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 콜록 - 에엣취-’
이미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것만 고놈의 기침과 재채기는 그치지 않고,
간신히 찬물을 마셔 진정하기가 무섭게 고놈들은 어느새 가려움으로 돌변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얼굴을 닦은 구겨진 휴지 옆엔 ‘샘플용’이란 딱지가 붙은 레몬 향의 공기청정제가 팔자 좋게 누워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얼른 달려가 공기청정제를 발길질하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걸 뿌린 건 나 자신인걸.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펌프질을 두 번이나 해버린걸.
결국 짧은 후회와 함께,
버릇처럼 첫 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녀석을 또 떠올리고 만다.
사실 내가 이렇게 향수 알레르기로 고생을 하는 건 다 그 녀석 탓이다.
유독 후각이 예민한 편이지만 그를 만나기 전엔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었다. 그러니 당연하게 녀석의 핑계를 대는 게다.
녀석과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만났다. 친구의 친척이었던 그는 동갑내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린 외모와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똑바로 서 있으면 간신히 내 어깨에 닿을 정도로 작은 키.
친구 집에서 아르바이트만 안 했더라면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이름조차도 궁금하지 않은 녀석과는 생각보다 쉽게 친해졌다.
처음에 녀석은 내 또 다른 친구에게 장난을 시도하나 싶더니
반응이 없는 친구가 재미없었는지 내게 화살을 돌렸다.
될 수 있으면 녀석과의 추억은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 역시 친구처럼 녀석의 장난에 반응을 안 보이려고 노력을 했지만
지고는 못사는 성격 탓인지 그의 장단에 맞춰 놀아나고 말았다.
사람은 생긴 데로 살아간다고 했던가.
초등생 외모를 가진 녀석은 하는 짓도 딱 초등생 수준이었다.
꼭 살아있는 장난감을 가진 꼬맹이처럼
틈만 나면 내게 달려들어 괴롭히고 ‘나 잡아봐라’ 하며 도망을 다녔다.
상대하고 있는 내가 더 한심해서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으나
그와의 싸움은 날이 갈수록 유치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알레르기가 시작 된 역사적인 날이다)
어김없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며 다가오는 녀석의 몸에서
어른들이나 뿌리는 스킨 냄새가 풍기는 게 아닌가.
아무 냄새 없이 장난치러 오는 녀석도 끔찍한 마당에
제일 싫어하는 스킨을 잔뜩 바르고 오다니. 정말 꼴도 보기 싫은 녀석!!
그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난 도망을 다녔지만
달리기엔 자신이 없는지라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아..
달리느라 숨이 차는 데다 녀석의 냄새까지.
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고 숨도 못 쉴 정도로 기침을 해댔다.
얄미운 녀석은 그래도 좀 걱정이 되었던지 그 날 장난은 그걸로 끝났지만
다음날 또 그 스킨을 뿌리고 올 줄이야. (전날보다 더 진하게.)
어디 그것뿐인가.
바짝 달라붙어 ‘덥구나-’하며 부채질을 하는 거다.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때려도 시원찮을 녀석!!!!!!
그렇게 스킨과의 전쟁을 치르던 어느 밤.
그는 이제 뿌릴 스킨이 없었는지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 몸으로 나를 불러내어선.
묻지도 않은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차마 얘기를 끊을 수 없어 다른 생각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는데
‘왜 넌 얘기 안 해. 나한테 할말 없어?’ 하고 묻고 있다.
뭘 어쩌라는 건지.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혀 줘!!’ 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 괴롭힘도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없는데- 넌 있니?’ 하고 말았다.
‘있어- 근데 말 할 수가 없어- 그 얘긴 내 맘 깊이 있거든-’ 하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난 그가 날 좋아하는걸 알아버렸다.
그토록 괴롭힘을 당했으면 눈치챘어야 했는데 둔했던 난 결국 그의 입을 통해 알아버린 게다. 그렇게 우린 반은 장난으로 좋은 사이로 발전했다.
그 고백을 이후로 이제 장난은 안 하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녀석은 완전 자기 것이 되었다 싶었는지 장난이 더 심해졌다.
정말 어린애 같은 녀석.
조금은 남자다운 면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는데-
그런 실망감 때문일까
나는 조금씩 지쳐갔고 그의 장난에도 시들해져갔다.
녀석도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장난은 훨씬 줄어들었지만 우리 사이는 더 멀어져갔다.
결국 그는 내 앞에서 엉엉 울면서 이별을 고했고
그 눈물에 당황한 나는 차마 울지 못하고
‘내가 네 장난감이야?’하고 소리질렀다.
그렇게 우리의 소꿉장난 같던 사랑놀이는 개학과 동시에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난 그를 종종 만나곤 한다.
내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마다
알레르기란 이름으로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