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단편소설-2m옆의 이웃
세상에서 우리들만큼 거리상으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내 좁은 생각으로)없을 것 같다. 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가족과 이웃 간의 거리는 매우 짧다, 겨우 담 너머다, 담까지 없다······.’등등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우리의 경우는 훨씬 심하다.
도대체 어느 정도냐 하면, 겨우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면 된다. 그 계단을 빗면으로 변형할 때, 빗면 부분이 약 2m넘을락 말락 할 정도 되니까, 거리상 약 2m가 우리 가족이랑 이웃 가족 간의 거리이다.
참으로 이 기묘한 현상은 어찌되어 일어났는가! 나도 모른다. 다만 대충 들은 바로는 우리 아버지랑 2층의 윤지네 아버지랑 피로 맺은 우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오래 떨어질 수 없는 처지이다. 자기네들 말로는 ‘서로 동고동락하며 함께 이 세상을 살아나가자.’라는 말씀인데, 그것을 핑계로 겨우 한다는 것이 같이 낚시터에서 물고기들에게 미끼로 사기행각을 치는 것일 뿐이다.
아버지들만 이렇게 사이가 좋지 나머지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희철아 일어나야······ 어머, 너는 윤지잖아.”
“엄마, 제 머리핀 어디갔어요?”
“아니, 나는 희철이 엄만데...”
“아···, 그럼 아주머니는 어디 있는지 아세요?”
“난 니 집 사정에 대해 모른다.”
“엄마, 샴푸 어데 갔는데?”
“우리 딸한테 시키지, 윤지야~”
“야, 샴푸·······, 끄아악! 뭣해?! 빨리 몸이나 돌려!!”
나는 다른 애의 엄마를 부르고, 다른 애는 내 엄마를 부르고······, 항상 이런 식이다. 특히,
등교 준비때 그런 경향이 심하다.
이런 상황에도 아버지들은,
“야, 천천히 해. 급한 길도 돌아가라 했잖아.”
“아니, 엄마들 생김새가 거의 같아도 구분은 하는데 왜 구분을 못하지? 머리가 띨띨하군.”
이런 소리에 엄마들은,
“그럼, 당신이 직접 애 챙겨보든가!”
“남사스럽게 왜 서로 한 집에 살아서 이 고생인지 몰라.”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바쁜 하루였다. 오늘은 미술 준비물을 가지고 무언가 모빌같은 것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오 여호와여-먹구름과 칙칙한 배경은 앞날의 복선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더 급한 건 우산 준비의 여부. 그 먹구름은 얕은데다가 구멍도 많이 나 있어서 햇님이 자주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대는 애매한 상황이라, 우리는 의견이 갈라졌다.
“아휴~, 우산 가지고 가야겠다.”
“무슨 소리야, 일기예보에선 비가 안 온다는데.”
“너는 일기예보만 전적으로 믿냐? 저 구름 좀 봐라. 저게 비가 안 올 상황인지.”
“그래도 만약 비가 안 오면 미술시간에 만든 거랑 우산이랑 들고 가야 해서 무겁단 말이야. 개고생 하려고?”
“그럴 확률은 ‘제로’이거든요. 자, 가자.”
빨리 가야 지각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둘 다 우산을 안 들고 갔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발단은 미술시간 으로부터 2시간 전인 3교시. 창문에 ‘툭 투둑’하는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에 완전한 장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정답자는 윤지, 그녀가 장마가 올 것을 예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됐으니 ‘도대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문제는 당연 생성이 되었다. 먼저 따지듯이 말한 건 윤지였다.
“거 봐라. 내가 온다고 그랬지? 자, 이제 어떡할라고? 어떡할라고~~~~!!”
“역정 좀 내지 마, 니 친구에게 우산 빌려서 쓰자고······.”
“허, 참, 자기 의견 때문에 일어난 책임을 다 회피 하시겠다?”
“뭐어? 야, 내가 언제 그런 의도로 했냐?”
“말 안했어도 다 네놈 탓이다!”
“니가 내 말을 따라서 그런 것이잖아!”
“그래, 너의 생각이 얼마나 멍청이 같은지 자기가 입증했구나?”
