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따스한 양지에
하나의 돌이 되어 계신 님
민족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시리라.
(박태강·시인, 1941-)
+ 무명 호국의 영혼
저 소나무의 푸른 기상이
그대를 닮았습니까?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초여름인데도
현충원 산소의 푸른 잔디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천둥소리 격전에 육신이 날아가고
비 궂은 하늘에
참아 날 수 없었던 영혼이여!
개마고원 구름에 가려
흙 속으로 떨어진 백골이여!
잡목에 덮였나요, 그대는 어디 계시고
이름은 어디에 두셨습니까?
어느 잡목 아래 뿌리를 의지하고
궂은 날이면 훌쩍훌쩍 운다는
무명의 호국 영령
누가 울어줘야 할지
어디를 쳐다보고 울어야 할지
60년이 넘도록 정부의 명부에만
매달려 있는 이름뿐인 영혼이여!
혼령은 어디 있고
백골은 어디 계시뇨?
(미산 윤의섭·시인, 1935-)
+ 현충일에 고개를 숙이며
초개草芥같이 몸을 던지고
목숨 아끼지 않아
나라를 구한 숱한
애국선열 애국지사 의병 열사
전몰장병 상이군경 등 이들의 목숨 바친 은혜 없었다면
어이 조국이 있을까?
현충일에 고개 숙여 묵념 감사드리고
하얀 국화 송이송이 향불 올리오니 받아주소서
우리들에게도 그 용기 그 애국심 용납하소서
님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번영은 북한에 우위하여
통일로 이끄는 영광의 길이 열리었나니
일부의
몰지각한 이들
망령된 생각으로
현충일을 모독되게 하는 일 자숙케 하소서.
(함동진·시인, 전남 순천 출생)
+ 비무장지대·2
슬픈 일일수록
새들은 빨리 용서할 줄 안다.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보다
더 먼저 용서하는 새들
지난 일을 잊기 위해
새들은 소총 소리 들리는 숲을 찾아와
거기에다 편안한 집을 짓는다
지뢰가 흩어진 숲속을
우리보다 더 먼저 찾아와
탄탄하게 집을 짓고
따스한 알을 낳는다.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여보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
(이선관·시인, 1942-2005)
+ 평화
누구라도 그를 부르려면
속삭임으론 안 된다.
자장가처럼 노래해도 안 된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평화여, 아니 더 크게
평화여, 천둥 울려야 한다.
그 인격과 품위
그 아름다움과 평등함
그가 만인의 연인인 점에서도
새 천년 이쪽저쪽의 최고인물인
평화여 부디 오너라고
사춘기의 순정으로
피멍 무릅쓰고 혼신으로
연호하며 불러야 한다.
(김남조·시인, 1927-)
+ 들판을 거닐며 - 국토(國土)·61
언제나 다투지 않는
이 벌판을 거닐면 나는
금방 침묵의 덩어리가 된다.
두고 온 집들도
지껄이며 지내던 내 이웃들도
어느덧 나를 따라와
침묵으로 걷는다.
보아라
타는 노을 이글대는 하늘 밑에서
오곡백과는 머리를 숙여 말이 없다.
거친 풀잎들도 몸만 흔들 뿐
뿌리 깊이 내려 말이 없다.
내가 밟는 이 들판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언제나 누워서
우리들을 걷게 할 뿐
탓하지 않는다.
총칼을 거두자
침묵 앞에 입을 다물자
우리 들판을 거닐며.
(조태일·시인, 1941-1999)
+ 6월의 간절한 기도
초록의 성성함 같이 마음속에
충만한 사랑이 솟아올라
나라 위해 청춘 바친 호국 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기도하는 마음 되게 하시고
남은 가족 잘 있는지 살피게 하소서
(권정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