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색색가지 예쁜 손으로
내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때문입니다.
(전봉건·시인, 1928-1988)
+ 마음
가두지 않았다
담이 없다
울타리도 없다
부드러운 짐승들이 산다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다
돌보는 사람도 없다
어디로 뛸지 모른다
(윤희상·시인, 1961-)
+ 마음
물고기에게는 물이 길이리라
나무에게는 나무가 길이리라
모래에게는 모래가 길이리라
문 없는 문을 가는 마음
보이는 것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 길이리라
(강은교·시인, 1945-)
+ 내 마음
꿈길로 가만히 가면
무엇이나 다 볼 수 있고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는
내 마음
화가 나고 울고 싶다가도
금방 깔깔 웃기도
좋기도 한 내 마음
꼭 하나인 것 같으면서도
날마다 때마다
다른 빛깔 되는 마음
사진으로 찍어 낼 수만 있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정말 궁금한 내 마음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마음
사랑만한 수고로움이 어디 있으랴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
지쳐 끝날지도 모르는 일
마음속 하늘
치솟은 처마 끝
눈썹 같은 낮달 하나 걸어 두고
하냥 그대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
미련하다
수고롭구나
푸른 가지 둥그렇게 감아 올리며
불타는 저 향나무
(윤재철·시인, 1953-)
+ 마음아
마음아 아무 곳에나 날 내려놓지마
마음아 아무 곳에나 날 내려놓지마
어디나 다 사막이야
어디나 다 사막이야
마음아 아무 곳에나 들어가지마
마음아 아무 곳에나 들어가지마
어디나 다 늪이야
어디나 다 늪이야
(천양희·시인, 1942-)
+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것
떨며 멈칫멈칫 물러서는 산빛에도
닿지 못하는 것
행여 안개라도 끼이면
길 떠나는 그를 아무도 막을 수 없지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것
오래 전에 울린 종소리처럼
돌아와 낡은 종각을 부수는 것
아무도 그를 타이를 수 없지
아무도 그에겐 고삐를 맬 수 없지
(이성복·시인, 1952-)
+ 마음 고치려다
널다리 건너 개심사(開心寺)에 갔습니다
산속으로 난 찻길 버리고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입구에서부터
돌계단 108개쯤 밟고 갔습니다
세심(洗心), 개심(開心) 하는 일이
어디 쉬운 노릇입니까
외나무 널다리 건너는 일만큼만
된다면야
밤새 건너고 또 건너겠지만
나이 들면 마음에도
겹겹의 기름때가 들어차
뜻대로 씻어낼 수 없으니
씻을 마음, 고칠 마음 그냥
챙겨 안고 돌아가는 하산길
골 너머 마애삼존불
왜, 날 보고 웃음 흘리십니까
(이명수·시인, 1945-)
+ 복숭아를 솎으며
열매를 솎아 보면 알지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 처음엔
열매 많이 다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고
아니, 그저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제대로 솎지 못했다네
한 해 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
삶도, 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
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
나무는 제 살점 떼어 내는 일이니 아파하겠지만
굵게 잘 자라라고
부모님 같은 손길로 열매 솎는 5월 아침
세상살이 내 마음 솎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았네
(배한봉·시인, 1962-)
+ 마음의 발견
마음은 늘 먹이 쪽에 가 있다
먹고 나서도 매양 먹이 타령이다
마음에는 마음이 너무 많아서
잠깐 한눈 파는 사이
마음은 또다른 마음에게 추파를 던진다
마음이 사회간접자본이었으면 좋겠다
공기나 별빛 또는 공룡시대처럼
거기에서 마주친 두살배기 아이의 웃음처럼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처럼
개인이 가질 수 없었으면 좋겠다
배타적 소유권이나 저작권을 너나없이
포기했으면 하는 것이다
왼종일 먹이를 잔뜩 먹고 돌아온
마음들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
텔레비전이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마음들의 잔등이 왼쪽으로 휘어져 있다
마음들은 새우잠을 자면서도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켜놓고 있다
마음은 언제나 온 온라인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뭔가 물컹했다
국가였다 가슴에 늘 국가가 들어있는데도
매일 아침 깜빡깜빡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