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검색어 칸에 그의 이름을 써넣고 한참 고민 하다가 엔터를 누른다.
당연히 동명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왔지만 그 중 하나 눈에 띄는 아이디가 있다.
실례가 될걸 알면서도 그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반은 포기 상태로.
며칠 후
사람 찾기를 했다는 걸 까맣게 잊어갈 무렵
동명이려니 했던 사람에게 답장이 왔다.
아- 그토록 찾고 싶던 그 사람이다.
꿈인가 싶어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난 그를 두 번째 되찾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언제였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그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라
‘어떻게든 만났겠지-’ 하고 추리를 해보곤 하지만 역시 마땅한 대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나와 그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만났다.
아마 서로가 남자였다면 분명 ‘우린 불알친구’ 하며 진한 의리를 과시했겠지.
친구와 나의 집 사이엔 신작로라는 장애물이 있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런 우리들이 안쓰러웠는지 어느 해 친구 집은 바로 우리 집 앞으로 이사를 왔고
동시에 우린 동네의 제일가는 말썽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우리 사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랄까.)
날이 저물도록 놀고도 부족해 서로의 집에서 자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새삼 느끼곤 한다. 아무리 어렸다지만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사는 집에서 외박을 했으니 말이다.
꼬마 손님 때문에 새우잠을 잤을 그의 식구들은 얼마나 내가 얄미웠을까.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정을 쌓아갈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글쎄 그가 서울로 전학을 간다는 게 아닌가.
처음엔 우리를 시기한 누군가 만든 소문이라 했지만 소문은 현실이 되었다.
아주 화창한 가을날 아침.
모처럼의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려는 데 누군가 나의 단잠을 방해한다.
화를 내며 잠을 깨니 친구다. 그는 내게 주소를 물어왔고
막 잠을 깬 나는 비몽사몽으로 나 조차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주소를 적어주었다.
결국 난 그가 이사가는 걸 못 보았고
그가 이미 도착했을 시간이 되었을 때 겨우 정신이 들어 슬픈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화를 낸 주제에, 이사가는 것도 못 본 주제에, 울면 안될 것 같아
활짝 핀 코스모스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참았지만
열 살의 꼬마에겐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는지 소리도 못 내고 울고 말았다.
내가 잘 못을 해서일까. 아님 주소를 잘 못 적은 걸까.
그에게선 전혀 연락이 없었다.
‘도회지에 가서 날 잊은 모양’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오기가 생겨나도 그를 천천히 잊어갔고 그렇게 사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중학교 일 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친구’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내 친구 아닌데-’ 했더니
글쎄 그 괘씸한 친구가 아닌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차마 반갑다는 말도 못 하고
바보처럼 대답만 하다가 오분도 채 안 돼 사 년만의 만남은 끝이 나고 말았다.
미처 연락처도 묻지 못하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혹시나 그가 또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두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를 만났다는 것에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그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린 미친 듯 편지를 주고받았다.
마치 사 년 간의 공백을 채우려는 듯- 매일같이 두터운 편지를 보냈고
짧은 만남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친해진 걸 질투라도 하듯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후 이별의 신은 또 우릴 갈라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친구의 전화는 결본이란 기계 음만 흘렀고
편지는 중간에 사라졌는지 답장도 없고 되돌아오지도 않았다.
처음엔 믿기 힘이 들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가 사라지다니.
혹시나 그가 잘못된 건 아닌지 불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그가 보내온 편지가 내가 만들어낸 환각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외울 정도로 꺼내어 읽곤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도록 그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래도 편지가 있으니 됐어-’ 하는 마음으로 그를 묻어갔다.
그렇게 그와 두 번째로 연락이 끊긴지 약 육 년이 지나
기적과도 같이 인터넷으로 그를 찾았다.
그에게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지만
잊고 있던 추억들은 찾을 수 있었다.
마치 보물을 발견 한 것처럼
그가 들려주는 유년시절은 눈물나게 한다.
예전만큼 연락을 자주 안 해서 또 헤어지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우린 질긴 인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