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사랑한 삼촌
내가 가장 존경한 사람은 삼촌이었다. 삼촌은 시끄러웠던 한국의 8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사람이지만 시끄러운 80년대와 삼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삼촌은 그 당시 거의 매일 있었던 시위에는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었고 사회, 정치, 경제, 문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삼촌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단 하나의 일은 행성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삼촌이 사랑한 것은 오직 별이었고 그래서 대학을 입학할 때 천문학과를 택한 삼촌은 사람들과 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하기 위해 우주여행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우주여행 동아리의 시작은 초라했다. 회원이라고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삼촌과 삼촌의 남자친구 두명으로 단 세명뿐이었다. 조직의 시작은 그렇게 형편없었지만 우주여행은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들도 늘어나고 나날이 발전해 갔다. 삼촌이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가 제대를 해 다시 학교에 복학했을 때는 우주여행 회원은 30명에 육박해 있었다. 하지만 우주여행은 삼촌이 모임을 창설했을 때보다 질적으론 오히려 퇴보해 있었다. 우주여행의 회원들은 삼촌과 삼촌의 친구처럼 별을 연구하려는 열정이 없었다. 게다가 30명이나 되는 회원들중에는 커플들도 많이 있어서 우주여행 모임이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지 연인들의 데이트를 위한 모임인지 헛갈리기만 했다. 모임에서 오고 가는 대화도 별에 대한 진지한 얘기보다는 연인들의 잡담과 농담이 반 이상이었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신입회원 여자와 기존의 회원인 남자 두명하고 삼각관계가 발생하기도 했다. 삼촌은 우주여행을 창설했을 때 우주여행이 그같은 모임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삼촌이 바란 것은 별을 사랑하고 별과 일생을 같이 하며 별에 대해 서로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회원이 늘어나면서 우주여행은 변질됐고, 삼촌은 변질된 우주여행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뼈아픈 진실을 깨달았다. 결국 삼촌은 심한 좌절감에 빠졌고,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삼촌이 남긴 유서에는 모든 조직은 연애 때문에 망한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단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 유서를 본 경찰은 ‘이게 무슨 말이야? 여자한테 채였다는 거야?’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삼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창 밖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오염된 도시의 하늘엔 더이상 별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내 눈에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