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녹차를 마시며' 외 +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팔달산 돌아 내려오다가 녹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시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사랑을 생각한다 우리는 참 행복했구나 새들처럼 포근했구나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따뜻했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한다 (윤수천·시인, 1942-) + 무등차無等茶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십일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김현승·시인, 1913-1975) + 잎차 한 잔 이렇게 찾아왔구나 모진 운명을 견디며 어둠 속을 더듬어 살아낸 어느 여인의 모습으로 고요히 오늘 내 가슴에 향기로 깊이 안기는 의지 견디는 만큼 향기 넘치지요 늦은 밤 한 철학자의 인생론을 읽으며 드는 잎차 한 잔 이렇게 향기로 퍼지는 종말이기를… (신달자·시인, 1943-) + 차를 마십니다 차를 마십니다 다리어지는 차를 보며 마시고 차향기로 마십니다 혀끝을 통해 내게 들어온 차는 생각을 타고 돌다 닫혔던 마음을 열어주고 서로의 마음 또한 이어줍니다 차로 가득 채운 방은 (박인혜·시인, 1961-) + 차 한 잔을 위하여 나는 너를 위하여 내 하루의 작은 시간을 떼어놓겠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한 오두막을 지어 놓겠다 나의 하루가 비록 나를 내다놓은 삶이라 해도 때로는 거짓 웃음과 억지의 쳇바퀴를 구르는 삶이라 해도 원피스가 먼저 세수를 하고 거울이 나를 치어다보며 권태가 지하철을 탄다 하여도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단 하나의 눈을 위하여 노을이 지면 찻물을 끓여야겠다 이제 마주앉을 너를 위하여 차를 마시는 시간, 나는 한없이 자유롭다 거기에는 철학도 없다 거기에는 편견도 없다 거기에는 너의 느낌뿐이다 (홍수희·시인) + 녹차 예찬 머릴 맑게 하고 심장 위장 활동 도와주며 몸을 가볍게 하여 이뇨작용이 원활해짐과 열을 내려주고 담을 삭여주는 효능에다가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도 떨어뜨려 준다는 강력한 카테킨이 항산화 작용으로 나타나 각종 암을 예방하고 종양 형성을 억제하므로 암의 전이마저도 막아준다는 몸에 좋은 녹차 각종 비타민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숙취 해소시켜주고 주독도 풀어주는 데다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 체중 감량 효과로 유해산소 활성산소의 물질도 차단해주기에 뇌졸중 심장병 예방하고 혈관질환을 막아내 만성피로에 지친 몸을 지켜준다는 유용한 전통차 질병예방 노화방지 피부미용에 좋은 찻잎 우린 물 (손병흥·서양화가 시인) + 꽃잎 녹차 녹차에 띄운 야생화 흰 꽃잎이 다섯 어인 업보 날아와 스치는 눈길 따라 닿았길래 하늘 아래 스미어 물 위에 떠돌다 하얀 손에 담기어 구름다운 찻잔에 다소곳이 남녘 부푼 들맛 정토 내린 노을맛 입안 가득 번지는 인연의 향기여 아, 가슴 따라 미어지며 꽃잎 타고 떠가네 햇빛 눈물인 듯 그리움 보석인 듯 (현상길·교사 시인, 1955-) + 녹차송(綠茶頌) 녹차를 마시면 피가 맑아지고 군살이 빠지고 눈빛이 흰 연꽃처럼 서느러워지느니 ……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거든 목욕물 데워 피로를 풀게 하고 우선 한 자의 녹차를 권하여라 그러면 그것이 더없는 대접이리 벗의 얼굴이 보름달인 양 환히 빛날 쯤엔 거문고 한 가락 안 탈 수 없으리 좋은 차와 벗과 거문고와 …… 그밖에 더 무엇을 바라리오 그저 안온하고 흡족할 따름이리 (박희진·시인, 1931-) + 녹차 아침에 눈을 뜨면 그대가 옆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줍은 새색시 되어 그대와 마주앉아 부드러운 첫 키스를 하고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로움에 하루를 시작함이 좋겠습니다. 순백의 찻잔으로 다가온 그대 얼룩진 겨울을 씻어내고 연푸름의 4월을 맞이합니다. 녹색 융단 깔아놓은 그대의 넓은 가슴 사이로 *우전 차(雨前茶)의 진향이 아득히 배어나고 몸으로, 눈으로, 향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서혜미·시인, 1951-2007) *우전 차: 곡우(穀雨) 이전에 채취한 어린 차 잎으로 만든 차 + 차 마시기 좋을 때 새벽 잠자리에서 어린 손녀의 전화를 받을 때 낮잠에서 깨어 창문으로 구름이 떠가는 걸 볼 때 여행 떠나서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얻은 것도 없으니 버릴 것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록 영화의 이야기이지만 인조인간한테서 사람은 늙을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함동선·시인, 1930-) + 차 한 잔의 진실 님의 말씀이 차 한 잔의 진실처럼 내 영혼에 스미게 하여 잔잔한 기쁨과 감사를 누리게 하소서 차의 개성에 알맞게 은근한 불로 다려서 은은한 맛을 빚어내듯 내 가슴속 열정의 불꽃으로 님의 말씀 정갈스레 다려내어 내 생명의 거문고 선율로 님께 바치는 한 편의 시를 읊게 하소서 차 한 잔의 향기가 한나절 입 속에 감치듯 님의 온유한 말씀이 향기 되어 내 한 생명 다하도록 내내 영혼 깊은 곳에서 샘솟게 하소서 (김홍언·신부, 1939-) + 차 한 잔 가끔 아내는 내게 차 한 잔을 권한다 잠시나마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자는 뜻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차를 물 마시듯 단숨에 마셔 버린다 급할 것 하나 없는 세상살이인데 왜 나는 이리도 여유가 없을까 뜨거운 차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얘기 꽃 한 송이 피우면 우리의 사랑 더욱 깊어질 것을 머잖아 이 목숨도 싸늘한 찻잔같이 될 것을.... (정연복·시인, 1957-) + 마음이 예뻐지는 인생차 성냄과 불평을 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다진다. 교만과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말린다. 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토막을 낸 후에 넓은 마음으로 절여둔다. 주전자에 실망과 미움을 한 컵씩 붓고 씨를 잘 빼 낸 다음 불만을 넣고 푹 끓인다. 미리 준비한 재료에 인내와 기도를 첨가하여 재료가 다 녹고 쓴맛이 없어지기까지 충분히 달인다. 기쁨과 감사로 잘 젓고 미소를 몇 개 예쁘게 띄운 후 깨끗한 믿음의 잔에 부어서 따뜻하게 마신다. 오늘 하루도 예쁘고 밝은 하루가 되시기를 (작자 미상)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