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타냥
우리 삼총사가 달타냥을 만난 것은 복학을 하고 만남을 갖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린 학교옆에 있는 시장에서 술을 마셨는데 남들이는 잔을 부딪히면서 앞으로 우리는 삼총사가 되는 거라고 했다.
“왜 하필 삼총사야?”
현준이가 따지듯이 물었다.
“우린 셋이잖아? 셋이면 남들이 다 삼총사라고 한다고.”
“그럼 달타냥도 있어야 겠군.”
현준이가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달타냥이 누구야?”
남들이가 궁금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달타냥이 누구냐니? 책 좀 읽어라. 어떻게 달타냥도 모를 수가 있냐?”
“남자들은 책을 안 읽어.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난 지극히 정상이야.”
현준은 더 이상 말은 안 했지만 남들이를 한심해 했고, 남들이는 그런 현준이를 한심해 했으며 나는 그런 둘을 한심해 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한심해 했기 때문에 우리 셋은 헤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그 때 우리앞에 나타난 사람이 달타냥이었다. 달타냥은 우리와 같은 학번인 94학번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달타냥은 우리와 같은 학번인 여자이기 때문에 군대를 갔다 온 우리가 복학을 했을 때는 학교를 졸업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군대를 갈 그 무렵 달타냥은 백혈병이라는 선고를 받았고, 우리가 복학했을 때에 그녀는 완치가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었다. 우리 삼총사와 달타냥은 그렇게 같은 시기에 복학을 했지만 처음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우리가 달타냥하고 친해진 건 현준이 시험기간에 달타냥한테 노트를 빌려달라고 하면서 부터였다. 달타냥의 노트는 그 때 이미 달타냥의 노트를 2번만 읽으면 A+는 따 논 당상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정평이 나 있었다.
“노트 좀 빌려줄 수 있니?”
“좋아. 대신 술 사 줘.”
“그래.”
현준은 쉽게 동의했다.
“아, 참. 너랑 단 둘이 마시는 건 싫으니까 니 친구 두 명도 데리고 와.”
현준은 달타냥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 나쁜 조건도 아니어서 그는 동의했다.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달타냥하고 처음으로 같이 자리를 했다. 달타냥은 남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용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와 남들이는 처음엔 달타냥한테 별 관심 없었고, 현준도 노트를 보여준 대가로(현준은 달타냥의 노트 때문에 생전 처음으로 A+는 평점을 받아봤으며 제적의 위기에서 벗어났다)술 한 번 사줄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우리 삼총사는 달타냥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많아졌고, 그렇게 모임이 잦아지면서 달타냥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와 남들이는 달타냥이 정말 멋진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멍청한 짓만 일삼아 하면서도 이 세상에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늘 소리치던 오만방자한 현준이마저 이 세상에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달타냥 뿐일 거라고 했다. 우리 삼총사는 그렇게 달타냥이 현명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서로 의견의 일치를 봤으므로 우린 달타냥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다. 넷이서 함께 술을 마시던 날 현준이가 말했다.
“우린 이제 넷이니까 앞으로는 삼총사가 아니라 사총사인 거야.”
“사총사는 안 좋아. 남들이 4라는 숫자는 좋지 않다고 하잖아. 내 생각엔 삼총사와 달타냥이 난 거 같아.”
남들이가 말했다.
“넌 달타냥이 누군지도 모르잖아?”
현준이가 따졌다.
“내가 달타냥이 누군지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니가 그랬잖아? 우리가 삼총사라면 달타냥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한텐 달타냥이 이제 나타난 거야.”
“달타냥이라? 괜찮은 별명이군.”
병을 이기고 돌아온 홍일점이 말했고 그렇게 해서 그 홍일점은 달타냥이 되었다. 그러나 현준은 어느 날 달타냥과 둘이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오더니 달타냥이 달타령이라는 노래를 기가막히게 부르더라면서 달타냥을 달타령이라고 불렀다.
“달타령이 뭐냐? 달타냥이라고.”
남들이가 말했다.
“난 괜찮아. 달타냥이냐 달타령이냐 한끝 차인데, 뭐. 그리고 별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증거라고.”
달타냥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사자가 달타령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으니까 너희는 나한테 달타냥이라고 부르라고 할 권리 없어.”
현준은 자신은 앞으로 달타냥을 달타령이라고 부를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며 말했다.
“도대체 굳이 달타령이라고 부르려는 이유가 뭐야? 달타냥이라는 말이 싫은 거야?”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달타냥이라는 말이 싫진 않아. 하지만 달타령이라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른다고. 달타냥보다는 달타령이 어울려.”
“그게 이유야?”
나는 어이없어 하며 물었다.
“그것 말고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
나는 그 때 남들이는 한심한 남들이 사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현준이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우리 넷은 그렇게 삼총사와 달타냥 아니 현준이 말로는 삼총사와 달타령이 되었다. 나중에 달타냥이 달타령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현준이 말대로 기가 막히게 잘 부르긴 했다.
“그만 가자.”
술이 다 떨어지고 안주도 바닥이 나자 남들이가 말했다. 나는 달타냥을 떠올리던 생각을 접었고 우린 술집을 나왔다. 셋 다 엄청 취해 있었다. 우린 가는 길이 같아서 지하철역까지는 함께 걸었는데 남들이는 걸어가면서 계속 나한테 남들은 다 운전을 하니 너도 운전을 배워야 한다고 지겹게 말했고 현준은 남들이가 남들이란 말을 할 때 마다 수첩에 숫자를 적는 대신 여든 여덟 번 여든 아홉 번 하고 큰 소리로 외쳤고, 나는 남들이한테 죽어도 운전은 안 배운다고 소리쳤다. 지하철역에 와서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나와 현준이는 남들이랑 헤어졌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정말 한심한 술자리였다. 그 한심한 술자리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말이라곤 달타냥이 돌아온다는 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