“야! 말 다했냐?”
우리의 높은 어조를 듣고 ‘싸우지마~’라고 기어들어가는 듯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행히 싸움을 막아주었다.
“여보세요?”
“어, 윤지니? 아줌마다. 왜?”
“지금 우산 들고 저희들을 마중 나갈 수 있으세요?”
“응, 우산 안 챙겼나 보구나. 왜 안 들고갔어?”
“아, 희철이가 우산 가져가지 말자 해서······.”
“아, 그렇구나. 알겠다. 어쨌든 건물 문 앞에 나갈게.”
“네.”
우리 어머니가 한가한 덕분에 우리는 비를 덜 맞게 되었다. 윤지네 엄마는 우리 엄마랑은 달리 보험회사 컨설턴트가 직업인 이상 바쁜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지는 혼자서 자기 일을 다 해내야 했다. 내가 봤을 때 그녀의 성격을 억세게 만든 요인이 된 것 같다.
한참을 기다리니 윤지 엄마가 오셨다. 꽤 넓적한 우산이라 우리들이 들어가도 조금이나마 남는 그런 크기였다. 우리들은 살짝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윤지가 조금 이상한 상태를 보였다. 목소리가 좀 쉬었고, 행동이 둔해지며 자꾸 현기증이 난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윤지네 엄마가 온도계로 체온을 재어 보니 높은 열이 나고 있었다. 윤지가 이를 듣자, 먼저 하는 것은 나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이씨···진짜······. 야! 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솔직히 내가 원인인 것도 조금 있었다. 어제 윤지네 엄마랑 우산 빌려 쓸 때, 윤지가 자꾸 내가 얄밉다면서 나하고 거리를 두려 하였다. 그러다가 비를 많이 맞았다. 집에 들어갈 때에는 그녀가 화장실로 가는 길마다 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잘 때에도 기침 소리가 들려 불안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런데 걔가 자꾸 나한테 뭐라 험담을 늘어놔서 죄책감보단 어서 빨리 응급실에 실려서 가라는 마음이 자꾸자꾸 생겨났다.
학교에서 그녀는 자기 친구들한테 내가 나쁘다는 걸 인정받으려고 안달이 났다. 나의 이미지를 닥치는 대로 나쁘게 해 놔서 친구들이 그녀의 잘못을 못 알아차려야 자기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게 몹시 언짢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올 때 내가 한마디 먼저 시작했다.
“야, 니 내가 학교에서 보니까 왜 자꾸 내 욕을 있는대로 하냐?”
“니가 그럴만한 짓을 했으니까.”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와 무정한 어조가 나에게 오기를 심어준다.
“참나, 그런 것 가지고 학교폭력하면 쓰냐? 그렇게 하니 재미있냐?”
“애초부터 그런 헛짓을 해서 남 피해주지 말던가. 흥, 지 아비가 돌+아이 같으니 자식도 저렇게 되구나.”
나는 순간 욱 했다. 우리 아빠의 학력은 초졸이다. 게다가 지적 장애를 조금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 우리 아빠를 보면 조금은 병신의 몸을 가졌다고 흉을 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증오했고, (친한친구인)윤지네 아버지도 그랬다. 항상 자기가 나서서 우리 아빠를 온갖 멸시와 사기로부터 그를 보호하신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딸이 우리 아빠를 흉보다니······.
나는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이제 앞에 있는 그녀는 나에 눈에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보였다. 순간 모든 시야가 빨개지고, 나는 정신을 잃은 채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화가 나실대로 나신 우리 엄마와 병원에 실려가는 한 사람을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윤지 엄마랑 냉정하게 그 구급차를 바라보는 윤지 아빠, 그리고 나 등 뒤에 서 계신 우리 아빠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빠는 ‘철썩-!’하며 큰 소리가 날 정도를 싸대기를 한 방 먹이면서 조금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랬져······. 녜놈이 왜·······.”
