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하게 타들어가는 담배연기 너머로 스프링클러가 만들어 내는 무지개가 보였다.
30분전, 나는 그녀의 손에 끌려 아무도 없는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사실 나는 별로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몸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다 싶을 정도로. 서 있기조차 비좁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기묘한 포즈로 오르가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이전에 이토록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내 쪽에서 너무 센티멘털하게 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무슨 일이든 꼭 이유가 있어야 하고, 과정보다는 본질이 중요했던 나의 스무 살은 갔다. 해보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이유로 들어 거절한다는 것은 더욱 웃기지 않나. 나는 이제 안다. 십년 후의 나의 모습을 경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일인지를. 지난 몇 년을 통째로 고민만 하며 흘려보낸 뒤에야 삶에는 어제도 내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갈 뿐이다. 내 가는 길 끝에 있을 허무의 절벽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을 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 번 해보는 것이다. 헐떡거리고, 땀을 내고, 오늘이 끝인 것처럼 그렇게.
그래서일까.
나는 엉덩이에 계속 살짝 스치는 화장지 걸이가 못 견디게 차가웠다.
공중 화장실에서 숨을 죽여 가며 섹스를 하고 나서 공원 잔디밭 옆 계단에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며 바라보는 무지개는 과연 로맨틱한 편일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꽉 차오른 태양과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듯했던 섹스, 그리고 내 발 끝으로 내려앉은 무지개는 분명 아름다운 단어들의 나열임이 분명한데도. 그러나 나는 또한 이 시간을 사랑함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벌써 머릿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묘사하기 위한 타자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내게 의미 있는 것은 오직 한 장의 낙서, 못된 글 한 구절뿐임을 잘 알고 있는 내게 이 하루는 평생 안고 가야 할 굶주림을 잊게 해 줄 술 한 잔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덧없는 흔적만을 남길 뿐 돌아갈 곳이란 없는 것이다.
“완벽해.”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내가?”
그녀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살짝 내려놓으며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묻는다.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응, 네가.”
그러나
사실은
오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