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그만두겠습니다.”
“뭐라고?”
“학교 그만 둔다구요.”
흐음, 그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갑자기 왜? 지금까지 잘 다녔잖아.”
“그냥 지겨워서요.”
“…그게 다니? 뭐 문제 있는 건 아니구? 힘든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얘기해도 괜찮아.”
의례적인 말투가 아닌데도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아뇨, 그런 거 없어요.”
빤히 쳐다보는 눈빛.
“알았어, 일단 교실로 가 있어.”
말이 끝나자마자 종이뭉치를 넘기며 시선을 돌린다. 문득, 그 외면에 모든 게 끝이 났다 생각된다. 그렇게 다니기 싫었던 학교인데, 서류 하나면 자퇴쯤은 순식간인데.
수업종이 울린 지는 오래였고,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빈 복도는 외로워 보인다. 아니, 아니다. 난 외롭지 않아. 여기 이곳은, 학교는, 내가 버려진 게 아니라 내가 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외롭지 않아.
“너! 강선님, 왜 거기 서 있어?”
문 틈 사이의 국어담당 은선아 선생님.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선생님.
내가 빙긋이 웃자 선생님도 함께 웃는다.
피식 웃는 선생님의 웃음이 찌릿히 전해져 온다.
※
“병원에 가볼까?”
“아직도 헛구역질 나오고 그래?”
책 보던 손을 내려놓는 손길이 다소 화난 몸짓이다.
“응. 그리고 머리도 아프고. 몸살인가.”“보통 몸살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병원 가봐야 겠지?”
“그래, 내가 몇 일 전부터 가자니깐 안 듣더니. 내일 꼭 같이 가자”
이 남자, 눈빛에 걱정이 서려있다.
“그리고 장모님 이번 주 목요일이 생신이시지?”
미처 몰랐던 질문에 얼굴이 빨개져 오는 게 느껴진다.
“까먹고 있었다!”
“아우 참, 어떻게 장모님 생일을 까먹어! 내일 병원 갔다 와서 같이 선물 사자.”
“선물? 아우, 우리 신랑 이뻐 죽겠어, 정말!”
“됬어요, 아프지나 마세요. 맞아, 오늘 야자감독하고 왔으면 힘들겠구나, 불 끈다?”
불을 끄러가는 뒷모습이, 그 뒷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뒷모습에 익숙한 풍경이 일으켜져 온다. 그것은 아빠였고, 난 금새나마 후회를 한다. 아빠의 뒷모습과 남편의 뒷모습은 많이 다르다. 아니,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남편의 어깨는 곧고 바랐지만, 아빠의 뒷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금새 라도 무너질 듯 쳐진 것이 아빠의 어깨였다. 그 와중에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여전히 둘다 형용하지 못할 묘한 기분을 건내 준다는 것이다. 언제나 상처만 준 아빠였지만, 그런 아빠 였지만 역시 아빠는 아빠인걸까.
“안 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그냥… 이런저런 생각.”
“그만 자! 선생님이 학교 늦음 안 되지.”
“…으응.”
“봐봐~ 약만 먹으면 된대잖아.”
“그 대신 약 꼬박꼬박 챙겨 먹어 야돼!”
“알았어요!”
“장모님 뭐 좋아 하시는 스타일 없어?”
“음…”
“장인어른 없으셔서 많이 외로우실 거야. 우리 한 삼사일 묵고 오까?”
눈이 반달이 된 채 반갑게 묻는 기현이다.
“자기 불편하잖아?”
“당신 엄마면 내 엄마기도 하네요, 뭐.”
순간 눈물이 핑 도는 내 눈을 보곤 괜히 애꿎은 옷들만 뒤적뒤적.
“이건 어떤가? 좀 그런가?”
“……”
“울지마, 뭐 울 일이야?”
“…고마워.”
“뭐어가?”
“우리 엄마 신경 많이 써줘서.”
“……”
둘은 어느새 손을 잡고 옷을 고른다. 살포시 놓은 듯한 기현의 손이였지만 그 두 손 사이엔 어느 노부부의 연륜이 보인다.
※
봄볕이 따사로운 그날, 선님은 주위를 열심히 둘러본다. 이 버릇이 왜 생겼냐 물으신다면, 엃히고 섥힌 많은 사연에 선님은 눈살부터 찌뿌릴 것이다.
그때, 선님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선생님?”
“어어? 강선님!”
“오랫만 이예요 선생님!”“음, 선님이. 진짜 반갑다. 요즘은 뭐해?”
“그냥 저냥 지내죠, 뭐.”
