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간
따분한 월요일이 다시 시작됐다. 2교시가 내가 담임을 맡은 2학년 4반 수학시간이어서 나는 정석책 한 권을 들고 2학년 4반 교실로 걸어갔다. 수학시간에 여학생들은 A, B, C, D 네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A그룹은 극소수로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다. 이 그룹의 아이들은 이미 내가 가르치고 있는 정석을 마스터 했기 때문에 나의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어 좀 더 어려운 문제가 들어있는 문제집을 꺼내 푼다. B그룹의 아이들은 대다수의 아이들로 조용히 자는 아이들이다. C그룹의 아이들은 A그룹과 B그룹의 아이를 합해 평균을 냈을 때 나오는 수의 아이들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과목 공부를 하는 아이들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이다. 마지막으로 C그룹의 아이들의 수보다 조금 적은 수인 D그룹의 아이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아이들로 주위에 있는 친구들과 떠드는 아이들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수학시간에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학생들은 나를 보지 않고, 나는 한 시간 내내 별로 하는 말도 없이 정석책에 나와 있는 문제의 풀이과정을 칠판에 적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학교에 있던 없던 학생들의 수학성적은 사실 달라질게 없는데 나는 수학선생이라는 이유로 보충수업때는 보충수업비를 받고, 때론 학부모들한테 촌지도 받는다.(촌지를 받았다는 것은 아직 걸린 적이 없다.) 그럴때마다 나는 역시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수학선생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내가 교탁으로 가서 서자 반장이 일어났다. 반장은 A그룹에 속하는 학생이다.
“차렷.”
딴 짓하던 아이들도, 자고 있던 아이들도 반장말에 차렷을 했다. 현준이와 사귀고 있는 은혜는 꽤 깊이 잠들었던 듯 머리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은혜는 B그룹의 학생이다.
“경례.”
아이들이 인사를 했고, 나도 답례를 한 후 교실을 나왔다.
교무실로 들어온 나는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국어선생이 약을 먹고 물을 마셨다. 하루에 예닐곱 시간을 수업 때문에 줄창 떠드는 국어선생은 얼마전 목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목은 좀 괜찮으세요?”
내가 걱정을 하며 물었다.
“허선생님도...”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가라앉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목조심 하세요. 아주 죽겠어요.”
그의 충고는 고마웠지만 사실 나는 목을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앞에서도 몇 번 말했듯이 나는 국어선생이 아니라 수학선생이다. 물론 나도 국어선생처럼 하루에 예닐곱 시간을 수업한다. 그러나 나는 별로 하는 말도 없이 수업시간 내내 칠판에 문제풀이 과정을 적는 게 전부다. 그러니 목을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수학선생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선생중엔 그래도 돈 많이 받고 몸을 다칠 이유도 전혀 없다. 국어선생처럼 하루에 예닐곱 시간을 줄창 떠들어대면 목이 맛이 갈 수 있지만 나처럼 하루에 예닐곱 시간을 줄창 칠판에 글을 쓴다고 해서 팔이 부러질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부러지는 건 기껏해야 분필뿐이다. 만세 삼창이라도 외치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채신씨랑 결혼하기로 했다며?”
남들이였다.
“그래.”
나는 신통치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왜 그래? 남들이 다 하는 결혼하면서.”
“비때문이야.”
“엉?”
“영어때문이기도 하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따 현준이도 함께 셋이서 술이나 하자. 저번에 만났던 곳 있잖아? 거기서 보자고. 니 결혼을 축하해야지.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그래.”
나는 현준이가 지은 그의 별명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3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3교시는 3학년 3반 수업이었다. 나는 정석책을 들고 3학년 3반으로 걸어갔다. 3학년 3반의 아이들도 2학년 4반의 아이들과 똑같이 A, B, C, D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내 수업을 듣는 아이는 역시 한 명도 없다. 나는 참 편한 선생이다.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면서 그 일로 돈 받아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