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시 모음> 정진규의 '별' 외 + 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정진규·시인, 1939-) + 별 가슴속에 넣어두고 키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별이었으면 좋겠네. 그것도 한 천 년 거리에서 살다가 지금은 다 부서지고 흩어져서 오직 빛으로만 남은 별이었으면 좋겠네. 한 천 년 내 가슴속에 눈물처럼 깃들여 살다 어느 한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그런 별, 별 하나만 살았으면 좋겠네 (안상학·시인, 1962-) + 별 우리는 이젠 그 동안 우리가 썼던 말들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그리고 그립다는 말 밤이면 기관포처럼 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별 (김영승·시인, 1959-) + 가장 오래 뜨는 별 하나 내 그대 그리움으로 이 세상 어딘가에 큰 바람 붑니다 내 그대 사랑함으로 이 세상 어딘가에 고운 꽃 핍니다 그대 보고픈 마음에 오늘밤 울어 예는 별 하나 가장 오래 뜨는 별 하나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창가에 둡니다. (한기팔·시인, 1937-) + 별이 별에게 보고 싶을 때 금방 얼굴 보이면 누가 그리움이라 하랴 그냥 그렇게 앓는 거다. 품고 싶을 때 냉큼 품에 들면 누가 아쉬움이라 하랴 그냥 그렇게 앓는 거다. 생각 없어도 문득 이름 석 자 아니 떠오르면 누가 추억이라 하랴. 잊음으로 못 지우는 모습 하나 소중히 간직하고만 있다면 왜 사랑이라 하지 않으랴. 그냥 그렇게 앓는 거다. (김대규·시인, 1942-) + 존재의 빛 새벽별을 지켜본다. 사람들아 서로 기댈 어깨가 그립구나 적막한 이 시간 깨끗한 돌계단 틈에 어쩌다 작은 풀꽃 놀라움이듯 하나의 목숨 존재의 빛 모든 생의 몸짓이 소중하구나 (김후란·시인, 1934-) + 별 하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도종환·시인, 1954-) + 별 큰 산이 작은 산을 업고 놀빛 속을 걸어 미시령을 넘어간 뒤 별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 처음엔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울산바위가 푸른 어둠에 잠기고 나면 너는 수줍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별에서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을 닦으면 캄캄함 그리움이 묻어난다 별을 쳐다보면 눈물이 떨어진다 세상의 모든 어두움은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이상국·시인, 1946-) + 별은 다정하다 집에 돌아오며 언덕길에서 별을 본다 별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별은 그저 자기 할일을 하면서 반짝반짝 하는 거겠지만 지구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내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눈에 닿는 별빛이 몇만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든지 그 별이 이미 폭발하여 우주 속에 흩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든지 보이저가 가보니까 토성의 위성은 열여덟 개가 아니라 사실은 스물한 개였다든지 그런 걸 알아도 그렇다 오히려 나도 다음 생에는 작은 메탄 알갱이로 푸른 해왕성과 얽혀 천천히 돌면서 영혼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좋겠다 싶다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사람 같아서 가족의 식탁에 깨끗이 씻은 식기를 늘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가운데 내려놓는 여자 같아서 별은 다정하다. (양애경·시인, 1956-)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별 하나를 위한 기도 내 영혼의 어둠 속에도 별 하나 자라게 하소서 그리움을 잃고 헤매는 한밤중에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슬픔 속에도 방향조차 분간 못하는 초조함 속에도 별 하나 끝자락에 도무지 지지 않아서 길이 아닌 것에 좀체 흔들리지 않으며 사랑이 아닌 것에 마음 두지 아니하도록 앓고 나면 앓은 만큼 더 자라 반짝이는 내 기다림의 어둠 속에도 별빛 하나 품게 하소서 (홍수희·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