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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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신과 축구경기를 보러 왔다. 친선경기인데도 숙적 일본하고의 경기라 관중석은 붉은 옷을 입은 붉은 악마들로 꽉 차 있었다. 채신과 나도 BE THE REDS 라고 써 있는 그 옷을 입고 있다. 나는 축구를 보러 오는 것도 빨간 색 바탕에 흰 색으로 크게 BE THE REDS 라고 써 있는 촌스럽기 그지 없는 그 옷을 입는 것도 싫었지만 채신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래서 지금 그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키고 있는 세 가지가 아닌 다른 일은 웬만하면 다 남한테 양보하는 아주 착한 남자다.
축구 얘기를 잠깐 하겠다. 한 때 나는 축구를 아주 좋아했고 우리나라 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작년에 있었던 한 일 월드컵 이후로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우리나라 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싹 가셨다. 매스컴에 질려서였다. 매스컴은 우리나라가 승승장구 할 때마다 축구 응원을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애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구공 하나에 울고 웃었다. 어머니하고 재혼한 새 아버지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보다가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려 죽을 뻔했다. 매스컴은 또 그렇게 애국이라는 명분하에 사람들을 사소한 축구공 하나에 목숨을 걸게 하는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바보같은 월드컵을 보면서 버트란트 러셀은 정말 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버트란트 러셀은 애국이란 사소한 이유로 기꺼이 죽이고 죽는 일이라고 말했다.
축구에 관해 얘기하자면 현준이 녀석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나는 살아오면서 남자치고 축구에 관심 없는 인간은 그 녀석 밖에 보지 못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1997년 아시아 예선전이 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학교 분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분식당에는 TV가 있었는데 평소때는 별로 붐비지 않던 식당이 우리나라 팀의 경기가 있을 때는 항상 붐볐다. 특히 지금은 우리한테 명승부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도쿄대첩이 있던 날에는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때 보다 거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축구를 보러 와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축구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TV를 보며 축구가 빨리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다 잠시 짬을 내서 라면을 먹고 있는 현준이랑 남들이한테로 갔다. 현준은 라면을 다 먹고는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갈려고?”
남들이가 놀라서 물었다.
“응. 왜 가면 안 돼?”
“축구하잖아?”
“나 원래 축구 안 보잖아.”
“하지만 오늘은 일본하고 하는 건데.”
이번엔 내가 말했다. 나는 그 때만 해도 애국자였다. 그래서 일본과의 경기는 꼭 봐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은 쳐 부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일본 이기면 보너스 점수라도 주냐? 그리고 이기면 3점 비기면 1점 지면 0점인 건 다른 나라하고 다 똑같은데. 게다가 이기는 팀이 이길 경기를 뭐가 재밌다고 봐.?”
현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분식당을 나갔다. 나는 그 때 현준이 녀석이 어딜 가서 무얼 했는지 모른다. 어쩜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데 가서 혼자 축구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하지만 그 인간은 이전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랑 했던 경기들은 분명히 하나도 보지 않았다. 축구를 하고 있을 때 내가 그 인간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그것만은 확실히 안다.
공이 우리나라 선수의 손에 맞자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저 심판 편파판정 하는 거 아냐? 도대체 뭐가 반칙이라는 거야?”
채신이 화를 내며 말했다.
“핸들링이잖아?”
“그게 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채신이 업싸이드를 모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핸들링까지 모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뭐냐니까?”
“에이치 에이 앤 디 엘 아이 앤 지.”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딱히 핸들링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지 않았고 설사 그것을 말해준다 해도 채신은 그게 왜 반칙인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누가 스펠링을 물어 봤어? 난 영어선생이야. 영어는 너 보다 훨씬 잘 한다고?”
“찬스야.”
채신은 내 말에 운동장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나라 선수가 멋진 다이빙 헤딩 슛으로 일본의 골네트를 갈랐다. 붉은 악마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축구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채신도 좋아라고 함성을 질렀다. 그러고 보면 세상 참 웃긴다. 축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현준은 축구에 관심도 없고 축구의 기본적인 규칙도 모르는 채신은 축구에 열광한다. 나도 이젠 축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나한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축구는 제 3세계의 가난한 아이들이 고작 돈 몇 푼 받으며 하루종일 꿰메서 만든 공을 갖고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장을 발판삼아 세계 평화를 외치는 한심한 경기이다. 그래서 이젠 나도 현준이처럼 축구에 별 관심이 없다. 경기는 1:1로 비긴 채 끝이 났다. 선제골은 우리나라가 넣었지만 후반 5분을 못 넘기고 우리나라는 일본에 동점골을 허용했다. 붉은 악마들은 비긴 것을 좀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잘 했다는 얼굴이었는데 채신만은 일본 같은 야만 국가랑 비기다니 말도 안 된다며 분에 했다. 나도 일본을 싫어하긴 하지만 일본이 야만 국가라는 말에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우린 경기장을 나왔다. 채신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만 화 풀어. 진 것도 아니고 비긴 건데.”
나는 채신의 화를 풀어주려고 말했다.
“다른 나라하고 비긴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문제는 일본 같은 야만 국가랑 비겼다는 거라고.”
“일본이 왜 야만 국가야?”
“일본은 토익성적이 최하위인 나라야.”
나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바보같은 여자하고 정말 결혼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갑자기 우리 그만 여기서 헤어지자 우린 너무 안 맞아 라고 채신한테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창녀가 아닌 한 같이 잔 여자하고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순진한 남자라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학 때 사귀었던 운동권 여학생 하고 한 번 잤을 때도 나는 일을 끝마치고 너는 내가 지켜줄게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펩시콜라를 마시는 나한테 배신 당했다며 나의 뺨을 때리고 스스로 떠났다. 그건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싫다고 떠나는 사람을 하룻밤 같이 잤다고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일 바빠?”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그럼 우리 어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가자.”
“알았어. 내가 학원 수업 끝마치고 너희 학교로 갈게.”
“그래.”
우리는 분식집에 들어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저 바보같은 채신이가 내일 우리 어머니한테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