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카페
남자는 택시운전수다. 20년을 훌쩍 넘는 경력의 소유자다. 오늘도 남자는 번화가 주변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버스정류장 주변에 차를 세운다. 주변을 기웃거리던 여자가 택시에 올라탄다. 급하다는 여자의 말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주행한다.
“돈이 자꾸 세는구만”
설마 잔돈이 모자라는 걸 눈치 안거야 뭐야, 여자는 지갑을 뒤적거린다. 여자는 돈이 모자라면 깎을 요량으로 택시에 탔다. 남자는 백미러로 여자의 눈치를 보다가 모은 돈이 없다며 운을 띄운다. 여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냐며 되받아친다. 다 와가네요, 남자는 속도를 높인다. 여자는 남자의 미간에 찍힌 점을 유심히 바라본다. 볼 줄 아는 사람인가. 남자는 여자의 생년월일을 묻는다. 거리낌 없이 여자가 대답한다.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손가락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 마디를 엄지손가락으로 짚는 시늉을 한다.
남자는 여자의 목적지에 차를 세운다. 아가씨는 조심해야 할 게 많은 사람이에요, 남자가 한마디 던진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흠 만원만 주소, 천운이 딱해서 봐 드리뢰다”남자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말한다.
뭐야 점심값밖에 없는데 여자는 머뭇거리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고깃고깃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이쪽으로 공부 하셨나 봐요? 여자는 점심값 걱정을 하느라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남자는 한 쪽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차 앞 서랍 문을 열어 공책을 꺼낸다. 여자는 못이기는 척 돈을 내 놓는다. 볼펜으로 여자의 생년월일과 알 수 없는 낙서를 그린다. 뭐야 사기꾼인가 또 당한건가? 여자는 공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떤가요, 어때요, 여자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있다.
여자가 성공하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한다. 주변에 남자가 많아 되는 일이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나한테 남자가 어디 있어, 여자는 남자에게 따져 물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잠자고 남자의 말만 듣는다. 돈을 모으려면 사치를 줄여야 한다, 더 이상 얼굴은 손대지 마라 남자는 아빠가 딸에게 잔소리하듯 충고한다. 여자는 물어뜯은 손톱을 퉤 하고 뱉는다. 얇게 짓이겨진 손톱이 시트에 묻는다. 백미러로 여자를 보던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난 이제 예약 손님이 있어 가봐야 할 것 같네, 남자는 차 시동을 켠다. 뭐야 또 당했어, 차라리 카드 점을 보는 게 더 낫겠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서 내린다. 여자의 손에는 남자가 쥐어 준 노란 명함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궁금한거 있으면 연락하소 아가씨”
남자는 창문을 내리고 소리친다. 재수 없어, 여자는 중얼거리며 남자에게 보란 듯이 명함을 길바닥에 휙 던진다.
여자가 내린 뒤 남자는 여자의 생년월일이 적힌 장을 편다. 향수, 이혼녀, 돈 남자는 여자가 말했던 것들을 정리해 적는다. 그리고 다시 앞장으로 넘어와 며칠 전 적어두었던 노인의 메모를 읽는다. 음 70대 노인이라,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 주행한다. 남자는 예약 손님을 태우러 간다. 차도 옆에 덩그러니 서있는 노인이 택시에 오른다.
“할매 요즘도 남편이 그 모양이야?”
남자는 노인에게 먼저 말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