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 시 모음> 양성우의 '사랑의 힘' 외 + 사랑의 힘 알 수 없어라, 사랑의 힘. 어디에서 어떻게 솟아나는 것일까? 그것은 불인가 바람인가? 아니라면 환상인가? 아아, 끝도 시작도 없는 기쁨의 바다에 눕고 싶다. 차라리 그 자리가 깊이 모를 늪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알 수 없어라. 몸과 넋 다 태우고 흔적도 없이 지우는 사랑의 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양성우·시인, 1943-) +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 창조의 근원이며 지구의 해석자 (에밀리 디킨슨·미국 여류 시인, 1830-1886) + 사랑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은 문짝도 빗장도 잠그지 못한다 사랑은 무엇이든 꿰뚫고 간다 사랑은 시작이 없다 사랑은 항상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클라우디우스) + 사랑의 힘 사랑은 보이지 않아도 그 힘은 신비로운 것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는 기쁨의 천국이다가도 사랑이 썰물처럼 빠질 때는 슬픔의 지옥이더라. 그대의 선한 눈빛 찰나에 스치는 그 눈빛 하나로 이 작은 내 가슴 사랑의 기쁨으로 설레게 하는 그대여, 사랑의 마법사여! (정연복·시인, 1957-) + 사랑 그 눈사태 침 한번 삼키는 소리가 그리 클 줄이야! 雪山 무너진다, 도망쳐야겠다. (윤제림·시인, 1960-) + 우리가 할 일 사랑 받는 세포는 암도 이겨낸다 하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이라곤 사랑하는 일뿐 (김홍신·작가, 1947-) +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은 창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오래오래 홀로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슬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합니다." 풀꽃처럼 작은 이 한마디에 녹슬고 사나운 철문도 삐걱 열리고 길고 긴 장벽도 눈 녹듯 스러지고 온 대지에 따스한 봄이 옵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것입니다. (문정희·시인, 1947-) + 버마재비 사랑 교미가 끝나자 방금까지 사랑을 나누던 수컷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암버마재비를 본 적이 있다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고 사라져버리는 뻐꾸기의 나라에선 모르리라 섹스를 사랑이라 번역하는 나라에선 모르리라 한 해에도 몇 백 명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키는 나라에선 모르리라 자손만대 이어갈 뱃속의 수많은 새끼들을 위하여 남편의 송장까지를 씹어먹어야 하는 아내의 별난 입덧을 위하여 기꺼이 먹혀주는 버마재비의 사랑 그 유물론적 사랑을 (복효근·시인, 1962-) +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김남주·시인, 1946-1994) + 사랑·2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봄 햇볕같이 따뜻하고 어머니 품같이 훈훈하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없는 자에게 풍성함을 절망한 자에게 소망을 준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질병도 물리치고 죽은 자도 살아나게 한다. (박형규·시인, 전남 완도 출생) + 사랑은 샘물인가 봐요 사랑은 진짜 샘물인가 봐요 사랑하는 마음을 아무리 퍼 올려도 바닥이 보이지 않아요. 아마 우리가 죽어야 이 세상에서 사랑이 없어질 건가 봐요 어제 종일 당신에게 다 주고도 자고 나면 또 가득해요 언젠가 당신이 내게로 와서 바가지를 들고 다 퍼 가 봐요 그래도 남아 있는가 보게 그래도 남아 있겠지요 그래서 샘물인가 봐요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끝없이 차오르는가 봐요. 우린 행복하죠, 그렇죠 이런 사랑 못하고 있는 시인들 거짓 시인들이어요 이런 사랑 못하고 있는 시인들 바보들이야요 미치지 않는데 무슨 사랑 시 쓰겠어요 쓴다면 허깨비 장난이지요 감동이 없는 죽어있는 시 우리는 지금 위대한 시를 쓰고 있어요. 나머지 못다 쓴 시는 온몸을 던져 쓸 거예요. (김용관·시인, 전북 정읍 출생) + 사랑에 실패한 이를 위로하는 시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리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나으리라 오늘 사랑에 실패했다면 내일엔 그 상처가 아물리라 모레가 되면 새로운 사랑이 생기리라 그러므로 죽지 마라 사랑 때문이라면 결코 죽지 마라 (장석주·시인, 1954-) + 모든 것을 사랑하라 모든 동물과 풀들 모든 것을 사랑하라 네 앞에 떨어지는 빗줄기까지도.... 만일 네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를 보게 되리라. 만일 네가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를 본다면 날마다 더 많이 모든 것을 이해하리라.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너 자신과 세상 전체를 사랑하게 되리라. (도스토예프스키·러시아 소설가, 1821-1881) + 깃털에 기대다 - 누란의 미녀 미이라 빛이 들지 않는 깊고 푸른 무덤 속에 그녀가 있었다 4천년 세월을 풀어놓았던 것은 촘촘하게 잘 짜인 그녀의 털옷이었으니 아직도 뜨개바늘 만지던 손길 묻어나 지나간 시간이 실 끝을 따라 흘러나오고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가느다란 손가락 또한 섬세한 지문의 흔적이 그대로이니 발등을 감싸고 있는 가죽신 풀어 발바닥에 찍혀있는 길의 흔적 따라가 그녀 옆에 누워 사랑을 본다 그녀의 얼굴 위에 입술을 대어본다 바람도 햇볕에 녹아내리는 사막 한가운데 바람이 앉았다 떠나버린 누란의 왕국, 문 닫힌 성벽에 기대어 옷자락 여미고 은은하게 웃는다 몇 천 년의 세월도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거늘 사랑의 증표로 머리에 꽂아준 깃털에 깃든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 것일까 유리벽 안에 갇혀 있어도 그녀는 웃는다 사랑 앞에서는 그 무엇도 적이 될 수 없다 모래 바람도 햇볕도 무기가 되지 못한다 어떤 말이 하고 싶어 지금까지 웃음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일까 누란의 미녀 미이라, 사랑의 증표 깃털에 기대어 사랑에 대해서 다시 쓰려 한다, 사랑이란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그렇게 시간도 뛰어넘는 것 (김경성·시인, 전북 고창 출생) * 누란의 미녀 미이라: 우루무치 신강성 박물관에 있는 나이 40세, 키 160cm, 혈액형 0형의 지금도 웃고 있는 미녀 미이라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