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례식장 (2월 21일 오전 9시)
“재준아 뭐 좀 먹어야지.”
“네. 그럴게요. 엄마도 좀 드세요.”
“그래...그래야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보다.
이상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2일전부터, 정확히는 4끼를 굶었는데도 전혀 배가고프지 않다.
그것보다 더 이상한 건 동생이 죽었는데 왜 이렇게 슬프지가 않은지 모르겠다.
장례식장 복도는 밤새 불이 꺼지지도 않고 환하기만 하다.
이렇게 밝아서야 귀신이 가족들 얼굴 보러 오지도 못하겠다.
“아이고- 아이고-”
쉬지 않고 들려오는 저 곡소리가 너무 지겹다.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여기에 들어올 때는 밤중이었는데 벌써 해가 떴다. 9시 12분. 날씨가 너무 맑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어 보았다.
밤을 새서 일까. 모든 것이 선명하지가 않다. 머리도 멍하고 온몸의 감각도 둔하다.
재민이가, 내 동생 재민이가 죽었다. 그것도 살해당했다.
경찰이 말해준대로라면 재민이는 19일 밤에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
하지만 도어락이 강제로 열린 흔적이 없다.
게다가 경찰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재민이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민이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들었고, 그 사이 누군가 재민이의 목을
졸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체 누가 왜 그런 일을.
어젯밤 형사는 장례식장에 찾아와 나에게 가족 간의 불화는 없었느냐고 질문했다.
내가 왜 그걸 묻냐고 질문했을 때 형사는 대답을 회피하는 듯 정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고 나는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사건현장과 현관문 어디에도 가족 이외의 지문이나 모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물론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침묵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아마 경찰은 이미 반쯤은 가족을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수면제를 먹은 상태에서 교살이라니. 자살은 사실 불가능한 상황이라 서요.“
경찰은 처음엔 자살을 의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난 자살은 결코 아니라고 얘기 했다.
재민이는 그날 오후에 나에게 카톡을 보내 다음날 같이 쇼핑을 가자고 약속했고 그날 오후
엄마, 아빠 모두와도 통화를 했었다. 부모님은 통화에서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면식범일 겁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경찰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날 저녁, 저와 부모님은 제 여자친구와 같이 식사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재민이는
다른 약속이 있어 참석을 못하게 되었구요. 식사 약속은 3일전. 그러니까 16일에 잡은 약속
이라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거기다 저랑 부모님이 집을 비운 시간을 정확히 알았다는
것도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분명히 면식범이에요.“
경찰은 무언가를 열심히 수첩에 적었고, 생각에 빠진 듯 했다.
“동생분이 평소에 불면증이나 우울증에 시달리지는....” 경찰은 자꾸 말끝을 흐렸다.
“형사님! 제 동생의 학생기록부라도 보셨다면 잘 아시겠지만, 재민이는 누구보다 밝고
성실한 애였어요. 이번 학기에도 학급 반장을 맡을 정도로..“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민이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어긋나는 기분이 들어 나는 입술을 깨문 채 입을 닫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힘드실 텐데 괜한 질문을 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재민이가 죽었다.
내 동생 재민이가 죽었다.
하지만, 왜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날씨가 맑다.
이러고 보면 세상은 정말 우리한테 관심이 없어 보인다.
2. 장례식장 식당 (2월 21일 오전 11시)
점심때가 되어서야 슬슬 허기가 되살아났다. 부모님을 찾아 같이 밥을 먹으려 했지만
아버지는 잠들어 계셨다. 이틀을 연속으로 밤을 세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조차도 아버지는 죄스러운 듯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나눠준 담요로 아버지를 덮어 드렸다.
어머니가 혼절할 듯 우시던 것에 반해,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그 옆에서 어머니를 부축했다. 강하신 분이다.
3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지내면서 조금의 비리도 없이 언제나 성실하셨던 아버지였다.
그렇다고 나와 재민이에게 무뚝뚝했던 것도 아니다. 성실하고 자상한 아버지.
다만 속이 깊어 말이 적었을 뿐이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쾌활하셨다. 그랬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밝고 따뜻했다.
가족 간의 다툼이란 것도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저 보통의 가정. 아니, 조금은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다니는 첫째, 조금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이 있어 친구들이 잘 따르는 둘째. 성실한 공무원인 아버지. 피아노를 전공 하셨던
어머니까지. 지금 시대에 이정도면 사실 완벽한 가정이 아닌가.
그래 그렇지만 사고는 언제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우리가 아무리 성실하게 무엇을 준비했다 해도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운명이라 불리는 것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듯.
“재준아.” 식당에 앉은 엄마가 걱정스럽게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 네?”
“얼른 먹어. 국 식겠다.”
“네. 엄마도 드세요.”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일 낮 장례식장 식당에 사람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마침 켜져 있는 tv에선 사건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다음 뉴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오늘 새벽 ㅇㅇ동 주택에서 불이나 잠자고 있던 15세
김모군이 크게 다치고 38세 김모씨가 사망하는 등 총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화재는....“
뉴스는 오늘 새벽에 있었던 화재에 관한 것이었다. 새벽에 가정집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자식들의 아버지는 잠들어있던 아들을 대피시키고 다시 불길로 뛰어 들어 딸을 구한 뒤
마지막으로 아내를 구하려다 같이 사망하게 되었다 한다.
뉴스를 보다 난 또 다시 재민이가 떠올랐다.