선님과 선아의 만남 이였다. 선아는 선아와의 만남을 정말 예기치 못했다. 학교에서 나올 적에 선생님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이라는 생각 때문에 만난 것이 더욱 반갑고 의아했다. 여느 선생님들처럼 딱딱 하지않고 오히려 자기가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선생님을 지긋히 바라보는 선님이다. 선아는 그새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잘랐고 그에 맞는 선아의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얼굴과 성숙한 목소리는 매치가 안 된다. 하지만 선님은 항상 선아의 목소리와 얼굴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 얼굴 뚫을 작정이야?”그렇게 선아와 선님의 눈이 서로에게 집중 될 때, 큰 고주파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강선님이! 왜 그러고 있어? 누구야?”
노랑머리에 짝 달라붙는 바지에 큰 박스티를 입은 가벼운 말투의 수라다. 그녀의 모습에서 선님은 항상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한다. 젊은 선아의 언니정도라 생각하는 수라다. 수라의 목소리는 굉장히 크고 높았다. 덕분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셋에게 집중이 된다.
“왜 이제야 와?”“미안! 헤~ 어쩌다 보니깐.”
“맨날 늦어, 넌!”“에이~ 화 푸셔!”
“아, 그보다 옆에 우리 학교 선생님이야.”
“안녕하세요?”
선아가 선뜻 먼저 말을 건낸다.
“아, 너무 예쁘고 젊으셔서 언니뻘 정도 인줄로만 알았는데!”
역시 또 나오나 싶었던 수라의 기분 좋은 아부.
“아, 정말요? 제가 그렇게 예뻐요?”
한쪽 볼을 손으로 감싸는 선아의 몸짓에 수라는 재밌 다는 듯 크게 웃는다.
“선생님, 왜 수라한테 존댓말 써요?”
“앗. 나도 모르게”
그러고 보니! 하는 표정의 수라는 까르르 웃어대고 그 웃음에 선님과 선아 또한 웃음이 난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멀리서 차를 빼오던 기현은 세 여자의 큰 웃음소리에 의아함을 나타낸다.
“여보~ 내 학교 제자! 이쁘지?”
“응, 그렇네. 제자 만나서 그렇게 웃은 거야?”
기현의 따뜻한 말투에 선님은 마음이 편해진다. 선아의 남자는 꼭 저런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웃는 얼굴이 예쁜사람, 그리고 몸짓, 말투. 수라는 옆에서 부럽다는 듯 쳐다본다. 수라의 눈빛은 선님의 눈빛보다 더욱 예사롭지 않다. 수라의 눈을 바라보던 선님은 어느새 슬픔을 느낀다. 선님은 자신 또한 같이 슬퍼지고 고개를 떨군다.
“선님아, 나 이만 갈게. 수라씨도 잘 가요.”
빙그레 웃는 선아는 선님과 수라에게 큰 손동작을 보이며 차를 탄다. 보면 볼수록 행복해지는 그들 이였다.
선아의 빈자리에 한참 말이 없던 수라와 선님은 도통 정신이 없는 상태다.
“아, 맞아! 수라야, 할 말 있댔지?”
“아…으응.”
높은 목소리가 한층 낮아짐에 선님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뭔데 그래?”
“…별거는 아니구.”
“왜 이렇게 끌어? 로또라도 당첨됬냐!”
“울 엄마 돌아가셨다.”
뭐어?” 돌아가셨다. 그 한 문장에 선님의 가슴이 타들어갈 듯 뛴다. 간단한 문장이 아니였다. 선님의 얼굴에 자책의 낯빛이 비친다. 그녀의 얼굴에서 왜 슬픔을 찾지 못했을까. 진작에 왜 몰랐을까. 왜 알아채주지 못했을까.
“근데 너 왜 이러고 있어.”침착한 말투지만 중간 중간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내가 할수 있는 게 없어.”
“장례식장에 자리 지켜 드려야지.”
“나 말고도 있을 사람 많으니깐.”
그 말에 선님은 수라의 눈을 쳐다 볼수 가 없다. 선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마음에선 또 하나의 생채기가 생긴다.
“울 것 없어. 발작도 고통도 없이 좋게 갔으니까.”
“독한 년.”
“이제야 알았니. 임수라 독한 거 세상이 다 안다.”
“아니야, 독하지 못한 년! 엄마 옆은 지켜 줘야 될것 아냐!”
선님 말대로 수라는 독하지 못했다. 엄마의 자식들에게 수라는 분명 질투의 대상 이였으리라.
수라는, 철없는 19살 미혼모에게서 버려진 고아였다.
※
“봉사활동 하러 왔어요!”
“어머, 수연씨 너무 오랜만에 봐요!”“네, 그동안 많이 바빴거든요.”
“그으래요? 맨날 가시던 데로 가시면 되요.”
“네!”
