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 단편소설을 알고 있다.
그 내용은 지상으로 떨어진 죄를 지은 천사가 하느님의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그 소설에서의 답은 '사랑'이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봤을텐데 굳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가을을 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어떤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라는 시귀절을 인용하며
나를 키운 것의 팔할이 운동이었다고...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난 객기였다. 무엇 하나로 나의 삶을 80%이상
규정할 수 있다니. 과연 나는 그러한 존재였던가? 어느 한두가지로 규정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던가.
요새 많이 하는 즐거운 상상이 있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일 때를 그려보는 일이다. 이글을 혹시 읽으실 여러
30줄에 들어선 선배님들에게는 우스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들에게 30대는 조금 먼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니까.
어쨌든 그럴때 드는 생각은 아마도 내가 여우같은 마누라랑 토끼같은 새끼들이랑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거다. 적당히
즐기기도 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는 부분도 늘어가면서 어쩌면 세파에 찌든 몸을 달래가며 살고 있을 것같다.
그때 지금 함께 술마시고 밤새 이야기하던 친구들과 다시 술 한잔 하는 일. 어쩌면 그때는 젊은 날의 치기였다고
웃어버릴 수도 있는 지금의 삶을 생각하며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 하나둘쯤 있다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에대해 부끄럽지 않을 것이며 결코 옛이야기에만 취해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길들여진 채 주식시세 이야기나 마누라와의 잠자리 이야기만을 안주거리로 삼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저마다 그렇듯이 그순간에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을 우리들일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희망'으로 산다. 저마다 자신의 삶에 가지고 있을 오래된
공상을 먹고 산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삶에 진지하게 대응한다. 가장 극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자신에게는
항상 최선으로 진지하게 살고 있다. 나도 그렇게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