재민이와 나는 평소엔 죽이 잘 맞아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번 의견이 갈리면 누구 하나 지려고 하지 않아 말싸움이 길어지곤 했다.
재민이는 쾌활하고 적극적인 아이였지만, 늦둥이라 그런지 욕심이 좀 있었다.
아마 재민이가 7살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재민이가 다니던 유치원에선 그 주에 가을소풍을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원생들이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소풍에서
먹을 과자를 스스로 고르는 것을 숙제로 내 주었고, 나와 부모님은 재민이에게 돈을
쥐어주며 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도록 시켰다.
재민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과자를 골라왔고, 그것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두었다.
과자는 전부 초코바나 소세지 같은 혼자서 먹는 음식들이었다.
“재민아 친구들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과자도 골라야지.”
엄마는 타이르듯이 재민이에게 말했다.
“싫어. 이건 내가 먹을건데?”
재민이는 계산대 위의 과자들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대답했다.
“소풍가서 친구들하고 과자도 나눠먹고 바꿔먹고 하면 재밌지 않을까?”
“싫어.”
재민이는 그런 식이었다. 과자만이 아니라 자기가 챙겨야 할 몫이라 생각되면 도통 양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성격도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조금씩 바뀌어 갔고 부모님과
나는 그런 재민이가 대견스러웠다. 물론 가끔은 옛날 버릇이 나와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재민이는 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행동을 바꿨다.
“재준아....” 엄마가 나를 부른다.
“네. 엄마.” 목에서 건조한 소리가 나왔다.
“얼른 먹어야지.” 엄마는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나는 엄마가 준 숟가락을 입에 물었다.
엄마의 밥그릇은 방금 한 숟갈을 빼곤 처음 그대로였다.
3. 사건현장. (2월 20일 오후 1시)
김형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사건현장을 둘러봤다.
‘저항의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자살도 아니고.’
김형사는 처음엔 자살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사건을 진행해 갔다.
‘도어락도 강제로 열리지 않았고,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 그런데 교살. 가족들은 외출 중. 정확히 그 시간에 사망.‘
하지만 자살이라면
수면제를 먹고 잠든 상태에서 교살이라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침대에 누운 채 목이 졸렸으며,
그것도 누군가 뒤에서 강하게 목을 졸라 사망했다.
만약 밧줄을 벽이나 천장에 걸고 자살을 한 것이라면 목에 밧줄 자국이 다른 형태로
나야만 한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
여러 정황증거가 자살의 가능성을 낮추고 있었지만 김형사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김형사님, 뭐 좀 찾으셨습니까.”
과학수사 조끼를 입은 과학수사대 후배였다.
“아니.... 너무 깨끗해 이상할 정도로.
그런데 자살도 아니야. 그 쪽은 어때?“
“저희도 이상해서 꼼꼼히 뒤져 봤는데요.”
“뒤져 봤는데?”
“없어요. 피해자 방 만이 아니라 거실, 화장실, 현관문까지 아무리 뒤져도 피해자 가족의
DNA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결국 가족이거나, 자살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얘긴데.....
하지만 흔적을 지우고 집에 들어왔을 수도 있잖아.“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런데 현장을 보셨잖습니까.”
김형사는 다시 한 번 피해자의 방을 쳐다보았다.
사건 현장에 경찰들이 도착했을 때 사건현장에는 피해자의 시체와 범행에
사용된 밧줄이 같이 침대 위에 놓여져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밧줄은 피해자의 목을 감싼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만약 범인이 모든
흔적을 지우기로 작정했다면 밧줄을 가져갔거나 하다못해 자살처럼 보이게 위장을 했어야
맞다. 하지만 범인은 마치 ‘사건이 살인에 의한 것이다’ 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면식범일거야. 옆집이랑 앞집에서 큰 소리가 나는 걸 듣지 못했다고 했어.
그리고 도어락이 강제로 열리지도 않았고. 경비원도 그 시간대에 수상한 사람을 보진
못했다고 했어.“
그때였다. 과학수사 조끼를 입은 다른 수사대원이 김형사와 후배에게 말을 걸었다.
“뭔가 좀 이상한게 있는데요.”
“뭔데?”
김형사가 되물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아씨. 그러니까 뭐냐고.”
김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그게 피해자의 컴퓨터가 좀 이상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데.”
“그게. 제대로 작동을 안하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한번만 더 질문하게 하면 너 죽는다.”
김형사가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
“아. 네! 누군가 피해자의 컴퓨터에서 하드디스크를 빼간 것 같습니다. 다른 부품은
그대로인데 하드디스크만 없어졌습니다.“
“뭐? 하드디스크?”
김형사와 후배는 서로 마주보았다.
“야, CCTV는 다 확보했지?”
김형사가 후배에게 물었다.
“아마 박형사가 확보했을 거에요.”
“그리고 이거 컴퓨터는 누구한테 물어보냐?
하드디스크 없으면 뭐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일단 사이버수사대한테 얘기 해 놓을게요.”
“그래 그래. 시간 없으니까 빨리 빨리.
그리고 피해자 휴대폰 통화기록, 메신저 기록, 발신지 뭐든 다 찾아봐.”
“네.”
김형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김형사는 여전히 자살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특이한 방법으로 살인으로 위장했으리라 생각하던 중이었다.
‘무언가 사라진 물건이 있다. 피해자가 미리 폐기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가져갔다. 그렇다면 자살이 아니다.‘
김형사는 침대 위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시발 진짜.’
김형사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