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 이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아기예수 생일날은
온 세상이 축제분위기다. 물론 과거의 나역시 그 분위기에 한껏 도취되어 지내왔었다.
그렇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는... 더이상 그럴 수 없을것만 같다.
1년전 헤어진 친구-
우리의 특별한 만남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되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한동안 사람을 마음속에 담아둘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결코 짧지않은 시간이었기에... 그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가슴속에
담아두는 일은 일단은 두려운 일이 되었고 하나의 모험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단단히 굳어버렸다고 나조차 믿고 있었던 내 마음에 깊이 찾아온 친구-
그 친구와는 군대를 제대하고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얼굴도 보지 않은채 지내왔었다.
메신저를 통해 얘기를 주고받는... 안다면 안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잘 모르는 친구라면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닌 그런 관계였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히 기회가 되어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우리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나의 고민, 계획,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되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공유하게 되었고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언제나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었으며 무엇보다 서로 말이 잘 통해서 많은 공감대를
갖게 되었던것이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사랑으로 변하여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를 알게된지 4년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너무 늦은 시간이라 한번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던 옛기억을 더듬어 그 친구집 앞으로
찾아가 연락을 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뭐하냐며 조금은 뻔뻔하게 무턱대고 나오라는
식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오랜시간을 기다리게 한 뒤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나오던 친구-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차가운 공기에 발그스레 볼이 상기되어있던 그 친구의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불쑥 찾아온 나를 보며 무슨일인지 이유도 묻지않고 내 손목을 잡고 집 근처 식당으로
끌고가 비빔밥을 사주었다. 이른 아침 불쑥 찾아온 나에게 이유를 묻는 일보다 뻔히 아침도
못먹고 찾아왔을거란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아침을 함께하고
원래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하루종일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의 인연은 2년을 조금 넘기고 끝이나버렸다.
이제와서 헤어지게 된 이유는 더이상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린 서로의 의지보다는 주위의 반대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
그래서 그리움, 후회, 아쉬움... 쉽게 말해서 미련이 많이 남는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고 나의 잘못으로 수 없이 다투었던 기억들-
나때문에 흘린 그 친구의 눈물- 안타깝게도 서로 쌓아왔던 좋았던 추억보다
내 기억에는 잘해주지 못하고 미안한 기억들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헤어짐속에서 상대에 대한 미움, 원망은 없었다.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테지만
굳이 말하자면 서로의 감정보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함에 대한
섭섭함이나 미안함일것이다. 할 수 있는 날까지 서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었다는 기억을
간직하자고 하며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래서 그 친구의 말처럼- 그리고 나의 다짐처럼-
그 기억이 지속되는한 앞으로 크리스마스이브는 나에게는 마냥 기분좋고 설레이는
날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가을의 마지막자락을 타고 날아들던 이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처음 맞이했던 그 날의
가슴아픔이 크리스마스이브와 가까워질수록 더 커져만 간다.
그와함께 그 친구에게 느꼈던 향기도 짙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