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시 모음> 정연복의 '장미의 애인' 외
+ 장미의 애인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다고 해서
장미를 멀리하거나
무서워하면
예쁜 장미의
애인이 될 수 없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어도
가시를 겁내지 않고
찔려서 피 흘릴 각오까지 해야
불꽃같은 장미의
어엿한 애인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용기
사랑은 모험
가시의 고통을 회피하는 자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 장미의 생
장미가 붉게 타고 있다
온몸 시뻘건 불덩이
시원한 바람도
그 불을 끌 수 없다.
질 때는 지더라도
지금은 살아 있는 목숨
티끌도 남김없이
활활 태우는
한철
뜨거운 생이다.
질 때를 지레 두려워 않고
당당히 거침없이
완전 연소로 향하는
저 불꽃의 생을 훔쳐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난다
많이 부끄럽다.
+ 장미와 들꽃
장미 덤불 속에
드문드문 들꽃도 피었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잠시 가만히 귀기울이니
장미와 들꽃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눕니다.
부러운 눈빛으로 들꽃이
장미를 바라보며 얘기합니다
'너는 어쩜 이리도 예쁘니.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구나.'
장미가 손사래를 치며
들꽃에게 속내를 드러냅니다
'나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네 은은한 어여쁨만 못하지'
남의 아름다움을 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칭찬해 주는
장미와 들꽃 둘 모두
한층 더 예쁘게 느껴집니다.
+ 장미
나는 세상의 모든
장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세월의 어느 모퉁이에서
한순간 눈에 쏙 들어왔지만
어느새 내 여린 살갗을
톡, 찌른 독한 가시
그 한 송이 장미를
나는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별빛보다
더 많은 눈동자들 중에
남몰래 딱, 눈이 맞아
애증(愛憎)의 열차에 합승한
그 한 여자를
나는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
+ 장미의 죽음
꽃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살아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미.
그 탐스런 꽃송이
한 잎 한 잎 흩어지며
대지에 가만히
몸을 눕히고 있다.
생전에
뜨거운 불덩이였던
빨강 꽃이 어쩐지
분홍 빛깔로 변해간다.
살아 있을 때는
온몸으로 정열의 불꽃
생의 나래를 접을 때는
더없이 순해지는 모습.
장미는 삶과 죽음
둘 다 아름답다
아니, 죽음의 시간에
더 아름답다.
+ 장미의 열반
한철 통째로
불덩이로 생명 활활 태우며
한밤중에도 치솟는
송이송이 불면의 뜨거운 불꽃이더니
이제 지는 장미는 살그머니
고개를 땅으로 향하고 있다.
불타는 사랑은
미치도록 아름다워도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없음을 알리는
자신의 소임 하나
말없이 다하였으니
그 찬란한 불꽃의 목숨
미련 없이 거두어들이며
이제 고요히
열반에 들려는 듯.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