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시 모음> 문현미의 '겨울산' 외 + 겨울산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세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문현미·시인, 1957-) + 겨울산에서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눈 속에 노을 속에 사라지면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겨울산 적막하다 한때 산새와 바람과 나무와 풀꽃 다 품은 산 한 채 구름과 하늘을 이고 우뚝 서있다 모진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동안거에 든 그의 입이 무겁다 (송연우·시인, 경남 진해 출생) + 겨울산·7 칼바람이 겅둥겅둥 온 산을 뛰어다니면 나무들은 제 몸이 서러워 온종일 피리를 분다 인적 뜸한 능선 마른 가랑잎 덮인 양지에 눈빛 맑은 노루 한 마리 잠시 쉬었다 간 흔적 산 전나무 위에 어미 청설모 한 마리 꼬리를 접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저마다 두려운 눈빛으로 적막을 견디고 있다 (나수자·시인) + 겨울산에서 겨울 산 마른 나무들 행복하다 버릴 수 있는 것 모두 버렸으므로 메마른 나무들 의연히 서 있는 겨울 산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눈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눈앞에서 세상이 바뀌고 있으므로 (정석권·시인) + 겨울산 얼음 계곡을 가슴에 품고 불덩이 하나 뜨겁게 삼킨 산, 침묵하고 침묵하는 저 산자락이 잡목들 싸리나무 함께 기르는 저 넉넉한 모성의 산자락이 이렇게도 나무들 발가벗겨 혹독한 바람 앞에 몰아세우다니 그 뿌리를 얼음에 파묻다니 기어이 차고 올라가 하늘 한 자락 저토록 선명하게 자를 수 있다니 하늘과 닿은 저 분명한 산자락. (김완하·시인, 1958-) + 겨울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황지우·시인, 1952-) + 겨울산 겨울 되면 산들은 옷을 벗는다 울퉁불퉁한 알몸 근육만으로 앉아 말없이 바람을 견딘다 사람이 죽으면 무성한 말들만 남는다 입다문 망자(亡者)들 겨울산 되고싶어 추워도 산으로 간다 (장승진·시인) + 겨울 산 맨발로 선 나무들이 껄껄 웃고 있다. 근엄하게 내려오는 눈송이, 경직된 뿌리 끝에서 경제정책(經濟政策)이 아릿아릿 시린데. 겨울 산에서 헐벗은 나무들이 실실 웃고있다. 허허허 허 허 허. (양수창·시인, 1953-) + 겨울산 첫눈 맞고 있는 겨울산을 보면 흰털 세운 한 마리 산짐승 같으니 부드럽게 웅크린 등줄기나 가슴께로 바짝 당겨놓은 살진 허벅지 이놈아, 하고 톡톡 치면 웅크렸던 몸 기지개 한 번 펴고는 산길 따라 세차게 달려갈 것 같으니 이 땅 어느 산을 올라도 모든 길은 백두에 닿는다는 백두대간의 큰 꿈을 아는가 첫눈 내리는 날 한반도 모든 산줄기들 흰털 하얗게 곧추세워 하얀 능선 위를 달려가고 있으니 그놈의 등에 덥석 올라타는 꿈이여 겨울산과 한 몸의 날렵한 산짐승 되어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튼튼한 등뼈를 밟고 한걸음에 달려가는 즐거움 꿈이여. (정일근·시인, 1958-) + 겨울산 산은 늘 말이 없지만 겨울산은 더욱 고요하다 저 큰 몸집으로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도 제 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양 있는 듯 없는 듯 영원을 살아가는 온몸이 너른 가슴이고 다소곳한 귀일 뿐 말없는 산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