수연은 고아원으로 일주일에 한번, 주일날 봉사활동을 왔다. 젊은 나이의 그녀는 이미 애가 둘이나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쳐다보면, 가슴 속에 꽃 한 송이가 피듯, 가슴속은 금방 분홍빛 물이 들어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보면서 고아들을 돌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 고아원에 오게 된 첫 계기였다. 여기 아이들을 보며 세상을 배우는 수연 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 에게 만큼은 이러지 않 겠다 다짐케 하는 곳 이기도 했다.
“저어기.”
“예?”
“애기, 애기 보러 오셨어요?”애기를 보러 왔냐는 말에 선뜻 맞다고 하는 수연이다.
“제 애기, 제 애기 좀 맡아 주세요.”
“……”
“정말. 언니, 정말. 낯가림도 않 심하구, 또, 잘 안 보채요.”
“음, 그러니까 그게.”
“정말, 정말 부탁드려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려요. 제 애기, 부모 밑에서…”
그 여자의 눈빛에선 엄마의 눈빛이 느껴진다. ‘엄마의 눈빛.’
“제가 아이를 입양하려고 온게 아닌데…”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에서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을 느낀다. 어려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수연은 죄책감에서 부끄러움에서 복합적인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낯설다.
‘내가 왜 이러지.’
자신도 모르게 슬퍼지고 안타까워 지는 것 이다. 엄마들의 마음이란 모두 이런 것일까.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동정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
수연은 눈물이 많은 그녀의 아기를 쳐다본다.
‘순하구나.’ 엄마의 눈물이 쉴새없이 목으로 떨어지는데도 수연과 눈이 마주치자 방긋 방긋 웃는 아이였다.
“아이 이름이 뭐예요?”
“아…예에?”
한참 울던 여자는 수연의 갑작스런 물음에 다급히 대답한다.
“수라, 수라요!”
“수라…….”
“……”
“애기 받아요.” 하며 애기를 건네는 손길을 재화는 쉽게 받지 못한다. 행여나 거절의 의미일까 싶어 망설임이 가득하다.
“한번 여기 쪽 사람들과 얘기해볼게요. 이제 그만 울어요.”
“정말, 정말로 감사드려요!”
수연은 살짝 냉정한 말투였다. 하지만 재화에겐 그런 모습 따윈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아이의 생명의 은인의 얼굴만 보일 뿐이다.
긴 머리가 그녀의 머리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처럼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여자는 긴장했던 것이다. 재화의 얼굴엔 몇 분전만 해도 없던 화색이 돈다. 그리고 그런 재화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연은 낯설고 신기하다. 무엇보다 재화의 모습은 많이 예뻤고 사랑스러웠고 곱게 자랐을 법했으며 무엇보다 젊었다. 수연은 자신이 일찍 한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재화가 낯설고 신기하다.
‘이런 나이의 엄마… 힘든 일인데. 어쩌자고 저 여자는 이 애를 낳았을까. 고작 이렇게밖에 못할 거면서. 난 못해. 내 아이를 버리는 짓. 아무리 힘들어도 애는 낳아서 키울 것인데. 이여잔…’
본래 나쁘지 못한 수연이 아까 한마디 모나게 굴었던 이유가 그것 이였다. 엄마의 모정을 가지고선 할 수 없는 일을 재화가 하고 있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말이 있다. 친구에게 등을 긁어달라 하면 친구는 긁다가도 언제까지 긁어? 한다지만, 부모는 그만하라 할때 까지 긁어 준다고. 수연은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재화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수연씨!”
안내원 지수였다.
“아, 예!”
“왜 다시 여기로 오셨어요? 맨날 가셨던 곳으로 가면 되는데.”
“음, 저기 이 애기 말예요.”
“수라요?”“네, 수라.”
“수라는 왜요?”
“수라, 입양 가능한가요?”
“입양이요?”
놀란 토끼눈이 된 지수였다. 지수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발언에 할말을 잃는다. 그녀에게 입양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말 생각지 못한 발언 이였기 때문이다.
“수연씨, 입양하시게요?”
“그건 아직 확정 되지 않았지만은.”
“입양은 가능하죠. 원래 입양을 목적으로 온 아이니까.”
“…그래요.”
“수연씨, 남편 분은 허락하신 거예요?”
“아, 남편이랑은 삼년 전에 헤어졌어요.”
다소 어려운 말을 쉽게 건내는 수연의 태도에 흠칫대는 지수다.
“아…. 그런데……”
“예?”
망설임이 가득한 눈빛으로 수연을 쳐다보는 지수다. 살짝 재화를 흘겨보는 눈빛이 비켜달라는 뜻이 가득하다.
