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닐 적 무척 삶과 의미에 대하여
고뇌하며 밤마다 술에 취하여
혼자 울곤 했습니다
바랜 노트에 글씨마저 퇴색한 과거를 보며
여기에 적어봅니다
만 취
1.
막연한 강물에 밀려 흐를수록
허우적대는 모습
하나
달구어진 가슴을 식히려 마셔대지만
긴 통증이 신경을 타고 번지면
불길이 몸을 더위라
썩은 입내음이 담배연기를 끌어안고 나를 감위라
사상도 꿈도
술잔속에 빠져 허우적위라
목적도 없이
마냥 가는 이들 따라서
나는 나로도 반듯이 서지 못한 채
휘청이는 불빛으로 흔들려라
바닷가 소라처럼
물결에 밀려 깍이는 아픔도 잊으며
푸른 소리에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건만
2.
꿈이 없구나
푸른 소리조차 없었구나
마주보며 웃던이도 없었더구나
모두 저의 짐을 지고 미련없이 가버렸더구나
빈 뜨락에서
빈 바람만 맞으며
빈 마음으로 가슴을 비워가는구나
남겨짐 하나 없도록
타인의 크고 작은 푸대자루를
오늘도 가진 것 모두 삭혀
채우기 위해
비워진 술잔을 또 채우며
아득한 현기증을 머리에 이고 비틀거려라
3.
울먹이고 싶은 마음도
마음뿐으로
어데라도 숨어서 땅을 치며 오열해 보고프건만
온몸으로 흐르던 상처난 땀들은
실바람으로도 말라버리고
짧구나
그리고 짜구나
벌집에 박혀있는 하루의 각가지 꼴들이
어제의 일처럼
그제의 일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묻혀가고
죽음앞에선
그 무엇도 말할 수 없지만
비굴하지 않으려
용기있게 살으려고
나머지 삶만큼은 보람찬 의미로 데우고 싶은데
어쩐지 나는 무섭도록 허전하구나
4.
비워지는 만큼
마셔대는 술이지만
마실수록 더욱 비워지는 술잔은
어느 죄수의 소리없는 눈물로 만들었기에.
가벼워지고 싶구나
날아가고 싶구나
그늘진 구석없이 풋사과처럼 웃고 싶구나
5.
사람은 사람답게
사람의 얼굴로 사람의 말을 하며
사람의 행동을 해야 한다지만
나는
왜
사람의 금안에서 자꾸만 삐지는지 알 수가 없어
뭉게진 다리를 끌고
부시도록 뜨거운 모래위에 누워
태워내고 싶구나
문신된 세상의 얼룩이 보이지 않도록
알밴 짐을 저어가며
혼자서 방황하는냐
생각이 달라 친구가 없었더냐
어느 별의 이름을 달고 이땅위에 던져졌기에
전생의 어느 업보를 꿰어차고 이땅위에 회전했기에
들판의 허수아비로 박혀
벙어리진 옷자락만
나부끼는냐
우리가 찾는 진리란 어떤 모습의 괴물이기에
움켜진 네 모습에 있드냐
조각난 내 영혼에 있더냐
세상 것에 물들어서
욕심에 갇혀져서
눈이 멀었구나
마음마저 멀었구나
6.
맑은 소리로 떨궈지는 술이건만
식도를 타고 내릴수록
슬픔의 앙금은 더욱 커가고
너희는 너희대로
나는 나대로
건배의 힘찬 소리를 지르며
독약처럼 마셔대는구나
생각치 않음으로 원하여
추한 시간을 원치 않음으로 인하여
독배
또 독배, 그리고 또 독배...또
7.
내일은 내일로 남겨두라
지면 뜨고 뜨면 지는 태양인데
무엇이 모자라 지는 태양을 붙드려 하는냐
자고 싶을 때 자고
싸고 싶을 때 싸고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실컷 먹으라
생각이 살아있는 생활에서
높은 것 위에는 더 높은 것이
많은 것 위에는 훨씬 더 많은 게 있는데
쥘수록 심장을 헤집는 허무가 무섭지도 않드냐
순수한 감정대로 살 줄 아는"
책임있는 자유를 누릴 줄 아는
날이면 날마다 제 허물을 벗을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런 마음으로만
8.
타는 듯이 더워라
몸서리치며 다시 한잔
이 한잔에 생명까지 담그고
무겁던 짐들일랑 풍선으로 띄워 날리우자
눈이 아프도록
눈물이 컥컥 솟구치도록
아롱한 정신으로 살붙이같은 정들이
하늘 끝
우주의 어느 별로 가는 지 바라보자
이제
남겨진 술로 이별의 축가를 부르며
허탈한 머리속에 불울 지르자
몸이 타도 좋으니
영혼까지 다 타버려도 좋아
9.
취할수록 무너져내리고 싶구나
폭탄에 쓰러지는 빌딩처럼
마실수록
녹아내리고 싶구나
용광로의 쇳물처럼
욕심이라면 산다는 거
하나밖에 없는데
무리진 사람들속에 내 얼굴은 보이지 않아
잃어버렸어
생각도 의식도
빙판같은 현실도 모조리 잊어버렸어
어지러울 뿐
똑바로 설수록 나는 어지러워
10.
허공에 뜬 걸음마다
나의 숨은
그리움으로 보고픔으로 묻어나는데
지나치는 사람들은 역겨운 시선으로 비껴만 가고
박박
악이라도 쓰려 하여도
절망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의식은
목에 걸려
숨조차 쉴 수 없어
토해내고 싶어
먹은 것이 무엇이든
뱃속에 숨어든 오물들을 모조리
잠들고 싶구나
쪼개지는 머리를 꽉 쥐어싸고 잠을 자고 싶은데
수많은 불빛
수많은 얼굴들이
말라붙은 눈물마저 한움큼씩 뜯어내고 있어
11.
소름치도록 오싹한 고요
아무것도
아무도
없이
고요의 연이음...
단지,
빈 술병만이 긴 휘파람을 불며
나를 흔들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