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 모음> 박용재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외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박용재·시인, 1960-) + 사랑법 한 사람의 가슴에 당신의 향기를 심어 빛나는 꿈을 가꾸게 하는 것은 당신의 시(詩)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심장에 불을 붙여 밤새워 잠 못 이루게 한 것은 당신의 죄악이다 그러나 그러나 한 사람이 그의 전 생명을 던져 당신에게 추락해 오도록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신(神)이다 (임보·시인, 1940-) + 단 한 번의 사랑 한 번이면 된다 오직 단 한 번 유서를 쓰듯 우레가 치듯 나에게 오라 부디, 사랑이여 와서 나를 짓밟아라 (최갑수·시인, 1973-) + 부탁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나태주·시인, 1945-) + 사랑을 위해 사랑하라 모든 사랑은 팽창한다 모든 이기주의는 수축한다 사랑은 삶의 유일한 법이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가고 이기적인 사람은 죽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사랑하라 그것이 삶의 법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숨쉬며 사는 것처럼 (비베카난다·인도 종교지도자, 1863-1902) +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깊은 사랑은 깊은 강물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 성숙할 뿐 그리하여 향기를 지닐 뿐 누가 사랑을 섣불리 말하는가 함부로 들먹이고 내세우는가 아니다.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감추어지고 깊이 묻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 비로소 그윽해지는 것 서로에게 그 무엇이 되어주는 것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가는 것 그리하여 향기를 지니는 것 사랑은 침묵으로 성숙할 뿐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윤수천·시인, 1942-) + 참말로의 사랑은 참말로의 사랑은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미워할 수 있는 자유를 한꺼번에 주는 일입니다. 참말로의 사랑은 역시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머물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따지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바라만 보다가 반쯤만 눈을 뜨고 바라만 보다가. (나태주·시인, 1945-) + 사랑 더러운 내 발을 당신은 꽃잎 받듯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흙자국을 남기지만 당신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당신을 눈물과 번뇌로 지나가고 당신은 나를 사랑으로 건넙니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 나를 만난 당신은 자꾸 늙어만 갑니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사랑할 때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열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손가락 마디 한 마디 남아 있다면 두 팔을 내어주어도 사랑하라, 사랑이 두 눈알을 다 가져가버려도 사랑이 몸뚱이만 남겨놓아도 사랑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라 지구별에 다시 빙하기가 오고 지구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검독수리가 죽고 향유고래가 죽고 흰 민들레가 죽고 오직 외발 하나 딛고 설 땅이 있다면 사랑하라 그 땅에 한 발 딛고 서서 나머지 한 발 들고 서 있을 수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보다 거룩한 용서 기도보다 절실한 기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정일근·시인, 1958-) + 선사의 설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렸습니다 (한용운·시인, 1879-194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