기는데
사람들은 개들이 와서 똥을 누면
이 개새끼야 하고 냅다 발길질을 해대고
개미들이 어쩌다가 안방을 기어다니면
보이는 족족 손끝으로 죽여버린다
(정호승·시인, 1950-)
+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최두석·시인, 1956-)
+ 사람들
비오는 날
신문지 밥상을 높이든
아줌마 걸음이 아름답다.
어둠이 새는 새벽
침묵을 쓰는 미화원 빗질이
가슴을 비운다.
고층 아파트 계단
짜장면 배달부의 생 눈빛이
세상 참 살기 나름이구나 한다.
트랙터를 모는 밭고랑 농부가
태양을 닮았다.
늦은 오후 책가방을 등에 멘
어린아이 쳐진 어깨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잡음이 삿대질하는 좌판 거리
푸른 채소를 다듬는 늙은 쇠손이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다독이는 퇴근길이 새벽처럼 밝다.
참 내가 부끄러워진다.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사람은 사람을 생각한다
나무는 나무를 생각하고
꽃은 꽃을 생각한다
한 나무가 흔들리면
또 한 나무가 어디선가 흔들리고
한 꽃송이 입술 내어 밀면
또 한 꽃송이 어디선가 입술 내어 민다
사람은 사람을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생각하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생각한다
나무가 나무를 생각할 땐
꽃이 꽃을 생각할 땐
총총한 별이 스스럼없이 또 뜨건만
사람이 사람을 꿈꿀 땐
수만 번 등불이 꺼지고
수만 번 등불이 다시 켜진다
하늘엔 별이 그처럼 빛나건만
지상엔 사람 속의 사람이
그처럼 깜박거리는 것이다.
(한영옥·시인, 1950-)
+ 사람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무덤에 묻히나니
태고로부터 있어 온 무덤에 누워
그대가 묻힐 무덤에 누워
생각해 보라, 친구여
갈매기의 무덤이 어디 있는가를
산새의 무덤이 어디 있는가를
악어의 무덤 백곰의 무덤
풀벌레의 무덤이 어디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친구여
사람은 갈매기와 다르다는 것을
사람은 산새와 다르고
풀벌레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친구여.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가방 하나
두 여인의 고향은 먼 오스트리아
이십 대 곱던 시절 소록도에 와서
칠순 할머니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네
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하나
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
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
왼손에게도 말하지 않고
더 늙으면 짐이 될까 봐
환송하는 일로 성가시게 할까 봐
우유 사러 가듯 떠나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이문 없는 세상에
하루에도 몇 번 짐을 싸도 오리무중인 길에
한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사람들
가서 한 삼 년
머슴이나 살아 주고 싶은 사람들
(백무산·시인,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