“…전 화장실 갔다 올게요.” 재화도 그 눈빛에 자리를 피한다.
“왜요?”
“그게……”
“……?”“저 아이요, 수라 말예요.”“예.”
유난히도 시간을 끄는 지수다.
“저 19살 재화씨, 성폭행을 당했담 말예요.”
“예?”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 말에 충격이 몸을 휩사른다. 수연은 감추지 못할 죄책감에 고개를 숙인다. 아까 그녀를 실컷 욕하던 수연 이였다. 왜, 왜. 왜 자신의 아기를 그런 식으로 남에게 맡기는지.
그런 남자의 아이를 재화는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쳐다보고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남자의 아이를 열혈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이윽고 수연은 입양을 결심한다.
※
사람은 살면서 다른 사람에 의해 많은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이 행복과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케 한다.
태어나자마자 살인마가 되거나 소매치기가 되거나 정신이상자가 될순 없다. 사람을 좋아한다면 살인을 할수 없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사람이 싫어져 경험으로써 살인마가 되는 경우가 있고, 강자에 의해 약자가 되어 소매치기를 한다든가, 정신이상자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사람됨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남이 만든다는 얘기다.
“…선님아.”
“으응?”
“넌 우리 엄마가 어디로 갔을 것 같으니?”
“……”
“외롭진 않을까. 혼자인거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아냐. 아니야.”“춥진 않을까.”
“……”
“어떡해…우리엄마.”
“……”
“보고 싶어서 어떡해.”
수라는 날개 다친 새마냥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흐느끼는 수라의 얼굴엔 재화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너무나 꽃다웠던 재화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선님은 수라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어이없고, 화가 난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변찮게 해줄 말도 없는 것이 너무 슬프다. 수라에게 더 이상 울지 말란 말은 건내지 않는다. 울지 말란 말은 수라를 엄마잃은 새끼처럼 더 여리게 했다.
선님은 수라의 엄마를 회상한다. 수라의 엄마 수연은 친엄마 못지 않은 사랑을 수라에게 배풀었다. 언젠가는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사랑을 주었다. 원래 있던 자식에겐 많은 상처가 되듯 성우, 진실한텐 그러했다. 수라는 수연에게서 받은 사랑을 성우와 진실이가 주는 상처로 모두 소비해 버린다. 미운 오리새끼 수라를 선님은 지켜봐왔고 항상 옆에서 외톨이 수라를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수라는 그들에게 반항자체를 하지 않았다.
‘고아주제에’ ‘엄마가 널 거둔건 단지 불쌍해서야.’ ‘너한테 가족이란 없어.’ ‘네 엄마도 널 버렸으니까.’ 등의 말 이였다. 더욱 슬픈 것은, 수라는 그 말에 적응해 나중은 그들을 향해 항상 웃어보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더욱더 웃었다. 그러면 그들의 놀림이 살짝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수라는 그렇게 어둠속에서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삼십분 동안 흐느껴 울던 수라가 코 맹맹한 소리로 말을 한다. 그녀의 노란 머리는 젖어서 아무렇게나 얼굴에 흩어져 있고 울음 섞인 말은 제대로 전달 되지 않는다.
“…나 얼마전에 처음으로.”
“응?”
“처음으로 소리 질렀어.”
“…누구한테?”
“성우랑 진실이.”선님의 눈은 수라의 예상만큼이나 커진다. 성우와 진실이에게 저항하는 수라란 한번도 불수 없었다.
“왜 그랬어?”
“엄마가 죽었는데.”
“응,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 돈 문제로 싸우는 거야.”
“……”
“돌아가시자마자.” 강조하듯 말한다.
그 상황을 다시 회상하듯 수라의 눈빛은 많이 슬퍼 보인다. 누구도 달랠 수 없어 보여 선님은 위로의 말을 건내려다 포기한다..
“일찌감치 나한테 1/3은 띄어서 주라고 했나봐, 쓸데없는 짓을.”
“그래……”“난 상관없거든, 돈 따위. 근데 그 자리에서 돌아 가시자 마자 눈들이 바뀌면서 돈 문제를 꺼내더라.”
“그래서 화냈구나.”
“……근데 선님아.”
“응?”
“사람은 죽어도 십초 이십 초 간은 귀가 열려있대.”
“뭐?” 선님이 놀란다.“다 듣는단 소리야.”
“………”
“난 그게 너무 화가나.”
선님이 듣기엔 너무 충격적인 사실 이였다. 그녀의 눈이 커지고 그 안에 눈물이 가득 찬다. 수라의 눈을 더 이상 볼수 가 없다. 수라의 눈이 선님에게 말을 건낸다.
‘왜 우리니. 우리에게만 이럴수 있니.’
선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