아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뒤로 성난 어머니가 나에게 꾸지람을 주는 덕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눈을 마구 때려서 눈 부위에서 피가 나게 한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감기 걸린 환자를 때려 애 인생 망쳐놓은 인물’이란 칭호를 주셨다. 나는 뭔지 모를 감정들에 휩싸여, 눈물짓고 집을 떠났다. 저 멀리서 엄마가 외치고 있다.
“그래, 잘 됐다! 가출해서 영영 돌아오지 말아라. 이 범죄자 놈아!!”
나는 어디로 갈지 막막했다. 무작정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 안정을 되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만, 일단 그 안정을 주는 곳이 이 우리 동네 근처에는 없는 것 같다.
그 순간, 가로등 아래를 지나가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니까 우리 할아버지 댁이 생각이 났다. 잘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관대하고 순하고 말도 순하게 하니, 왠지 그곳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집으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데, 대중교통카드는 아직 기차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 표를 끊어야 한다. 마침 적당한 돈이 있어 왕복으로 표를 정했다. 언제 한 번 돌아가야 할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전철 속에서 ‘이 어두운 밤중에 길 안 잃고 찾아갈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다. 걱정과는 달리 목적지 되는 역 앞에 바로 할아버지·할머니의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자, 좀 놀랐고,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문을 열자, 잠시 후, 할아버지가 들어와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할아버지·할머니 한테 그 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에헤이, 어찌하여 그런 일이······. 어쨌든 빨리 돌아가서 사과해라.”
의외의 대답에 나는 순간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할아버지가 ‘이리 와라, 어이쿠, 그런 힘든 일을 겪으니 얼마나 힌들었을 겠는가.’라고 나를 품어주실 줄 알았다. 왠지 할아버지가 미워졌다.
“뭐하니, 빨리 돌아가서 사과 안하고.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은 것이여.”
좋긴 뭐가 좋아, 괜히 할머니 말대로 했다가 욕 더 얻어먹고 운이 나쁘면 호적에서 파일 수도 있는데.
“저기, 왜 그래야 돼나요?”
“왜 그러긴! 당연히 해야 되지 안 하면 짐승새끼나 다름읎어!”
“할멈, 그렇게 말하면 애가 이해 못해요!”
할아버지는 말을 이어 갔다.
“얘야,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니?”
나는 순간 황당했다. 아까전에 자초지종을 다 설명해 놨을 텐데 또 물어 본다니!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 기억력이 떨어졌구나 라고 제멋대로 추측하면서 대답했다.
“윤지 눈알 때려서 피나게 해서요.”
“왜 때렸냐?”
“윤지가 우리 아빠 욕을 해서요.”
“왜 욕을 했냐?”
“지가 비 맞았다고 성을 내서요.”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도 질문공세는 계속되었다.
“왜 비를 맞았냐?”
“우산 밑에서 지가 자꾸 날 피하려다가...”
“왜 피하려고 했냐?”
“그건······, 아, 내랑 말다툼 해서요.”
“왜 싸웠냐?”
“걔가 나보고 흉을 봐서요”
“그러냐. 그런데, 하필 말 씹기, 굽히기 등의 수많은 나은 방법도 있는데 왜 싸우는 방법을 택했냐?”
누군가 머리에 총을 쏘는 기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가 말한 것을 내 방식대로 이해해서,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가 말싸움을 걸어도 참고 넘어갔었어야 하는데······. 할아버지의 개달음의 말씀에 나는 정숙해졌다.
“모름지기 적이 생기는 원리는 간단혀. 그냥 자기가 ‘갑이란 놈은 적이다.’라고 생각하면 갑은 나의 적이 되지. 무릇 사람은 적이라 여기지 않으면 적이 없고, 적이 없으면 자기 마음이 편안해져. 사과도 적을 없애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할아버지의 연륜이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순간 병원에 가서 사과하고 싶었다. 그녀가‘괜찮아’라는 사인을 보낼 때 까지 사과하고 싶어졌다.
“그럼, 가겠습니다.”
“옹야. 조심 하거래이.”
