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제와 여동생의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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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에 지하철이 멈추자 나와 현준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여동생인 정연이 와 있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동생은 집 앞 계단에 앉아 있었는데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오빠는 문도 안 열어놓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전화도 받지 않고. 내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나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했다. 세상에 아무도 없는 집에 문을 열어놓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물론 우리집에 훔쳐갈 만한 물건은 아무 것도 없지만 암만 그렇더라도 그건 그야말로 도둑을 환영하는 셈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암만 생각해도 동생은 정말 바보다. 하지만 동생이 아무리 바보래도 내가 오빠인 이상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 동생은 정말 나 같은 오빠를 둔 것을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들어가자.”
나와 현준, 정연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 인간은 왜 들어와?”
정연은 현준이를 보며 따졌다.
“왜 들어오긴? 나랑 같이 살잖아?”
“오빠는 저 인간하고 사는 게 좋아?”
“뭐.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별 수 없잖아? 돈이 없으니. 나 혼자 집세를 다 내는 건 무리라고.”
“남자가 돈도 하나도 제대로 못 벌고. 그러니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하고 같이 살지.”
“쓰레기는 요즘 재활용되요.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엔 인간쓰레기라는 말은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요. 뭘로 고치는게 나을까요?”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 없는 현준은 정말 진지한 자세로 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정연도 어이가 없는 얼굴로 현준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긴 당신 같은 머리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리 없죠. 나처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도 아직 마땅한 말을 떠올리지 못했는데. 난 아무래도 들어가서 좀 더 생각을 해야겠어요. 좋은 말이 떠오르면 그 때 알려주죠.”
현준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인간은 쓰레기야. 정말 인간쓰레기라고!”
정연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나는 정연을 겨우 진정시킨 후에 정연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또 매제하고 싸운 거니?”
내가 물었다. 정연이 나를 찾아오는 때라고는 매제와 싸웠을 때 뿐이었다.
“오빠, 오빠가 가서 그 인간 좀 단단히 혼내 줘. 세상에 날 이 꼴로 만들어 놨다고.”
정연은 썬글라스를 벗었다. 오른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게 완전 밤탱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내 동생이 햄버거를 제외하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바보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런 동생하고 같이 사는 게 화가 날 거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생을 때릴 권리는 없다. 게다가 나는 매제한테 결혼하기 전에 분명히 이 결혼을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충고했었다. 그 땐 내 충고는 듣지도 않더니만...
“가자.”
나는 매제를 단단히 혼내주려고 마음을 먹고 정연이와 함께 집을 나갔다.
정연이와 같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상황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나는 매제가 일방적으로 내 동생을 때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매제는 네모낳게 자른 붕대를 이마에 붙이고 있었다. 역시 유전의 힘은 대단하다. 아버지한테 비행접시를 날리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정연은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맞짱을 뜬 모양이었다. 갑자기 매제가 불쌍해졌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나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애를 이 꼴로 만들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그래, 이 꼴로 만들려고 그렇게 쫒아 다니면서 결혼하자고 졸랐어?”
“오죽하면 제가 그랬겠어요? 제 꼴을 보세요? 세상에 남편한테 접시를 날리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니가 먼저 접시를 날렸어?”
나는 정연이를 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먼저 날 때렸어.”
“니가 먼저 접시를 날렸잖아?”
“니가 먼저 날 때렸잖아?”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둘이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를 알아내는 게 순서다.
“도대체 왜 싸운 거야?”
“우린 조용필 콘서트에 갔다 왔어요.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제가 조용필 흉내를 냈거든요. 근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도 안 똑같다고 하잖아요?”
“뭘 알지도 못한다는 거야? 내가 조용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하나도 안 똑같으니까 안 똑같다고 한 거라고.”
“뭐가 하나도 안 똑같다는 거야? 조용필 모창대회에도 나가서 예선까지 통과했던 실력이라고.”
“예선은 누구나 다 통과해. 나라도 예선은 통과했겠다.”
“넌 무슨 예선 통과하는게 누워서 떡먹기인줄 알아?”
“잠깐. 잠깐.”
난 둘을 말렸다. 조용필 흉내를 낸 게 똑같다느니 똑같지 않다느니 가지고 싸우다니 얼마나 둘이 같이 살기 싫으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싸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로 했다.
“둘이 그냥 이혼하지 그래?”
“예?”
매제는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오빠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게 도움도 되지 않는 니 오빠는 왜 데리고 와?”
“내 생각이 짧았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동생과 매제를 정신이 번쩍 들도록 패주고 싶었지만 나는 폭력을 끔찍이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다.
“그래. 너희 둘이 알아서 해라. 조용필 흉내가 똑같다느니 똑같지 않다느니 가지고 싸우던 말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던 말던. 접시를 날리던 말던 난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너희 둘이 알아서 하라고.”
나는 동생의 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도대체 가수 흉내를 낸 게 똑같다느니 똑같지 않다느니 가지고 싸우는 저 바보들의 심리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던 동생과 매제가 바보라는 사실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하긴 나 같이 생각있는 사람이 저 바보들의 심리를 알아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