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의 일대기와 그에 대한 고찰
어느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등에는 가방. 손에도 가방이 들려있는 그 소년의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그 소년은 길을 걸어간다, 당연한 듯이 그리고 당돌하게. 그리고 소년의 목적지인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고 엄마가 인사한다.
“왔니? 우리아들”
그 소년은
“다녀왔어 엄마”
라고 대답한다. 해맑게 웃으면서, 마치 태양을 넣은 것처럼 밝은 웃음이었다. 그 후 소년은 엄마와 함께 놀았다.
“오늘 학교에서 팔씨름 대회를 했는데 내가 1등 했다.”
“어머 그러니, 장하구나 우리아들”
그 후 소년의 아빠가 왔다.
“다녀왔어 여보”
“어서오세요 당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빠”
“하하하, 그래 다녀왔다”
그 후 가족이서 같이 식사를 하고
“당신 요리는 참 맛있어”
“당연한 걸 뭘 그래요?”
이야기를 하며
“오늘 학교에서.....”
“하하하 그러니 대단 하구나”
같이 목욕하고
“이얍, 받아라”
“물장난이냐 나도 질순 없지”
같이 잔다.
“나는 세상에서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
“어머 그렇니?”
“우리도 네가 제일 좋단다”
어느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등에는 가방. 손에도 가방. 그리고 교복을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중학생이다. 그 소년은 길을 걸어간다. 당연한 듯이. 그리고 껄렁껄렁거리며. 그리고 소년의 목적지인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고 엄마가 인사한다.
“왔니, 우리아들”
그 소년은
“어, 갔다 왔어”
라고 대답한다. 무신경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그 후 소년은 엄마와 함께 있었다.
“오늘 tv에서 재미있는거 안하네”
“그러니?”
“엄마나 봐, 나는 컴퓨터 할 꺼니까.”
그 후 소년의 아빠가 왔다.
“다녀왔어 여보”
“어서 오세요 당신”
“다녀오셨어요”
그 후 가족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이거 맛있군.”
“그런가요?”
“...”
tv를 보고
“...”
잔다.
어느 소년, 아니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등에는 가방. 손에도 가방, 그리고 교복을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다. 그 청년은 길을 걸어간다. 피곤한 듯 그리고 터벅거리며. 그리고 청년의 목적지인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고 엄마가 인사한다.
“왔니?”
“...네”
라고 대답한다. 피곤하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 후 소년은 방에 틀어 박혔다.
“...”
“...”
그 후 청년의 아빠가 왔다.
“다녀왔어.”
“다녀오셨어요?”
“...”
그 후 식사 때만 얼굴을 비치고 따로 행동을 한다. 그 후
“예야 공부 좀 해라”
“하고 있어요”
“지금 컴퓨터하고 있잖아”
“컴퓨터로 하는 거예요”
“아까부터 그 말뿐인데 정말하는 거냐?!”
“아씨 아빠랑 무슨 상관인데요!”
“뭐 이자식이!”
어느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복차림의 좀 젊은 그는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그 청년은 길을 걸어간다. 귀찮은 듯. 그리고 툴툴거리며. 그리고 청년은 목적지인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고
“다녀왔어”
“왔니?”
그리고 그 날의 가족 간의 대화는 끝났다. 청년의 아빠도 돌아와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청년은 독립해 결혼하고 자기아들(혹은 딸)과 이러한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지금은 성년인 그는 생각한다.
‘내가 왜 그때 그런 말을 엄마 아빠에게 했을까? 왜 말대꾸하고 왜 대들었지? 다 맟는 말인데. 그리고 왜 엄마나 아빠에게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지? 간단한 것인데 단지 그뿐인데.'
모든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일생을 보낼 거라 생각한다. 위의 소년의 글처럼 극단적이진 않아도 말이다.
그렇다면 왜 위의 글처럼 사람들의 삶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 내가 생각하기엔 부모와 자식의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부모님들 역시 그런 사랑을 준다. 그렇게 되므로서 그 사랑은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위의 소년처럼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사춘기나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렇다가 자식들이 애를 낳고 키우다 보면 자신의 부모님은 이렇게 키워줬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후회한다. 사죄와 감사를 할 대상이 이렇게 느낄 때 쯤이면 극단적으로 돌아가시거나 혹은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만약 적어도 감사나 사죄를 할 수 있다면 될 수 있으면 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