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로 5회째를 맞는 ‘김사장문학상’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매년 참가작품만 1000여 편에 이르는 명실 공히 대표적인 대한민국 신예작가들의 등단문이 되었다. 7년 전 타계한 전(前)숙·사·모 초대회장 김사장의 유지를 받들어 재정된 ‘김사장문학상’은 아마추어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총상금 오천만원의 국내 최대 규모 문학상으로, 참신하고 패기 있는 작가들을 위한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숙박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일조해왔다. 2009년 치열한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김선생, 박선생, 최교수, 한작가 등 네 명의 심사위원이 생각한 오늘 우리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섯 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최선다의 <문이 닫히고>는 이별의 벼랑에 선 한 젊은 남자의 고백을 서간문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기 마련인 성과 사랑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던 여자는 남자에게 ‘너랑은 모텔 간 기억밖에 없어’ 라며 이별을 고한다. 남자는 ‘상처를 핥듯이 고백하는 마음’ 으로 여자에게 보낼 긴 편지를 쓴다. 그 속에서 그는 ‘세상에서 늘 도망치듯 살아가는 내가 안전할 수 있던 곳은 등 뒤로 철컥 소리를 내며 닫히던 너와 나의 작은 방뿐이었다’ 고 회상하며 사랑이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눈을 감아버리듯 모텔로 들어와 세상을 지워버리고 안식의 시간을 사고 싶었던 남자. 모텔이라는 공간에 대한 참신한 의미부여와 솔직한 내면 고백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박판다의 <음료수 두개와 우리>는 일상적인 물건에서부터 시작해 행복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텔 냉장고에 비치되어 있는 음료수를 즐겨 마시던 남자는 우연히 그 것이 ‘고개를 저절로 끄떡거릴 만큼정교한 짝퉁’ 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부터 남자는 편집증적으로 모든 물건들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집착하게 되는데 확인할 수 있는 건 ‘불확신에 대한 확신’ 뿐이다. 음료수를 매개로 촉발된 그의 불안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믿을 수 없는 행복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러나 그는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진 현실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품안에서 잠든 그녀의 따듯한 체온뿐’ 이라 고백한다. 절실하게 사랑을 나누며 숨결로 느끼는 소통만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은 공산품 하나도 그 유래가 불분명할 만큼 복잡하고 헝클어진 현대사회를 고발하는 작가의 깊은 사유와 다소 부담스러운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하는 유머감각이 빛나는 작품이다.
김버진의 <위험한 하루>는 사실 선정에 있어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모텔에서 자살을 기도하려다 퇴실시간을 알리는 전화에 추가로 지불할 돈이 없어 허무하게 실패하고 마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본 문학상의 취지와 맞지 않을뿐더러 자살을 준비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어 자칫하면 모방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재기되었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마치 이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마음속에서 무언가 사라져 가는 것만 같은 기분’에 젖어드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갈등의 해소를 암시한다는 것, 비록 자살시도라는 소재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끝까지 머뭇대는 인물들을 통해 밝고 우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선정되게 되었다. 문학이라는 것은 한 편에 서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좌절과 희망, 삶과 죽음의 대립쌍 모두를 끌어안을 때에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조남근의 <흔적은 사진이다>는 실제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작가가 삶의 궤적을 이루고 있는 순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욕조에 얼룩처럼 붙어있는 머리카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휴지조각, 쓰레기통에 있는 콘돔의 개수’와 같이 실재하는 흔적들을 조각 삼아 홀로 빈 방에서 떠난 이를 떠올려보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삶은 완벽히 형상화된다. 사람들의 자리에 남는 것은 흔적이고, 설사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다할지라도 우리는 지나온 순간의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태도는 그의 깊은 연륜을 짐작케 한다.
마지막으로 기발하고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심사정의 <엄마, 사랑해요> 는 삶의 본질적인 차원에 해당하는 ‘성’에 대해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홀로 된 어머니 몰래 남자친구와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로비에서 우연히 어머니와 그녀의 애인을 마주치게 된다는 다소 진부한 소재는 뛰어난 입심을 통해 흥미있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독특한 작가의 감수성은 냉정하리만큼 정확한 논리전개와 더불어 사회 전반적 인식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가족과 개인이라는 구조를 향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은 분명 오늘 우리 문학을 살찌우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심사위원단 : 김선생, 박선생, 최교수, 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