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삼년의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숨을 돌리는데 엄마가 마침 사리때니 고마니를 잡을 수 있을거라며 언니에게 바닷가에 갈거냐고 물으셨다.
(사리 : 썰물과 밀물 차이가 크며 조개 등 해산물 잡기 좋은 시기
고마니 : 우렁같이 생긴것으로 크기는 손톱정도 된다, 아마도 우리동네에서만 그리 부르는듯. 타지역에선 올갱이라고도 불린다)
며칠전부터 고마니 타령을 하던 언니인지라 당연하게 간다고 말하곤
내게 같이 가자고 조른다. 이왕이면 많이 잡고 싶었거니와 심심하단 이유에서다.
집에있어봐야 청소나 할것 같아 조카를 꼬셔 나도 동참해본다.
혹시나싶어 호미를 들고 가려다가 조개는 못잡을꺼란 말에 낡은 주전자를 들고 약 십분을 걸어 바닷가 끝쪽으로 향한다.
어릴때만해도 신분증이 있어야 들어갈수 있던 부대지역으로 가는 길은 마치 등산하는것 같이 험난하기만 했다.
바닷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지만 그놈의 자갈이 왜그리 많은지 반도 가기전에 불평이 쏟아진다.
드디어 도착.
아직 바닷물 빠질 시간이 되질 않아 바위에 고인 바닷물 속에 손을 집어넣어 고마니를 건져내야만 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청소나 할껄.
짧은 후회와 함께 큼지막한 돌들을 뒤집어 고마니를 잡는다. (대부분 바위에 붙어 살아간다.)
어쩐일인지 조카가 나보다 더 많이 잡는것 같아 내심 불안해하며 열심히 주워담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문자가 온다.
당진으로 해돋이를 보러 가잔다.
서해지만 해를 볼수 있는 곳이 있다는 친구의 문자가 날 유혹한다.
평소같았으면 어림없었을텐데 마침 언니들이 와있어 집에 있지 않아도 되었기에 바로 승낙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차도 막힐것 같고 여러모로 고생할것 같아
그냥 고향에서 놀자고 말을 해보았지만 혼자라도 가겠다는 친구의 말에 못이긴척 따라나선다.
벌써부터 마음은 당진으로 향하는지라 고마니를 포기한채 조카와 집으로 돌아오고 외박허락을 받고 집을 나선다.
(친구는 대전에서 출발해야하므로 내가 먼저 가서 숙박을 알아보기로 했다.)
같은 충남이라 차 하나만 타면 갈줄 알았는데 왠걸. 태안이나 서산에서 갈아타야 한단다.
인터넷에서 본 기억으론 태안이 더 가까운것 같아 거기서 갈아타기로 결정하곤 차에 오른다. 가방속에 있던 책을 꺼내 읽어도 보고 낙서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날을 샐것 같아 잠을 자두기로 한다.
드디어 태안 도착.
바로 당진 가는 버스를 탔는데 이럴수가. 서산을 들렸다 가는게 아닌가.
이럴줄 알았으면 서산에서 타는건데!
시간과 돈낭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저지른일인걸.
생각보다 당진은 꽤 멀었다.
태안에서 한시간 조금 넘게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목적지인
"왜목마을"을 물어 또 버스를 탄다.
터미널에서 거기까지 한시간 걸린단다. 어쩐지 굉장히 촌일것 같다는 생각과 괜히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 가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타고 오던 버스가 고장이라는 연락이 온다.
오 마이 갓!
혹시라도 버스를 못 고친다면.. 나 혼자 있어야 하지 않은가.
친구도 돌아갈수도 올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라지만
길치인 내가 처음가는 곳에서 헤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려움이 오기 시작했다. 아. 역시 괜히 왔어- (나 돌아갈래-)
하지만 내 마음도 모른채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았다.
'왜목마을'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큰길을 따라가면 바로 바닷가가 나왔고 그나마 유흥지라 보이는 곳이 나왔다.
바닷가로 가는 길 옆은 행상이 가득했고 바닷가엔
고향과 마찬가지로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장사진을 이뤘다.
어째 건물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곳이었다.
바다도 시골인지라 굉장히 작았고 날을 샐만한 장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예를들어 피씨방이나 커피숍, 호프집)
그나마 날씨는 제법 훈훈했지만 역시 겨울인지라 날을 새야 한다는 압박감에선 벗어날수 없어 숙소를 알아보았지만
어딜가도 만원이었다.
워낙 마을이 작은데다 일반 주택도 눈에 띄질 않아 친구가 오면 상의하기로 하고 근처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오분도 안돼 마을을 다 보았다.
그만큼 작고 아담한 곳이다.
마을입구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경찰과 시민이 싸우는 장면을 보았다.
무슨 이유든 경찰과 시민이 싸우는 장면은 기분이 썩 좋질 않다.
경찰들의 입장을 모르고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는 심보를 갖고 무조건 핏대만 올리는 사람들과
우린 그런거 모르니 담당자를 찾아가라는 경찰들의 감정없는 말은 더욱 춥게 만들었다.
드디어 친구가 도착했고 한참 떨어진 곳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식당의 한켠에 있는 방으로 숙소를 정한다.
완전 자취방같은 구조의 방은 더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추위에 떠는것보단 나을것 같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육만원이나 주고 자기로 한다.
아까운 돈 육만원 (지금 생각해도 진짜 아깝다)
친구와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두시경 잠이 든다.
(이미 해가 일곱시 넘어 뜰거란 정보를 알고 있던 우린 여섯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다.)
육만원짜리 방은 그래도 무척 따뜻했다. 마치 찜질방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일어나기로 한 일곱시가 되자 부리나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다.
이미 밖은 훤하다.
혹시라도 해가 벌써 뜬건 아닐까.
그래도 모르니 일단 가보자 하며 그 바닷가로 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 틀렸군. 돈만 낭비했군.
하지만 그 사람들도 해를 제대로 못 본 모양이었다.
바닷가엔 자욱히 안개가 껴있던 것이다.
왠지 비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혼자만 못본게 아니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친구와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해가 미안한걸 알았는지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빨갛게 익은 반 해다. (반달=반해-_-)
하지만 일분도 안되어 해는 사라졌다.
그래도 해는 봤으니 어딘가 하며 친구에게 소원 빌었냐 물어본다.
빌었단다. 재빠른 녀석.
난 소원을 못 빌은것 같은데-
계속 남은 필름을 낭비하고 있는 사이 다시 해가 나온다.
이번엔 완벽한 동그라미다.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래도 새해의 첫 태양이다.
소원 빌 생각은 못하고 마냥 해만 바라본다.
그렇게 해를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좁은 시골길에 놓여진 차들은 꼼짝할 생각을 안한다.
오늘안에 집으로 갈수 있을지 고민이 되지만 밤새 제대로 못잔터라 일단 자고나서 생각하기로 결정.
두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거짓말 같이 차가 다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친구에게 언제 한번 꼭 다시 오자고 말해본다.
생각했던 일출을 보지못한 친구도 다음엔 숙소도 좋은곳으로 잡고
멋진 일출을 보자고 기약을 한다.
벌써부터 좋은 친구와 함께할 일출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