나는 전에 샀던 왕복 표를 이용해 우리 마을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 아빠의 욕을 마음껏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일어나 보니 학교 쉬는 날이라 병원에 찾아갔다. 병원에서 나에 대한 오묘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윤지를 만났다. 알고보니 눈 주위의 피부가 조금 찢어진 것뿐, 시력엔 아무 손상이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하늘이 도우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감옥에 가거나 우리 집이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그녀의 가족이 떠나서 나는 빚 갚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인생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이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야.”
“···”
“야. 이봐.”
“···”
대답이 없다. 계속 내가 있는 곳의 반대편을 보고 있다. 내가 싫은 걸까, 아니면 그쪽의 텔레비전에서 뭐 재밌는 방송이나 하는가.
“어이, 왜 대답이 없어?”
“왜?”
드디어 그녀가 말했다.
“옥상에 혼자 힘으로 갈 수 있어?”
“어.”
“그러면 옥상에 와. 너랑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어.”
이상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기분 나빠서 내 말에 시비를 걸고 욕도 더 할껀데. 그때 일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나? 어찌됐건 우리는 옥상에 와서 벤치에 앉아 서로 마주보고 얼굴을 숙였다. 병원 옥상은 정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환자들의 심란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지었나 보다. 잔디가 이곳저곳에 보기 좋게 위치하고 있으며, 가끔씩 돌로 만든 길이나 조그만 석탑 등등의 석재 구조물이 눈에 뜨인다. 나는 윤지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대신 그것들만 관람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왜?”
나는 (자존심은 좀 상하겠지만)하고 싶은 말을 했다.
“미안해, 내가 나빴어.”
“그래······, 알겠어.”
“보통 우리들 사이엔 이런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다. 나는 낯설음을 느꼈다. 뭔가 말이 어색하다.
“내가 진짜로 잘못했어. 내가 잠시 욱 해서 그만······.”
“됐어. 솔직히 나도 잘못이 있거든.”
그녀의 좀 침울한 이 말에 나는 놀랐다. 아니, 결과적으로 보면 때려서 유혈사태 일으킨 내가 잘못이잖아. 그런데, 왜? 나는 물었다.
“왜? 내가 너를 때려서 피나게 했으니까······. 내가 잘못이··· 있잖아.”
“그때엔 나도 조금 욱 해서 한 말인데, 나중에 병원에 실려 가는 중에 잘 생각해보니 너는 아버지에 대해서 큰 자부심이 있고, 그것을 고려하지 못한 내가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러고 보니 그 때 윤지가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할 때가 가장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정도 공감했으나 오히려 여를 갖추면서,
“아니야, 그 말에 화가 나 때린 내가 잘못이지, 게다가 상처도 생기고······.”
라고 했다.
“세 바늘만 꿰매서 다 나았어.”
“게다가 애초부터 내가 우산을 들고 가지 마라 해서 니가······.”
“이제 그런 나쁜 일들 다 잊자. 응?”
무언가 강하게 호소하는 것 같아서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
“우리 할아버지가 나한테 병문안 와서 말했는데,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적과 친구를 만들어 낸대. 그러니까 나는 그 나쁜 일을 모두 잊고 너를 친구로 생각해야 한 대서···”
어라, 이거 어젯 밤 우리 할아버지가 했던 말 아닌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네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응, 솔직히 말하면, 너네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전하라고 했다. 스스로 말한 거니까 믿어도 돼.”
아무래도 그녀가 실려가면서 했던 반성과, 그녀의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한테서)전한 말이 지금 그녀를 뭔가 성숙하고 조용하게 만든 것 같다. 나도 덩달아 그녀를 닮아간다.
“다친덴 아파?”
“아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는 오랜 시간 저 옆의 허공을 보며 서 있다. 어느 순간 내가 정신을 차려서 몰래 주위를 둘러보니, 윤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손은 왜 잡았어?”
“화해의 증표.”
“알겠다. 화해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고마워.”
그리고, 우리는 하늘에 맹세했다.
“우리, 이제부터 싸우지 않기로 하늘에 맹세하자.”
“응.”
그리고 또 한동안 정적이 흘러갔다. 정적이 흘러갈수록 우리들은 양 손을 꼭 잡았다. 그녀를 왠지 좋아하는 것 같았고, 그녀도 내가 좋아진 것 같아서 왠지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