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시 모음> 신동엽의 '그 사람에게' 외 +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의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신동엽·시인, 1930-1969) + 사람 한문수업 시간 정년퇴임 앞둔 선생님께 제일 먼저 배운 한자는 옥편의 첫 글자 한 일(一)도 아니고 천자문의 하늘 천(天)도, 그 나이에 제일 큰 관심사였던 사랑 애(愛)는 더더욱 아니고 지게와 지게작대기에 비유한 사람 인(人)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도 사람 인(人)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등 기대고 있는 한 사람이 아슬하다 너와 나 사이가 아찔하다 (신혜경·시인, 1963-) +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내리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 오래 써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들 내일을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이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인사를 건네고 분홍신 신고 걸어가 닿을 내일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이기철·시인, 1943-) + 진흙의 사람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점을 친다지 접시에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아 눈을 가린 술래에게 하나를 집게 하는데 반지를 집으면 곧 결혼하게 하고 기도서를 집으면 수도원에 가게 되고 물을 집으면 오래 살게 되고 진흙을 집으면 곧 죽게 되고 동전을 집으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 차갑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 느껴질 때 그것이 죽음이 만져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조금 놀라기도 하지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그 감촉을 느끼곤 하지 물로 씻어낼 때마다 조금씩 닳아가는 진흙 마스크를 잘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를 시작하지 아일랜드에 가지 않아도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은 접시는 식탁이나 선반 위에 늘 놓여 있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 그것으로 빚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고 진흙이 마르는 동안 갈라지는 슬픔 또한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눈 어두운 진흙의 사람, 그러니 내 손이 진흙을 집어들더라도 부디 놀라지 말기를! 가렸던 눈을 다시 뜬다 해도 나는 역시 한 줌의 진흙을 집어들 것이니! (나희덕·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 사람과 사람 사이 참 가련한 일이다. 서로 괴롭히기 위해 사람이 되어 적(適)을 만들기 시작한 우리는. 서로 슬퍼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눈물을 만들기 시작한 우리는.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한 열흘쯤 비워 둘 수 있다면 나는 거기서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참 가련한 일이다. (이호광·시인, 1950-)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나태주·시인, 1945-) +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 만큼이 인생이다 (박용재·시인, 1960-) +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개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유홍준·시인, 1962-) + 아름다운 사람 공기 같은 사람이 있다. 편안히 숨 쉴 때 알지 못하다가 숨 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그가 떠난 후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매일같이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이지만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 된다.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메마른 민둥산이 돌 틈에 흐르는 물에 의해 윤택해지듯 잿빛 수평선이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 (조재도·교사 시인) +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마음이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사귀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거친 삶의 벌판에서 언제나 청순한 마음으로 사는 사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모든 삶의 굴레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언제나 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미국 시인, 1807-1882) + 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 하나님 모든 하찮은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소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우리가 큰사람이 되게 하소서 남을 흠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소서 모든 이기심을 말끔히 떨쳐버리게 하소서 모든 겉치레를 벗어버리고 자기 연민과 편견 없이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게 하소서 남을 판단하는 일에 절대로 성급하지 않고 항상 관대하게 하소서 매사에 시간의 공을 들이게 하시며 늘 차분하고 평온하며 온유하게 하소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좋은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늘 올바르고 두려움 없이 살게 하소서 사람들 사이에 차이점을 만드는 것이 실상은 삶의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을 삶의 커다란 것들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오! 주 하나님 우리가 남에게 친절하기를 잊지 않게 하소서 (메리 스튜어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